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삼 ×삼한 참붕어 DAY, 눈 내리는 밤에…
①3부 ② 아빠 되는 삶 ③ 3인 가족
'따르릉~'
"언제 들어와?"
"내일 회의 자료 만드는 중인데, 거의 다 했어. 늦으면 12시 정도 될 것 같아. 졸리면 먼저 자."
"하선(태명: 하늘이 준 선물)이가 붕어빵 먹고 싶데."
"어, 그래? (기뻐하며) 들어갈 때 사갈게. 팥? 슈크림? 몇 마리 먹고 싶데?"
"아니. 수박."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잠시 멍해졌다.
"수박? 대박, 박수 뭐 이런 거 아니고?"
"어, 수박. 잘 마무리하고 얼른 와."
"어, 그래... 알았어. 꼭 사갈게. 근데, 하선이에게 다시 물어봐봐. 진짜 수박 넣은 붕어빵 맞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박 맞대."
'띠리링~'
끊겼다. 그 찰나 살짝 새어 나온 얇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괜스레 나도 미소가 지어졌다.
난 새벽에 일찍 일어나 마무리하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회의 자료의 제목을 고치고 사무실을 나섰다.
<붕어빵, 수박, 겨울>
얼마나 한 자리에서, 한겨울 시린 바람맞으며, 한결같이 있었을까?
외우지 않았어도 따라 부르게 되는 노랫말처럼
붕어빵 노점상 위치가 몇 군데 떠올랐다.
늦은 시간이라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붕어를 낚을 수 있게 되었다.
① 그래, 아직도 이렇게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분이 계시기에 가능한 일이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팥 3개, 슈크림 3개랑 아무것도 안 넣고 3개 주세요."
"네?..."
이제 수박만 구하면 된다. 편의점을 몇 군데 둘러봐도 없다. 일단, 유흥주점이 많은 번화가로 갔다.
"사장님, 오늘 물 좋은데 한 번 놀다 가세요. 얘들 보고 맘에 안 들면 나오셔도 돼요. "
삐끼가 붙었다. 이들은 날 언제 봤다고 늘 이렇게 부른다. 그래도 그들이 오늘따라 희망의 빛처럼 삐까난다.
"거기, 혹시 과일 안주에 수박 들어가나요? 포장되나요?"
"예?..."
평소에 받지도 않던 명함을 건네받고 주변 건물들을 보며 걸었다. 하선이가 먹는 건데 좋은 걸 구해야 한다. 근사해 보이는 주점이면 수박품질이 무조건 좋을 거다. 이 고정관념을 챙겨서 찾아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시죠?"
"혼자예요."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봤다. 오호, 사진에 수박이 있다. 됐다. 미션 완수다.
"저, 과일안주에 사진 같은 수박 들어가는 거 맞죠? 이거 하나만 포장해 주실 수 있나요?"
"무슨 과일 안주를 포장? 그리고 지금 수박 안 넣어요."
비싸 보이는 곳은 불친절하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싶었는데, 더 단단하게 챙겨서 가져 나왔다. 분명히 팔고 있는데 포장해 달라고 해서 귀찮아서 그럴 수 있다. 내가 너무 상냥하게 저자세로 접근해서 그랬나 보다. 다음 집에서는 다르게 접근하자.
대박. 여기는 수박화채도 있다. 수박만 챙길 수 있으니 가성비도 좋다. 주문하고 알맹이만 가져가면 된다. 심호흡을 하고 종업원을 불렀다.
"수박화채 하나 주시고 수박은 따로 분류해 주시고요. 찍먹으로 먹을 거라."
"찍먹요?..."
'아뿔싸. 찍먹 얘기는 할 필요 없던 말이었는데.'
"화채는 주문 불가상품 표시되어 있는데. 과일도 그렇고요. 여기 별도 표기된 내용 못 보셨어요? (손가락으로 메뉴판을 콕콕 찍으며)"
젠장. 간절함에 정신 팔려 시야가 좁아졌었다. 메뉴판에 붙은 스티커를 못 봤다. 'X 주문불가' 이제야 보인다. 그 순간, 방금 전에 물 한 잔을 마시다 흘린 물이 테이블 위에 고여 있는 것도 보였다.
"(냅킨을 뽑아 닦으며) 아하. 네. 제가 못 봤었네요. (의기소침하며) 그럼, 수박은 안 파는 거죠?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횡설수설하며)"
젠장. 또 싫은 느낌을 회피하고 숨어 들어가려는 본성이 스멀스멀 꿈틀거린다. 굳은 의지가 한 풀 꺾여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려 한다. 수박이 이렇게 귀한 것이었나. 몇 군데를 더 다녀도 없다. 살짝 지치기 시작한다.
난 결국 주머니의 명함을 꺼내 보았다. 여기 가면 있을 확률이 더 높다는 걸 알면서도 여기까지 가기 싫었다. 그래. 안 좋은 곳이라는 고정관념 정도는 잠시 내려놓자. 그리고 난 놀러 가는 것이 아니다. 긴장하지 말자.
"어서 오세요."
"네, 안녕하세요. 사장님, 여기 수박이 있나요?"
"우리 얘들 중에 수박이는 없는데. 혹시, 다른 가게 지명한 아가씨예요?"
"아, 아니요. 과일이요."
마담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은 잠시 어이없어하는 듯했다.
"하하. 이 오빠 엉뚱하네. 그런데 갑자기 수박을 찾는 이유가?"
"다름이 아니라, "
그래 솔직함이라는 무기를 꺼내 들자. 사정을 설명하였다. 이외의 상황이 연출되었다. 주방이모가 무료로 몇 조각 담아주었다. 마담은 끝내 돈을 받지 않더니 거기에 환한 유혹의 미소까지 덤으로 주었다.
일상적이지 않는 수박 붕어빵을 구하러 돌아다니는 내내, 다들 나를 이상하게 본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를 물어봐 준 사람이 없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이곳에서 내 이유를 물어봐주고 난 원하는 것을 얻었다. 평소에 부정적이던 곳이고 신경도 안 쓰던 곳에서 그것도 공짜로 얻었다.
"오빠야 와이프는 좋겠네. 나중에 시간 되면 놀러 와요."
나오려 하는데 50대 술에 취한 남성을 부축하고 있는 아가씨 한 명을 마주쳤다. 상당히 낯이 익었다.
"추화야, 어서 옷 갈아입고 준비해. 너 예약손님 받을 시간 됐어."
"아, 언니 본명 부르지 말라니까. 짜증 나게."
어렸을 때, 놀이터에서 자훈이가 돌려주던 뱅뱅이를 같이 탔던 추화였다. 그녀도 나를 알아본 느낌이었지만, 서로 그냥 못 본 척 지나쳤다. 그녀의 아버님은 아버지 생전에 서로 의형제 같은 사이였다. 아직도 어머니는 추화의 부모님과 가끔 연락을 하시는데, 얼마 전 어머니께 들었던 내용과 달라서 놀랐다.
추화가 사라지고, 난 물어보았다.
"방금 전 그 아가씨, 추화라고 했나요?"
"왜요? 마음에 드는구나? 샌님 오빠는 그래도 오늘은 안돼. 아가 수박까지 구하러 왔는데 일단 들어가고, 다음에 올 때 미리 연락 줘요. 추화 붙여줄게. (명함을 건네며)"
(얼굴이 살짝 빨개지며) 건네받고 나왔다. 아, 오늘 받은 유흥업소 명함이 몇 장인지 모르겠다. 이제 필요 없어서 다 버리고 몸을 가볍게 했다. 그런데 난 잠시 '멈칫'했고, 뒤돌아 쓰레기통을 보면서 잠시 '갈등'했다. 그리고 뒤지기로 '결정'했다. 방금 받은 명함을 찾아 주머니에 넣었다.
'왜? 추화가 여기에 있지? 분명 얼마 전 시집 잘 가서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왜? 이런 곳까지 떨어진 거지?'
아무튼 이제 다 준비되었다.
② 그래, 겨울과 수박.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길이라도 가야 한다면, 나 방법을 찾아가면 된다.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아직까지 아내가 전화를 안 한 거 보니, 기다리다 잠들었나 보다.
집에 도착하니 그녀가 웬일로 코를 골며 숙면을 취하고 있다. 오늘은 하선이도 발길질이 심하지 않나 보다.
난 이제 내 의지를 마무리하고 자야 된다.
조심스레 주방으로 갔다. 회를 떠 본 적도 없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 진짜 수박 붕어빵처럼 보이도록 위장해야 한다. 자른 부분이 잘 안 보이게 지느러미 아래쪽을 정교하 갈랐다.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밀가루 내장을 티스푼으로 긁어 빼냈다.
수박을 잘게 채 썰고, 큼직하게 깍둑 썰고, 하트모양으로 조각했다.
붕어 세 마리의 배를 벌리고 각각을 정성스레 넣었다. 붕어들은 수박을 잔뜩 먹더니 배가 빵빵해졌다. 내 기분도 덩달아 방방 떴다. 목이 상당히 뻐근해서 잠시 쉬기로 했다. 커피 한잔 마시면서 창밖의 눈을 바라보았다. 제법 눈발이 굵어지고 있었다.
손을 씻고 배를 어떻게든 붙이는데 잘 안된다. 이건 생각하지도 못했다. 붕어의 모양이 망가지고 있다. 으악, 이쑤시개를 꽂아 고정시키려다 지느러미가 떨어져 나갔다. 손으로 하도 문대서 쭈글쭈글. 붕어의 노화까지 진행됐다.
아, 윗부분을 가를 걸 그랬다. 이대로라면 새로 이식한 수박의 빨간 물 흘러내릴 수도 있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으악, 애초에 그냥 뒤집었으면 됐다. 그러면 고개도 안 아프고, 수박을 넣기도 쉽고, 모양도 지금보다 안 망가졌다. 어이없지만 누굴 탓하랴. 그냥 웃어 본다. 하하하.
③ 그래, 내가 한 행동은 돌이킬 수 없다. 만회하는데 집중하자.
끼운 이쑤시개 기둥에 A4 종이를 살짝 끼워 두었다.
접시 위에 있는 이 붕어 세 마리가 마치 나의 삶처럼 보인다.
접시는 내가 설 땅이고,
이쑤시개는 내가 세울 삶의 기둥이고,
A4 지는 가족의 지붕이다.
도착할 때 즈음 내리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창 밖이 함박눈 천지다. 참 뿌듯한 날이었다. 꺼내서 모아둔 반죽을 먹는데, 다 식었지만 입에서 살살 녹았다.
④ 그래, 내일도 끝나지 않을 이 겨울은 이렇게 살아가면 된다.
그리고
종이에 쓴 글은
내가 지켜가야 할 마음이다.
내가 써 나아갈 스토리다.
-앞면-
[참붕어]
참... 기분이 좋아. 당신이, 하선이가 있어서
붕... 뜨는
어... 제였고, 오늘이고, 내일일 거야
[3 ×3]
세 시간대 세 식구 새 미래를 만들며...
^3~♡ ^3~♡ ^3~♡ 쪽 쪽 쪽
3가지 맛이 3개씩 9개
오늘, 잘 산 거 같아
얼마인 줄 알아?
대박 찬스! 대박 사건이었어
나, 오늘을 참 잘 산 거 같아
우리 내일도 참 잘 살 거야
[참붕어 DAY]
구원이었어
구마워. 구리구, 사랑하구.
당신을 만난 건 구원이었어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밖에 눈이 내리고 있어
이 세상이 덮어주는
이 새하얀 세상처럼
이 붕어빵에 넣은
이 수박처럼
하선이 미래에
넣어 주자
삼×삼한 참붕어 DAY 눈 내리는 밤에...
P.S
하선이 수박붕어빵 준비하면서
당신에게도 준비한 게 있어
가끔 짜증 나고 투정 부릴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그런 남편이 되도록 할게
거꾸로 뒤집으면 돼
-뒷면-
당신
오늘도
참 고생하고, 참 수고했고, 참 잘했어
짝! 짝! 짝!
<3+1부에 계속>
*추화는 40화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향후 4권[쾌락 편]에서 재등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