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 놀이터-배수의 진
통증을 배 안에 태워두었다.
레고 놀이터
아이들과 뛰어놀던 곳
미안함과 감사함이 가득한 곳
1. 오픈마인드
공무원 공부한답시고 책가방만 들고 놀러 다니던 때가 있었다. 공부 안 한 날이 당연히 많다. '이럴 바엔 책이라도 읽자.'라고 생각했다. 아마 졸면서 책장넘기기 스킬은 이때 터득한 거 같다. 근데 자동스킬이라 지금도 책 한 권 읽으려면 마음을 꽉 붙들어 매야 한다. 스킬로 한 권 두권 숫자 늘리기를 하였다. "와우! 나 오늘 책 읽었다."라며 공부 안 하는 나에 대한 위안을 했다. 확실히 위안은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기억에 남는 책은 별로 없다. 그래도 그때 인생책을 만난 건 큰 행운이다. 그 행운은 향후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중 하나는 오픈마인드라는 어휘였다. '아이들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라고 기억하고 있다. 이 말의 의미를 내면화하려고 했다. 그리고 '세상 모든 것에도 배울 것이 있다'라고 확장시켰다.
세상 모든 것에도 배울 것이 있다.
2. 레고 놀이터 입성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소개로 한 회사에 입사를 하였다. 아이들과 꽤 오랜 시간을 보낼 첫 직장에 입사했다. 그땐 그토록 오래 지내게 될지 생각조차 못했다. 장난감의 대명사로 불리는 레고로 창의력 수업을 하던 회사였다. 참고로 레고는 덴마크의 회사명이자 레고사의 제품 이름이다. 너무나 유명해서 아이들 장난감을 웬만하면 레고로 지칭한다. 시중에 판매되는 완구형태가 아닌 교육용으로 제작된 형태가 존재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교육용 레고로 가정방문 수업, 어린이집, 유치원, 센터 출강을 다녔다. 생애 첫 명함이 생겼고 기분이 너무 좋았다. 되는대로 살던 내게 감히 선생님이란 호칭이 생겼다. 뭔가 안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과분했다. 도전에 도전했고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조금 들 때까지 1년 반정도가 걸렸다.
나도 할 수 있다.
3. 땀*샘(선생님)
그 당시 아이들의 대상연령은 3세~7세가 대다수였고 드물게 초등학생이 있었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기관(어린이집, 유치원, 센터) 수업을 할 때면 아이들 앞에서도 얼굴이 빨개지던 날의 연속이었다. 한 어린이집 부모참관수업 때 났던 땀의 양은 운동할 때의 양보다 적지 않다. 그 후 그 어린이집 선생님 중 한 분은 날 땀*샘(선생님)이라고 놀렸다. 사실 그날 난 분홍색 드레스 셔츠로 한 껏 멋을 부렸다. 헬륨 풍선을 30개 정도 수업교실에 띄워두며 모양새도 제법 근사하게 연출했었다. 그런데 대 참사가 났던 것이다. 그 많은 양의 땀에 생각지 않았던 시스루 패션까지 연출하며 수업을 했던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야 인지했었다.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었다.
부끄러워도 해냈다.
배수의 진
물을 등지고 싸우는 진형의 형태
더 이상 물러설 곳을 없는 상태의 비유적 표현
부끄러워서, 화가 나서 한 버서커모드는 나의 일상이었다. 해도 해도 방법을 몰랐다. 지금 생각해도 들추기 싫은 에피소드 투성이로 가득하다. 하루하루가 숨고 싶기만 했다. 늘 어떤 상황에서 부정적 감정이 들면 숨고 회피하며 합리화, 변명, 핑계를 할 때가 많았다. 근데 이땐 희한하게 물러서지 않았다. 생전 처음으로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던 '그때 난 무슨 마음이었을까?'를 지금 와서 돌아본다. 나를 바꾸고 싶었다. 내성적 성향이 강했다. 얼굴이 안 빨개지고 싶었다. 빨개져도 숨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안된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인다. 그리고 타인을 향해 크게 한 방 강력하게 쏟아냈다. 그 대상은 가장 가까운 사람일 때가 많았다. 이런 내가 나는 싫었다. 그러다 찾아온 직업이 날 바꿀 마지막 기회라 여겼다.
1. 땀샘을 활짝 열고 손을 들었다.
해당월에 입사한 전국 신입 선생님들이 서울 본사에 모였다. 입문교육이라는 소위 신입교육을 받기 위해서였다. 기간은 4박 5일이었다. 교육팀에서 이 기간 동안 반장을 선정하는 절차가 진행되었다. 곧이어 "반장 하실 분 있나요?"라는 질문을 했다. 이미 그전에 *지국에서 입문교육 반장하면 선물 주니까 해보라는 권유는 들었던 터라 반장이란 개념은 알고 있었다. 며칠을 생각했다. 내게 기회가 온다면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생각의 기간이 길다고 하는 건 아니다. 기회가 오고 결심을 했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행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최대단점이 행동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교육팀의 질문에 그 누구도 손을 들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다음 절차가 진행될 걸 모두가 알고 있다. 그 순간 심장박동소리가 밖까지 울려 퍼지는 듯했다. '쿵! 쾅! 쿵! 쾅!' 하는 박동소리가 점점 커지는 그 순간 내 안에서 소리쳤다. '에라 모르겠다.' 그리고 저질러버렸다. 으레 다음을 진행하려는 교육팀의 시선을 붙잡았다. 난 온몸이 새빨간 채로 오른손을 들고 있었다. 온몸의 땀샘은 활짝 열려있었다. 어쩌다 문득 이 날이 생각나면 늘 "잘했다."라고 칭찬한다.
*지국: 지역에서 본사의 위탁업무를 하는 곳.
에라 모르겠다.
2. 통증을 배 안에 태워두었다.
그때 난 '지금 안 하면 난 평생 못해.'만 되뇌었다. 이 한 문장은 그때 이후로 중요한 결정마다 날 뒤로 물러서지 않게 하는 말이다. 이 날 난 배가 뒤틀어져서 아펐다. 난 극도의 긴장감을 느끼면 배에 엄청난 통증을 겪어야 했다. 몸은 아팠지만 마음은 너무나 기뻤다. 지국으로 복귀했고 반장선물로 받은 작은 레고 상자를 뿌듯해하며 자랑하였다. 계속되는 훈련, 교육, 선배들의 피드백이 이어졌다. 드디어 첫 수업 날이다. 내가 생각한 것과 차원이 달랐다. 그나마 남았던 뿌듯함마저 사라지고 좌절감과 두려움은 더욱더 커졌다. '어떡하든 시간은 간다.'만을 되뇌며 지냈다.
실력 없는 나를 매일 확인하는 회의감의 연속이었다. 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나와의 회의를 계속하였다. 그래도 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통증은 갈 곳이 없다. 늘 배 안에 타고 있을 수밖에 없게 했다. 그렇게 배수의 진을 펼쳤다.
지금 안 하면 난 평생 못해.
어떡하든 시간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