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양쪽 허벅지에 빨간 점들이 생긴 날

바보가 아닌 이상 큰일이 났음을 알아차렸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자기야, 내 양쪽 허벅지 무릎 안쪽으로 빨간 게 생겼어..."

나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뭘 잘못 먹었나 보네. 좀 지켜보자." 그런데 다음 날, 또 그다음 날, 남편은 점점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없어지질 않아. 계속 커지고 늘어나고 합쳐지는데?"

바보가 아닌 이상, 피부에 이런 증상이 나타났다면 뭔가 잘못되었음을 안다. 우리 삶에 단단히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런 증상은 원래 없어야 한다.


그동안 남편은 무엇을 잘못했을까. 운동 부족, 수면 부족, 무분별한 식단, 밤마다 맛있다고 퍼먹던 아이스크림 같은 야식, 그리고 매일 챙겨 먹던 항히스타민제까지. 문제투성이었다. 생활 습관을 바로잡아야 했다. 하지만 그 전에 피부에 나타난 병명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방향성을 갖고 적극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혹시 벌레에 물려 그런 증상이 나올 수도 있으니깐!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한국의 빠른 시스템에 익숙했던 나에게 너무나 느렸다. 예약하고, 기다리고, 인내해야 하는 새로운 세계였다. 특히 피부 증상은 급한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의사를 만나려면 최소 몇 주를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그 기다리는 시간 동안 허벅지 피부 증상은 자꾸만 커지고 늘어났다. 허벅지 전체를 덮더니 등으로, 배로 퍼져만 갔다. 얼마 안 있으면 얼굴과 목, 손, 전신으로 다 퍼질 것만 같은 기세였다. 걱정이 되신 시어머님은 이것저것 알아보셨다. "소금으로 마사지해 봐라", "반신욕을 해 봐라", "이것도 좋다더라", "저것도 좋대". 아직 초등학생이나 중·고등학생 같은 어린 자식이면 딱 데리고 내 마음대로 할 텐데, 나이가 서른이 넘어 다 큰 자식이니 권고밖에 못 하는 어미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리고 같이 사는 부인의 마음은 어떨까? 사실 매일 얼굴 보고 사는 사람이 더 괴롭다.


일단 뭔가를 바꿔야 했다. 금방 바꾼다고 금세 사라질 증상이었다면 그렇게 쉽게 나타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피부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피부과를 찾아가지만, 미국은 주치의나 패밀리 닥터를 먼저 만나야 한다. 피부 발견 부위, 가려움, 통증 여부, 가족력, 발병 시기, 기존 질환, 복용 중인 약물, 생활습관 등을 이야기하고 조사한 뒤, 증상이 경미하거나 국소적이면 주치의가 직접 진단하고 처방한다. 증상이 심하거나 심각하면 그때서야 전문의나 피부과 의사에게 소견서(referral)를 받아 또다시 기다려서 예약하고 의사를 만나는 시스템이다.


나로서는 그 증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막막했다. 의사를 만나기 전에 치료를 해야 하는 급한 상황이라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의사들이 모여 있는 사이트에 들어가 사진을 찍어 올리고 질문했고, 한의사들에게도 물었다. 사실 그분들은 사진만 보고 무엇인지 짐작했겠지만, 건선이라고 진단하기에는 큰 부담이 있었으리라. 충분히 이해한다.


마음만 먹으면 오늘 예약하고 내일 의사를 만나는 시스템을 가진 나라에 사는 사람은 행운이다.

의사는 아토피나 건선을 증상을 보고 만지며 일차적 진단을 한다. 나는 모든 상황과 생활 습관을 알고 남편의 증상을 봤을 때 건선이라고 의심했고, 나중에 오랫동안 기다려 병원에 가서 결국 건선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건선의 특징은 아토피와 다르게 처음에는 많이 가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피부는 원래 표피의 기저층(Basal layer)에서 세포가 생성되어 표면으로 이동하며 성숙하고, 최종적으로 각질층이 되어 떨어진다. 이 과정이 약 28일에서 30일 정도 걸리는 것이 건강한 사람의 상태다. 각질이 얇고 눈에 거의 띄지 않는다. 그래서 때를 안 밀어도 사람들이 각질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건선을 가진 사람은 피부 세포가 일반인에 비해 너무 빨리 증식한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각질 세포 순환 주기가 3~7일로 급격히 단축된다. 그 결과 각질이 두껍게 쌓이고 은백색 비늘 형태로 눈에 띄게 되며, 특히 두피 건선이 있는 사람들은 일반인에 비해 비듬의 양이 급격히 많아진다. 심각한 사람은 온몸에 각질이 많아져서 앉은 자리나 누웠던 침대에 우수수 각질이 떨어진다.


각질을 배출하는 피부의 형태는 처음에는 붉은 상태로 시작되다가, 나중에는 은백색 비늘 형태로 눈에 띄는 각질이 쌓인다. 이 주기가 짧아지면 정상 세포보다 약 4~10배 빠르게 각질이 쌓이고 떨어진다. 뒤에 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그 상태로 방치하면 몸에서 나오는 독소들이 관절에 쌓여 건선성 관절염도 동반하게 된다.

남편의 증상이 건선으로 의심되었고, 뭔가 액션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의사의 정확한 진단을 먼저 받고 스테로이드를 사용해 피부 각질화 속도를 늦추는 대증 요법을 쓰는 것, 현대의학에서 '건선 치료'라고 하는 방법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아직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약에 의존하지 않고 생활 습관과 음식으로 건선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세상에 건선이라는 질환이 있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면, 분명 이미 나아진 사람도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대 의학이 많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건선. 아토피. 두드러기와 같은 피부질환, 류마티스와 강직염 척추염 같은 관절 및 근육질환, 당뇨. 갑상선 기능 저하와와 항진과 같은 내분비계 질환, 크론병. 궤양성 대장염과 같은 소화기 질환, 다발성 경화증과 같은 신경계 질환, 전신 홍반 루푸스와 같이 다양한 자가면역질환은 연고로 부터 시작 면역억제제, 항염증제, 스테로이드와 약으로 증상만을 완화 시킨다. 나는 이런 대증 치료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고 절때 이 방법으로는 완치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행이 간호사라는 직업을 통해 쌓아온 임상 경험과 그동안의 공부는, 이 믿음이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탐색해 볼 가치가 있는 방향임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하나였다.
그 방법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나는 그 질문 앞에서, 비로소 진짜 싸움을 시작했다.

이전 01화뭘 몰라서 너무 행복했던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