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몰라서 너무 행복했던 날들

사실 행복인줄 알았는데 위기였다.

결혼을 하지 않고 옥탑방 구석에서 미국에 사는 그 남자를 생각하며 웃고 있던 날이 있었다. 만약, 그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일단 미국으로 가서 살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조기 영어 교육 열풍에서 벗어나 아이들을 낳고, 자연스럽게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게 하면 영어도 자연스럽게 배우겠지. 그리고 나는 곰팡이가 벽을 가득 채운 좁은 옥탑방 구석에서 벗어나 쾌적한 집에서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딸일까, 아들일까? 아니면 아들 둘에 딸 둘? 누구를 닮았을까?

참 감사하게도 꿈을 꾸었더니 현실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물론 삶의 고단함, 그리고 부모 형제와 떨어진 외로움이 분명 있었지만, 다정다감한 남편 옆에서 순한 두 딸과 함께 내가 원하던 미국 시골의 넓은 정원이 딸린 집에서 밭에 나는 채소와 베리류를 따먹으며 부족함 없이 살았던 행복한 날들이었다.


물론 모든 것이 100%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남편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꽃가루 알레르기로 고생했다. 한번 들으면 깜짝 놀랄 만한 재채기를 끊임없이 해댔다. 둘째 딸은 무릎 뒤 다리에 아토피 증상이 조금 있었지만 심하지 않았다. 가려우면 긁어라, 좀 피가 나도 나중에 크면 나아지겠지 싶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가끔 체크업을 하러 병원에 가면 나이스한 백인 여자 의사가 필요한 건 없냐며 친절하게 물었고, 딸들을 얼마나 예뻐해 주는지 병원갔다는 사실을 잊을만큼 기억에 남는 좋은 시간들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환절기 알레르기가 있어 가끔 힘들다고 말했더니, 의사는 지르텍 같은 일반 항히스타민제를 사서 매일 먹으라고 권했다. 자신도 매일 먹어서 증상을 완화시킨다고. 의사도 매일 먹는다니, 믿고 남편은 바로 그 약을 구입해서 그날부터 매일 한 알씩 먹기 시작했다. 얼마나 먹었는지, 얼마나 증상을 다스렸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최소 한 달은 넘게 먹지 않았을까.

고등학교때 베지테리언이었던 남편은 대학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유명한 와인산지가 가까이 있는 곳을 다녔다. 당시 고기를 먹지 않았는데, 와인 산지에 유명한 식당에 가서 마음을 먹고 스테이크 한덩이를 시켰다. 그리고 그 고기 맛에 반하여 그 이후로 다시 고기를 먹는 삶을 시작했다. 덕분에 고기와 와인의 조합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마침 우리가 사는 동네에 쿵짝이 잘 맞는 형제가 있어서 자주 저녁 모임을 가졌다. 이 시골에서 할 것도 없으니 먹는 것이라도 잘 먹고 즐겁게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미국 워싱턴주 시골에는 사람들에게 팔기 위해 소를 키우는 농장주들이 꽤 있었다. 마침 남편이 보던 환자 중 한 명이 소를 풀어 놓고 키우는 농장주였고, 아주 저렴하게 소고기를 살 수 있게 해 준다는 제안을 했다. 남편은 농장에 가서 걸어 다니는 소 한 마리를 골라 "저 아이로 잡아 주세요" 하면,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소를 잡아서 뼈와 살을 잘라 포장까지 해 주었다. 그걸 집 냉동실 두세 개에 꽉꽉 채워 두고, 고기가 먹고 싶은 날이면 아침에 미리 빼서 해동해 저녁에 바비큐를 해 먹었다. 남들은 쉬는 주말에만 한다지만 우리는 주중에도 바비큐를 했고, 그게 슬슬 물릴 때쯤이면 크림과 치즈를 가득 넣은 파스타도 만들어 먹었다. 살면서 그렇게 맛있는 치즈와 크래커, 그리고 스테이크를 실컷 먹으며 그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은 참 헛웃음이 난다. 그 시골 구석에는 직접 빵을 만들어 파는 빵집과, 그 동네 이름을 넣어 만든 치즈 공장이 있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옆에 붙은 가게에서 치즈를 사곤 했다. 나는 지금도 치즈를 좋아하고 그립긴 하지만 먹거나 사지는 않는다.


그때 만약 환경과 동물, 건강 문제 때문에 우유와 육식 산업을 비판하는 책, 존 로빈스의 『육식의 종말 Diet for a New America』을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무엇을 먹느냐 보다 어떤 시스템에서 나온 음식인가의 관심을 가진 마이클 폴란의 『잡식동물의 딜레마 The Omnivore's Dilemma』 같은 명저들을 읽었더라면. 그랬다면 밤에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퍼먹으며 무한도전을 보고 낄낄거리는 시간은 없지 않았을까. 물론 무한도전을 본 건 후회하지 않는다. 한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고, 육아와 일의 고단함을 끝내고 부부가 함께 웃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으니까. 다만 참 이상하게도 채소나 과일은 예능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튀김, 피자, 떡볶이, 라면, 아이스크림, 그나마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김밥과 국수. 왜 야식 메뉴들은 늘 기름지고 고칼로리에 고당분, 저섬유질이었을까. 일과 육아, 그리고 시골의 무료한 삶 속에서 유일한 위안은 먹을 것과 한국의 드라마, 예능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드라마를 정주행하며 시간을 보내고, 마음속 공허함을 채우려 늦은 밤까지 깨어 있다가 낮 12시까지 늦잠을 자는 생활이 반복됐다. 남편과 나의 배는 점점 불러왔다. 그때 남편의 별명이 '7개월'이었다. 둘째를 임신해서 배가 부른 나와 비교하며 함께 배를 부여잡고 사진을 찍으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먹는것과 보는 것의 쾌락을 가지고 그것이 행복과 기쁨이라며 살아가던 어느 날, 건선이라는 질환이 남편을 찾아왔다. 그때는 삶의 위기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벼랑 끝에서 젊음만 믿고 까불다 한 방에 훅 가버릴 인생을 구해준 고마운 건선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우리는 목적지 없이 표류하는 배처럼 파도에만 끌려다니다 영영 나오지 못할 바다의 소용돌이에 빨려들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렇게 인생을 낭비하며 살고 있었을지도.


왜 남편은? 왜 우리 가족은?

다른 사람들은 똑같이 먹고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 없이 건강하고 활력 있게 사는 것 같은데, 왜 우리만 이런 병에 걸렸을까. 체질의 문제일까? 환경의 문제일까? 아니면 사회와 음식 문화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 속의 희생자일까?

어쩌면 이 질병은, 이 건선은 나 개인이나 우리 가족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나를 둘러싼 환경 자체가 내 몸에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건 아니야. 이건 바꿔야 돼." 증상으로, 몸으로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 질문이 이 책을 시작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