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e You 놀이터-버티고 버티자.
버티고 버텨라.
See You 놀이터
모두 세상이란 놀이터에서 다시 보자는 의미
도시락 생산 공장
4년 근무-1년 공백기-재입사 후 지금 내가 있는 직장
"이 주사 1년에 2회밖에 안 넣어주는 거예요." 웬만하면 안 맞길 권유하는 의사 선생님께 "놔주세요."라 말한다. "많이 아파요." 하며 긴 바늘이 손목 사이로 들어간다. 소주병 하나를 못 딴다. 소주병을 건네주며 친구에게 부탁한다. 돌려서 따는 뚜껑은 딸 수 없다. 누구의 도움이 없으면 캔 음료도 못 마신다. 빨대 꽂는 커피만 마신다. 손의 감각이 무뎌져서 무언가에 자꾸 부딪힌다. 물건을 자꾸 놓친다.
입사한 공장 식품생산직 한 달 만에 내 몸이 견뎌내질 못했다. 두 달 만에 손목이 아작 났다. 퇴근 후 뜨거운 물에 찜찜을 꼭 하며 물리치료도 몇 회 받았지만 더 빨리 신경 썼어야 했다.
"아픈 부위를 안 써야 괜찮아져요."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의사 선생님의 이 한마디. 맞다. 우리 몸이 회복할 시간을 줘야 한다. 그러나 "그러면 일은 누가 해? 생활비는? 아이들은?"이라는 질문에 난 반박할 수가 없다. 알아도 행하지 못하는 영역이 세상엔 존재한다. 이 영역에서 '행하지 않는 건 모르는 것이다.'라는 팻말을 꽂는 건 웬만한 소신 없으면 해선 안 되는 행동 중 하나일지 모른다.
어느덧 5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뭔가 명함을 내밀게 없어서 치료글을 겨우 끄집어내어 봤다. 이 공장 분들은 사실 저런 것쯤 기본 베이스로 깔고 간다. 이곳엔 장인들이 많다. 그들은 저런 걸 몇 개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음날 또 출근한다. "아들놈 지갑 아껴줘야지. 손주 과자라도 사주려면." "이 나이에 일한다는 것 자체가 살아있음을 느껴서 행복해." "죽지 못해 하는 거지." "갈 때가 딱히 없어." "전 직장서 얼마 벌었는데 돈이 중요한가. 돈 없어도 행복한 게 중요하지." 이유도 표현도 다 다르다. 이곳에서 난 인간관계의 균형을 배우고 있다. 이제야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는 곳이 되었고 나의 힐링 직장이 되었다.
하지만 초반에 난 "힘 들 어 죽 는 줄 알 았 다." 인간관계? 당치도 않다. 나 자신에게 너라는 표현을 많이 할 때였다. '이젠 널 더 이상 힘들지 않게 할게!' '이젠 내가 버틸게! 넌 쉬어!' '내가 너를 지킬게!'라는 생각들만 하고 지냈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2018년 8월 그해 여름날
뱅뱅이를 내리고 몇 달 동안 급한 불을 끄기 시작했다. 빗발치던 독촉과 압류 압박을 멈추어 놓았다. 한 조직의 수장으로서 다녔던 회사를 다 무너뜨리고 퇴사했다. 그래도 날 믿어주고 계신 몇몇 어머님들이 계셨다. 그 아이들에 대한 수업은 하고 있었다.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고정수입이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간 곳은 공장이었다. 낮 수업을 하는 아이들과 마지막 수업 일정을 잡았다. 마지막 인사를 할 때 찡한 느낌이 아직도 느껴진다. 저녁 수업은 퇴근 후 할 수 있었기에 수업을 계속 진행하였다. 다행히 이 공장은 강제 잔업이 아니었다. 그래도 부서의 일을 다 못 끝내고 퇴근해서 눈치가 보였다.
첫 출근 날이다.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하얀 위생복을 입었다. 마스크 낀 얼굴을 제외한 피부를 노출시키면 안 됐다. 식품의 온도를 유지시켜야 하기에 특정 부서는 냉장고였다. 온도가 낮은 부서는 7~8도이고 높은 부서는 10도가 넘었다. 이 부서에서 저부서로 이동하는 사이에 온도차이가 있다. 때문에 안경의 습기가 많이 찬다. 또 길은 어찌나 복잡한지 길치인 나에겐 미로이다. 첫날 사수를 따라다니면서 일을 배우며 돌아다녔다. 여지없이 안경에 습기가 찼다. 그러다 복잡한 길에 길을 잃고 미아가 된 적도 있다. 그냥 어리바리 자체였다. 그날 진이 쏘~옥 빠졌다. 난 레고놀이터에서 생각했던 '어찌 되었던 시간은 간다.'와 이 당시 내 머리를 가득 채운 '버티고 버텨라.'만을 생각하며 하루일과를 끝냈다. 잔업을 안 하는 조건이어서 입사했기에 일은 많이 남았지만 정시퇴근을 했다. 차에 가서 챙겨놓은 정장을 들고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고 수업을 하러 갔다. 수업진행이 예전만 못한 게 느껴졌다. 그땐 밀려오는 피로감에 졸음운전이 꽤 많았었다. 그래도 즐거워하는 아이는 나를 힐링해 주었다. 집에 가 밥보다 급한 잠을 잤다.
둘째 날이다. 난 제시간에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조장이 있었다. 급해진 그는 부서문을 열고 들어와 "아직도 안 됐어 아~이것도 못해. 내놔봐." 하며 금세 해냈다. 그리고 "너 병신이야 " 한 마디하고 부서 문을 나갔다. 뒤이어 관리자가 지나가며 무심코 내뱉는다. "앞치마 왜 안 하세요 " "토시 왜 안 하세요 " "아~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 난 어떤 상황이든 이유를 먼저 궁금해서 물어보는 직장을 다녔다.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그 물음표의 의미를 소중히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이날 들은 문장들은 물음표가 빠져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이번엔 선배들 차례이다. "이럴 땐 이렇게 하는 거야. 몰랐어 " "그럴 수 있어. 처음엔 다 그렇지. 몰랐구나 " 했다. 역시나 물음표가 다 빠져있었다. 그건 내게 비아냥과 무시의 보이지 않는 마침표였다. 나에겐 그저 모두가 한 문장으로 해석되었다. "이봐 신입 우리가 네 윗사람이야. 너보단 우리가 더 많이 알아."의 텃새이자 으스댐이었다. 그것이 내가 접한 공장이란 조직의 초창기 모습이었다. 하루하루가 그런 똑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기분 나쁘고 짜증 났다. 불쾌했고 화가 났다. 그러나 나에겐 그런 감정조차 사치고 욕심이었다.
며칠이 지났는지 모른다. 실력이 안 느는 건지 생각 속에 사는 건지 퇴근정시까지 부서의 일을 끝낸다는 것은 불가능처럼 보였다. 한 사람이 처리해야 하는 일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신입을 봐주는 시간은 끝났다. 사수는 "근데 실력이 안 느시네요. 오늘 꼭 정시퇴근 하셔야 해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질문을 받는 게 그 당시는 매우 드문 일인데 이건 물음표가 있다. 그러나 안된다고 말을 해야 했다. 난 또 빨리 씻고 수업을 가야 했다.
그 질문하나에 이 상태로는 안된다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난 물품배치 위치부터 동선까지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몸의 속도도 빠르게 가져갔다. 목표는 혼자 힘으로 정시퇴근하기였다. 이리 해보고 저리 해보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면서 속도가 빨라졌고 드디어 해냈다.
그렇게 시작한 공장 생활이 벌써 5년 전이다. 공장 생활 속의 난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전까지 못 들어보았던 평가들을 듣기 시작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공장생활을 접고 1년의 공백기를 가지고 재입사 후 8개월이 흘렀다. 이곳이 지금 위성이 찾을 수 있는 몸의 위치이다. 그리고 나 스스로 찾아야 하는 마음의 위치를 찾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