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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별난 Sep 25. 2024

3화 여섯 개의 눈

네모난 세상

여섯 개의 눈


형이 던지는 주사위는 눈은 뭐가 나올지 모른다.  


'제발 6만 나오지 마라. 제~발'


데굴데굴 구르더니 첫 번째 주사위 2이고 두 번째 주사위는 4이다.


"하하하. 6이 나왔네. 우주여행이다."

"자. 도중이 네 차례야. 그전에 형 화장실 갔다가 올게. 기다려"


"웅, 알았어"


형은 똥을 오래 싼다. 그래서 좋다. 잠시나마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형은 학교 끝나고 할 놀이를 정할 때도 주사위를 굴리는 건가? 부루마불만 며칠째인지 모른다. 그 주사위를 본 적이 없다. 아무도 모르는 형의 생각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이 즐겨하는 것을 보면 주사위의 눈 옆에 글자도 적혀있을 것 같다.


"후~우"


이 부루마불 판 위에 놓인 방금 던지고 간 주사위에 입김을 불어 보지만 미끄러질 뿐 숫자가 바뀌지 않는다.


'형의 입김이라면 가능할까?'


⚀ 동그란 딱지(파파 먹기)


형은 주먹만큼이나 입김도 엄청 세다. 동그란 딱지를 불어서 넘기는 '파파 먹기'의 달인이다. 마루에 있는 찬장 서랍엔 형의 동그란 딱지가 가득 차 있다. 어느 날, 구경하려고 서랍을 조심스레 열려했다. 그런데 이 찬장 너무 오래돼서 서랍이 너무 뻑뻑하다. 너무 세게 당기다가 깔끔하게 맞춰 놓은 오와 열을 흐트러트렸다. 뒤에서 형의 그림자를 느낀 그 순간, 난 맞았다. 집은 늘 언제 맞을지 모르는 전쟁터 같았다.


⚁ 전쟁놀이


건담 로봇을 좋아하던 나와 달리 형은 탱크와 총만 만든다. 작은 군인들을 가지고 전쟁놀이를 즐기며, 담배파이프를 물고 있는 맥아더 장군을 잡는다.


“진격 앞으로 탕탕! 펑펑!”


힘차고 우렁차게 외치며 형은 탱크를 운전한다. 형이 흥분하고 있다. 어디에 폭탄이 터지고 누가 맞을지 모르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전쟁에 참전했다가 무전병의 팔을 부러뜨린 날, 난 맞아서 부상을 입을 뻔했다. 부상 입고 쓰러져 있는 무전병이 내게 전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도와주세요! 구해주세요!'


나는 조심스레 무전에 응답했다.


'나도 지금 당신 마음과 같아요. 이 무전이 형에게 들키면 절대 안 돼요. 형이 잠시 자리를 비우면 내가 그때 다시 무전할게요. 그때까지 힘내세요. 팔은 진짜 너무너무 미안해요.'


전쟁은 무전병도 나도 힘든 상황이다. 담배를 하루 종일 피우고 있어야 하는 맥아더 장군도 힘들어 보인다.


'퓨~우~웅, 다다다다, 쿠르릉 펑, 탕탕'


끊이지 않는 형의 소리에 고막이 터지고, 떨어지는 형의 침 폭격에 탱크는 녹슬고, 작은 군인들은 살이 썩는다. 내가 본 이 전쟁은 누구에게나 힘들었다. 난 형만 즐거운 이 전쟁놀이가 싫었다. 그러나 언제나 강제 징집 1순위는 나였다.  


"제군들, 승리가 눈앞이다. 저 산맥만 넘어가면 된다. 멈추지 말라!" 


⚂ 구슬치기


형과 자훈이는 동네에서 구슬치기의 양대산맥이다. 둘이 겨루는 모습은 한 번도 못 봤다. 자훈이가 정확함이라면 형은 힘 그 자체였다. 이 둘이 던진 구슬에 내 구슬은 맞고 깨졌다. 몇 달 전 형을 따라 방에서 푸른 구슬을 박살 낸 날, 난 맞고 구슬 파편 속에 쓰러졌었다. 형은 가볍게 때렸을지 모르지만, 난 맞아 죽는 줄 알았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

이 속담 속 개구리가 나로 느껴졌다


⚃ 종이 개구리


나는 형이 가지고 있는 많은 개구리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자로 잰 듯한 딱지 정리와 프라모델 조립 실력은 종이 접기에 그대로 보였다. 맥아더장군 및 많은 군인들과 함께 지내온 형은 선을 자로 잰 듯 접는데, 간혹 안 맞으면 그 종이는 다른 용도로 쓰였다. 특히 종이 개구리를 만들어 키우는 것을 형은 무척 좋아했다. 종이 개구리 엉덩이 부분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스프링처럼 튀어 오른다. 종이 개구리들도 형이 던지는 돌 같은 주먹이 무서운지 ‘개굴개굴’ 마음속으로 울고 있는 듯했다.  형은 종이 개구리로 노는 날이면 위인전집을 꺼내 책계단을 만들고, 책 터널을 만들어 온갖 장애물을 만들어 놓고 자신만의 대회를 열었다. 이때, 난 장애물 만들다가 위인들 이름이 익숙해졌다. 아까 잘못 접은 종이로 멀리뛰기, 높이뛰기, 장애물 달리기, 트랙 경기를 한 개구리들의 랩 타임 등 대회 기록을 적어나갔다. 한 번은 개구리의 방향을 잘못 눌러 개구리 뒷다리를 찢어버린 날, 난 많이 맞았다.


"다신 안 그럴게."


나는 궤도를 찾기 위해 울지 않고 일어나야 한다. 안 일어나면 더 맞는다.


'울지 말고 일어나~♬ 빰빠빠'

이 만화주제곡을 따라 부른다.


이 날 찢어진 개구리는 형의 대회 기록지에 높이뛰기 기록 보유자로 적혀있었다.


⚄ 동전 농구


아파도 눈물을 참고 있는 나에게 아이스크림 심부름을 시킨다. 사기로 만든 연필꽂이통에서 동전을 꺼낸다. 이 통은 형의 저금통으로, 동전이 엄청 많다.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돈이었다. 오락실 갈 때 건드리다 들켜서 맞은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 동전 때문에 맞은 건 나뿐만이 아니다. 아빠가 고스톱을 칠 때 가져간 적이 있었다. 형은 그런 아빠에게 큰 소리로 소리쳤다.


"후~우   파! 뭐 하시는 거예요? 다시는 건드리지 마세요!"


아빠는 형이 파파 먹기의 달인이였는지 몰랐던 때였다. '후~우'가 한숨 소리일까? 공기를 모으는 걸까? 형 입에서 수많은 침이 온 방에 떨어지는 걸 보면 후자인 거 같기는 하다. 이러다가 방바닥이 썩어 집이 무너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 후로 집안에서 그 저금통을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이 동전의 용도는 두 엄지손가락 사이에 동전을 끼고  던지는 농구게임이었다. 형이 동전 농구를 하는 모습을 보면 연고전을 방불케 했다.


다락방의 장난감, 구슬. 마루 찬장에 동그란 딱지. 책상 위 동전. 안방 문에 패인 주먹 자국. 부엌에서 라면 끓이며 치는 벽... 이 공간은 모두 형의 영역이었다.


'형은 하루하루 주사위를 던지며 이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닐까?'


'오늘은 뭘 하면서 놀까? 오늘은 6이 나왔으면 좋겠다. 으흐흐.' (무섭다)


⚅ 부루마불


"하하하. 6이 나왔네. 우주여행이다."


"자. 도중이 네 차례야. 그전에 형 화장실 갔다가 올게. 기다려"


'형이 잠시 자리를 비우면 무전병에게 연락한다고 약속했는데, 지금이 그때가 왔다.'


지지직 지지직


'들리세요? 팔이 붙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다행이에요. 그나저나 저 좀 구해주세요. 들리세요?'


지지직~Zzz ~zzz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형은 이미 무전병의 팔을 접착제로 치료 후 군인들을 모아놓는 막사 같은 장난감통에 넣어 소등할 필요도 없는 다락방으로 강제취침시킨 후였다. 


그리고 오늘도 형은 부루마불 판을 깔았다.


형이 던진 주사위로 놀이는 바뀔 수 있지만, 난 이 주사위 안에 갇혀 던져지는 나는 안 바뀐다. 지금 보고 있는 이 네모난 부루마불 판도, 그 위의 두 개의 주사위도, 이 집도, 형 생각의 방에 있는 주사위도 모두 네모난 세상이었다.


'이 네모난 세상을 부수고 푸른 지구에 살고 싶은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질 수 없던 푸른 구슬을 깨는 것뿐이었다.'


형의 경쾌한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진다. 내가 던질 차례다.


'제발 9가 나와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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