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꿀 용기
진단명은 생각보다 가볍게 놓였다.
의사의 입술에서 떨어진 단어는 공중에서 잠시 머물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메모를 했으며, 질문도 잊지 않았다. 그 순간까진, 나는 그냥 간호사였다.
진짜 문제는 병원을 나선 뒤였다. 유난히 밝았던 그날의 햇살 아래, 발걸음을 어디로 옮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건선입니다’라는 말보다 더 선명하게 나를 붙잡은 건, 이제는 예전처럼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었다. 병은 하나의 이름을 얻었지만, 우리 집 내일은 여전히 이름 없는 채,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약이 있고, 연고가 있고, 치료 단계가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 지식들은 병원 안에서만 유효했다. 부엌 불을 켜고, 아이들의 간식을 고르고, 하루 세 끼를 준비하는 삶 앞에서는 그 어떤 매뉴얼도 나를 돕지 못했다. 그때부터 나는 걷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생각을 흘려보낼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집 마당을 몇 바퀴 돌며 질문은 점점 단순해졌다.
우리는 어디까지 바꿀 수 있을까. 정말 바꿀 수 있을까. 뭘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대신 아주 현실적인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냉장고와 펜트리 한 켠에 쌓여 있던 포장지들. ‘바쁘니까’, ‘괜찮겠지’라는 마음으로 쌓아온 선택들. 그래서 나는 약보다 먼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치유를 시작하기보다는, 생활을 들여다보기로 한 것에 가까웠다.
초가공 식품들을 하나씩 꺼내 놓으면서 생각했다. 이 병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몸은 늘 조용히 신호를 보내왔는데, 우리가 듣지 않았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 나는 가능한 모든 자료를 모았다. 인터넷, 책, 해외 사례. 건선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전부 읽었다. 완치를 약속하는 문장보다는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들 속에 오래 머물렀다. 희망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였다. 이해하지 못한 채 따르는 삶은 다시 나를 불안하게 만들 것 같았다.
진단명은 생겼다. 그러나 우리 집의 내일은 여전히 막막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하나였다.
치유는 어떤 방법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 과정이라는 사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나는 답을 건네지 않는다. 대신 질문 하나만 남기고 싶다.
질병의 진단 이후의 삶 앞에서,
당신은 어디까지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가.
라이프스타일을 바꿀 용기, 당신에게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