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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hoes Jul 28. 2022

사랑스러운 베로나

유럽여행

(여행시기 : 2022.7)


비엔나 말고는 전적으로 이탈리아에 집중하기로 한 이번 여행에서, 베로나는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비엔나에서 베네치아로 비행기로 이동했고, 그 다음 일정은 자유. 기왕 이탈리아에 왔으니 피렌체와 로마는 가야겠고, 밀라노에도 들르는 게 좋겠지? 지도를 보니까 베로나가 베네치아와 밀라노의 딱 중간에 있었다. 베로나를 베이스캠프 삼아 밀라노에 당일치기로 다녀온 후 피렌체로 이동하기로 했다




극 P 성향인 나는 계획 없는 불확실성을 너무 사랑한다. 하지만 이탈리아 여행은 미션 클리어 스타일을 피하기 어렵구나 실감. 더욱이 한여름에 왔으면서 아무 준비 없이 다닐 생각을 하다니, 오만도 이런 오만이 없다. 날짜가 임박해지자 괜찮은 숙소들은 동이 나고, 중요 랜드마크나 미술관 입장권도 마구 마감되는 게 아닌가!?


7년 전에는 미술관 앞에서 줄을 서야 했는데 지금은 인터넷으로 미리 입장 시간별로 예약을 하게 되어 있었다(다만 바티칸 미술관은 여전히 현장에서 그냥 줄 서는 방식도 있는 듯?). 기다리는 시간이 확 줄어드니 편한 점이 있다. 하지만 미리 준비하지 않은 자의 최후는… 그렇다. 사설업체에서 더 비싼 돈을 주고 표를 사야 했던 것이다. 7년 전에도 난리통에 지쳐 피렌체에서 우피치 미술관을 포기해버렸는데, 이번에도 그럴 수는 없었기에(게다가 내가 이미 가본 곳들도 T에겐 보여줘야 하니까).


공공 기관과 업체의 결탁이 있어야 이게 가능할텐데 미술관 입구에 ‘더 비싼 가격을 주고 산 표는 우리와는 무관합니다’라고 크게 써놓은 건 뭡니까. 하긴 예전에도 3배 정도 돈을 더 주면 ‘skip the line’하고 바로 들어갈 수 있는 표를 파는 사이트도 있었으니, 놀랍지는 않다. 지금은 3배까지 차이나진 않으니 고마워해야 할지 ㅎㅎ


체감상 7년 전보다 이번에 사람이 더 많았다. 아마 코로나로 억눌렸던 여행욕구들이 폭발한 모양. 한마디로 대혼돈이었지만 이것 역시 이탈리아 여행의 묘미라면 묘미(?). 흥청망청 인파에 휩쓸려 다니면서 한껏 올라간 텐션을 즐기는 것. 여행 갔는데 썰렁하고 스산하면 그 또한 별로이지 않은가 말이다(그렇다 해도 내일 어디로 떠날지도 모르는 느슨함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상황이 좀 힘들긴 했다. 그래서 흥청망청하긴 한데 계획 없이 다닐 수 있었던 터키-그리스 여행이 완전 만족스러웠지. 지금은 여기도 그런 게 불가능하려나).




여하간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베로나는 한 박자 쉬어가는 베이스캠프 역할을 해주었다. 물론 여기도 관광지이고(이탈리아 전체가 어차피 관광지), 여름에 열리는 오페라 축제 때문에 사람이 많았지만, 다른 더 큰 도시들에 비하면 한가한 편이었다. 크기가 아담해서 걸어다는데 어려움이 없었고, 엄청난 그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한결 여유가 있었다.



베로나는 사랑스럽다는 말이 어울리는 도시였다. 주황색 지붕의 집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었고,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가 본 강변 풍경은 평화로웠다. 분수가 있는 에르베 광장은 아담했고 천막을 친 작은 상점들이 많았다. 단테의 조각상이 있는 시뇨리 광장도 소박한 분위기였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유명해진 이곳엔 ‘줄리엣의 집’이라는 곳도 있었다! 마당까지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우리도 이 유명한 곳을 슬쩍 구경했다.


‘줄리엣의 집’에 있는 줄리엣 방의 발코니.


오페라 보는 걸 막판까지 고려했지만 밀라노에 다녀오려니 시간이 안맞아 결국 패스했다. 로마 시대에 지어진 아레나를 공연장으로 쓰는 야외공연이라서 분명 멋진 경험이 되겠지만, 오페라를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건 아니기도 했고. T는 나중에, 도로 한복판에 고립되어 있는 로마의 콜로세움보다 광장에 있고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사용되는 베로나의 이 아레나가 더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아레나 주변에 놓여 있던 커다란 조각상들도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이 이집트풍 조각상들은 아마도 <아이다>의 무대장치겠지? 저 큰 것들을 어떻게 안으로 옮기는지 궁금했다.



베로나의 또 다른 시그니처는 도시를 둘러싼 성벽이었다. 성벽이 구도시와 신도시의 경계 역할을 하고 있었다. 도시의 지리적 위치를 생각하니 이해가 갔다. 이곳은 북부 이탈리아 동서 횡단의 중심지이고 남쪽으로 가는 기점이니까, 교통의 요지인만큼 침략에도 쉽게 노출되어 있었을 테니. 성벽 가까이 가보니 해자가 생각보다 깊어서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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