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dshoes Jan 17. 2023

Gate to the West

미국여행

내게 미대륙 대장정의 기억은 대평원과 콜로라도, 뉴멕시코에 붙박여버렸는지 다른 곳들의 기억은 이상하게 좀 희미하다. 그저 쉼 없이 서쪽으로 달렸다는 느낌만 강하다(물론 실제로도 그랬다… 한 달이라는 시간 제약 때문이기도). 네브레스카, 사우스 다코타, 와이오밍에 걸쳐있는 대평원 여행이 사실상 이 여정의 하이라이트였고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기도 했다. 아마도 다시 그런 식으로 여행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모르니까 갔지, 알고는 못 갈 곳이었다. T도 그때를 회상할 때면 약간 진저리를 친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미국 여행의 묘미는 특정한 장소를 구경하는 것보다 그저 한없이 달려가는 것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광활한 땅에 뻗은 길들 그 자체가 가장 미국적인 여행지인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미국인들이 자동차에 대해 갖는 애착이 이해가 잘 된다. 데이빗 린치와 코엔 형제의 세계도 이해가 된다. 분석할 필요도 없이 직관적으로 알게 된다!


길이 넓으니 하늘도 넓다. 시시각각 변하는 넓은 하늘을 구경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거대한 대지 안에 감싸여 있다는 이 느낌을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다. 맑은 날엔 햇살이 너무 강렬해서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도저히 운전을 할 수가 없다. 선글라스는 생존 필수품이었다.



신기한 것 중의 하나는, 서쪽으로 갈수록 길도 넓어지고 건물들도 커진다는 것이었다. 물론 중간중간 뜻밖에 아기자기한 휴먼 스케일의 소도시들도 있었지만(콜로라도의 볼더처럼 주로 대학이 있는 곳이 그랬다), 대체로 서쪽으로 갈수록 모든 것이 커졌다. 계속 서쪽으로 달려가는 우리에겐 세계 전체가 점점 더 크게 확대되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도시만이 아니라 자연도 더 커지고 더 거칠어졌다. 자연의 스케일이나 느낌에 맞게 도시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겠지만.


미주리주의 세인트루이스를 지날 때 그 도시의 랜드마크라는 거대한 아치를 보았다. ‘Gateway to the West’라는 이름이었는데(Gateway Arch라고도 하는 듯) 나중에 집에 돌아온 뒤 우리는 그 이름이 아주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서부터 당신이 알고 있던 ‘인간적인 세계’는 끝난다!”란 뜻 아니었을까. ㅎㅎ (주의! 공식적인 의미와 상관없는 뇌피셜) 나중에 알고보니 저 어마무시하게 큰 아치에 전망대가 있어 올라갈 수도 있다고 한다. 뭔가 무식하게(?) 압도적이다.


아치 모양 구조물이 Gateway to the West
세인트루이스. 길도 건물들도 거대하다.


- 미국처럼 넓고 온갖 기후와 지형이 다 있는 나라에서는 어디가 어떤지 짐작만으로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도시의 사정도 마찬가지여서, 유명하지 않지만 막상 가보면 아주 아기자기하고 살기 좋아 보이는 곳도 있고, 완전 망가져서 스러져가는 것 같은 도시도 있었다. 한 주 안에서도, 아니 한 도시 안에서도 서로 매우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방심하다가 위험한 슬럼가에 가 있을 수도 있어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세인트루이스처럼 유명한 대도시의 경우 미리 정보가 있는 편이다. 은근히 악명이 높은 곳인데, 대낮에 대로변으로만 다녀서 그런지 다운타운은 크게 나쁘지 않아 보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 강이 만나는 곳 - 피츠버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