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판에서 내가 발 디딜 곳은 없다. 내 차례마다 형이 소유한 나라의 통행료를 감당할 수 없다. 한 바퀴 돌 때마다 받는 월급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네모난 지구 위에서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오직 한 군데, 무인도다. 그곳만이 잠시라도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다. 지금 나는 그리스 아테네에 있다. 9칸 앞에 무인도가 있다.
'제발 9가 나와라. 제~발!'
주사위가 굴러 첫 번째는 4, 두 번째는 6이다. 그리스의 신들은 형에게 손을 들어줬다. 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했다. 이곳은 비록 호텔 1 채지만 난 전재산을 내야 한다. 이렇게 내 소유는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었다.
형은 세계 여러 나라에 호텔과 빌딩, 별장을 몇 채씩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뉴욕에 또 하나의 호텔을 올리고 있다. 돈은 언제나 형에게로 흐르고, 내 돈은 월급뿐인 상황이다. 월급만으로 이 네모난 지구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내 차례가 되고 주사위를 던질 때마다 난 모든 것을 잃는다.
월급-빚-파산-형의 구제를 무한 반복하며 이 지구를 몇 바퀴째 돌고 있는지 모르겠다. 몇 시간 동안 주사위를 던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그렇다.
"하하하. 넌 어떻게 계속 파산이냐? 잠깐만, 통행료가 얼마더라. 호텔이 2개에 빌딩이 3개니까..."
씨앗증서를 펼치고 계산하고 있는 형을 볼 때면 모기만도 못했던 용기가 솟아오르기도 했다. 간신히 모은 돈이 다 없어지고 이런 나를 보며 웃고 있는 형을 보고 있노라면 이 판을 뒤집어 형의 모든 건물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번도 나를 때린 적도 없던 아빠가 고스톱 칠 때 판을 뒤집고 흥분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래, 나도 할 수 있어.'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두렵다. 무섭다. 형은 내가 이런 감정 상태인 걸 아는 건지, 놀이를 끝내고 싶지 않은 건지, 그런 나를 바로 통제하며 한 마디를 한다.
"자, 도중아, 여기 우대권 받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우대권을 준다.
"웅. 형 고마워."
나는 나의 궤도를 찾기 위해 말한다. 이 말을 안 하고 궤도를 이탈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도는 내 몸이 수많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내가 널 생각해서 주는 걸 감히 거부해? 뭐 하는 짓이야?'
푸른 구슬 사건 때처럼 내가 그대로 방바닥에 뒤집힐 수 있다.
'힘들다. 쉬고 싶다. 놀이터 가고 싶다.'
형은 내가 힘들어하는 걸 모르는지, 끊임없이 말을 한다.
"하하하. 잘 굴려봐."
"하하하. 6이 나왔네. 우주여행이다. 뉴욕에 가서 호텔을 더 지을까? 아니, 일본을 사버려야겠다."
"하하하. 도중이 네 차례야. 3이 나오면.... 4가 나오면... 5가 나오면..."
형은 내가 던지기 전에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를 계산하며 즐기고 있지만, 사실 몇 시간 전부터 나는 어떤 숫자가 나와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파산될 위기에 처하면 형이 우대권을 준다. 더 이상 나는 이 네모난 지구에 관심이 없다. 지구 어디에 있든 내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저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무인도만이 이 판에서 제일가고 싶은 곳이었다. 주사위를 던지는 것도, 돈을 바라보는 것도 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