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참붕어 DAY, 네 박자에 박수를 실어~♬
참붕어 DAY +1일
교육장에 다들 모였다. 난 인사에 앞서 칠판에 [수박, 겨울, 붕어빵]이라고 적었다. 뒤돌아서 선생님들과 눈 한 번씩 맞추고 인사를 하였다.
"박수 세 번 시작. (짝! 짝! 짝) 안녕하세요."
내 엉뚱한 급 진행이 있을 때면, 반응은 크게 두 가지이다.
신입 선생님들은 어이없어하는 것 같다 '뭐야? 갑자기?'
나와 조금 지내본 이들은 속으로 생각한다. '아, 또 시작이네. 오늘 또 길어지려나보다.'
맞다. 오늘 좀 길다. 준비한 말이 많다.
"아직도 어제 일 같은데 벌써 5년 전이네요."
참붕어 DAY -5년
오늘 수업 분위기가 매우 소란스럽다. 장난이 심한 두 명을 본보기로 삼기로 했다. 훈육을 한다는 명분하에 둘을 일으켜 세워 야단치고 자리로 보냈다. 잠시 후, 그중 한 아이가 식은땀을 흘리며 아파하는데, 난 아랑곳하지 않고 수업을 진행했다. 몇 분 정도 흘렀을까, 뭔가 잘못됐다는 판단이 섰다. 담임 선생님을 호출했고, 아이는 그녀를 따라 나갔다. 얼마 남지 않은 수업을 마저 끝내고 나왔다. 밖에 구급차가 와있었다. 원장님께 자초지종을 듣는데, 그 아이 팔이 빠진 것 같다고 한다.
"신입 시절 때, OO어린이집 출강 때 이야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아이 어머님 전화번호 알려달라고 했죠. 개인정보 때문인지, 원 입장에서 잘 이야기한다며 오히려 절 안심시키더라고요. 일단, 나왔지만 걱정이 계속되었어요. 오후에 당시 지국장님한테 연락이 왔어요. 다음 수업일정을 조정하고 바로 합류했어요.
담임 선생님, 지국장님, 저는 책, 레고, 간식을 사서 아이 집으로 찾아갔어요. 할아버지가 평생을 교육에 몸담으셨던 분이었는데, 이런저런 좋은 말씀 듣고 나왔어요.
2년 전, 크게 난 교통사고 때, 아이 아빠는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아이는 그때 이후로 팔이 잘 빠진대요. 울컥하는데 고개를 들 수가 없었어요. 아이 엄마는 타지에서 돈벌이를 하고 있었고, 그때부터 두 분이 돌봐주고 계셨대요.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후회되고 제 자신이 한스럽더라고요. 이후 한 달 정도 아이 등원, 하원 시간에 맞춰 안부전화를 드렸던 기억이 나네요."
"어머님은 뭐라고 안 하세요?"
"며칠 후, 연락이 왔는데, 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며 만나기를 원했어요. 토요일에 약속을 잡았어요. 만난 카페에서 또 고개를 숙였죠. 어머님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너무 죄송하더라고요. 앞으로 다른 아이들에게는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기를 신신당부했어요. 아이는 괜찮으니까, 너무 개의치 말라며 너그러이 용서해 주셨어요."
"다행이었네요."
"얘기가 길어졌는데, 아무튼, 그날 전 감정이 폭발했어요. 두 아이를 일으키는 과정에서 순간 힘이 세졌어요. 한 아이는 덩치가 좋았고, 다친 아이는 왜소했어요. 왼 손이 상대적으로 힘조절이 안되었고, 잡은 아이가 해당 아이였어요. 전 그 순간 몸도 마음도 조절할 능력이 없었던 거죠."
"에이, 뭐 그렇게까지 생각하셔요. 그럴 때, 책임회피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그런가요? (잠시 생각하다가) 최 선생님, 음... 물론 더 못하는 선생도 있겠죠. 그런데 그게 중요한가요? 제가 아이 팔을 다치게 했는데 그 무엇으로 합리화가 될까요?"
내 급정색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봐요. 전 지금 선생님이 절 위로한다고 말했을지도 모르는데, '저렇게 말하는 건 아니지.'라며 살짝 열이 오르잖아요. 지금 이 감정을 안 멈추면 아침부터 사무실 분위기 더 안 좋아지겠죠?"
난 잠시 멈추고 정적이 흐르도록 두었다.
"수업을 하다 보면,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른 감정을 '훈육'이라는 말로 포장할 때가 있습니다. 그날, 제가 뻗은 팔이 그랬습니다. 다시 만난 아이는... 흠...(잠시, 짧은 한숨을 쉬며) 전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조용해졌더군요.
그러나 '아하! 수업시간에는 조용히 해야 되는 거구나!'의 느낌표가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깨달은 건 저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의 느낌표였습니다. 팔이 빠질 정도의 힘을 주는 순간, 제 팔에 담겨있던 메시지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 졌겠죠.
전 그날 '진실은 그 어떤 이유로도 거짓 포장해서는 안 되는 거구나!'라는 느낌표 하나를 배웠습니다. '훈육'이라고 아무리 포장해도, 그 안에 담겨있는 진실은 '난 감정적으로 화났고, 아이들 위한 생각이 없었다'입니다.
감정에 휩싸여 화를 내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지나고 나서 저처럼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아이를 위해 꾸짖는 순간에도 마음 아파할 줄 아는 선생님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일하면서 수업 때 힘든 아이는 한둘 꼭 있었어요. 제가 본 어떤 선생님들도 예외는 없었던 것 같고요. 베테랑 선생님이라고 해서 모든 아이와 맞는 건 아니에요. 겨울과 수박처럼 뭔가 안 맞는 아이일 때가 있어요. 오히려 그 수업을 신입 선생님이 맡았을 때, 겨울과 붕어빵처럼 찰떡궁합인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끝까지 진심을 다해 노력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창의력을 키우는 사람들이에요. 안 맞는 아이도 최대한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길 바랄게요. 잠시 멈추고 3초만 생각하면, 전혀 다른 방법이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다 보면 한 겨울에 수박도, 붕어빵도 구하는 날이 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너무 힘든 아이가 있으면 언제든 말해주시고요."
"아이의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것을 전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래요. 실수할 수 있어요. 그런데 결과는 못 바꿔요. 후회하고 반성 많이 하도록 해요. 그래야 앞으로 더 잘못될 결과를 막을 수 있어요. (레고를 만들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아이도 괜찮은 거 같고, 이 정도인 걸 감사해하고요. 그럼 돼요."
"질문 있나요? 없으면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시작 때 친 박수 세 번은 저 힘내라고 친 거였는데, 끝날 때는 모두를 위해 칠게요. 오늘도 자신에게 힘내라고 박수 세 번 치고 마칠게요. 틀리는 사람이 커피 타기요. (미소 지으며) 준비됐나요?~♬ 박수 세 번 시작."
난 박수 세 번으로 시작했던 교육의 끝에, 모두를 위해 한 번을 더 했다.
난 커피를 타서 최 선생님부터 돌렸다.
참붕어 DAY +9년
하선, 지안
수박 붕어빵을 만들었던 그날이 마치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따뜻한 물로 피로를 씻고 방에 들어선다.
곤히 잠든 아내를 바라본다.
그녀의 뱃속에서 잠자고 있는 하선(태명: 하늘이 준 선물)이가 느껴진다.
잘도 자는 두 모녀가 참 붕어빵 같다.
몇 달 후, 세상에 태어날 이 아이
나를 '아빠'라고 부르게 될 지안(본명: 푸른 지구의 눈)
이 아이야말로, 푸른 눈빛을 가진 하늘의 선물이다.
이제는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지며 아내의 배에 손을 얹는다.
셋이 된 가족의 미래로
나의 바람이 불던 그 순간에
바로 삶이 내게 준 기회가 있었다.
오늘 다시 떠오른 그날의 기억을 이어받아, '수박'을 거꾸로 써본다.
하선이가 원한 건 붕어빵이 아니라, 내가 내 삶에 보내는 '박수'였을지 모른다.
그렇게 세상에 우뚝 서있는 아빠의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두 모녀는 나를 믿고 평소보다 잠을 더 깊이 잤는지 모른다.
몇 달 후, 지안이는 눈을 떠 세상의 빛을 보면서
그런 아빠를 붕어빵처럼 닮아가고 싶었을지 모른다.
난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지안이에 대해 모르는 것투성이다.
할 수 있는 것이 뭔지도 모르겠다.
그저 하늘에 '박수'를 띄워 보내는 것밖에...
그동안 자신과 타인에 대한 박수의 의미를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생각해 보니
나와 주변에 진심으로 손뼉 칠 때가 참 벅찼던 것 같다.
'참' 세상 살 맛 났던 추억들.
일기장에 새겨진 어제의 기억들.
그 위로 오늘이 덮어지지만,
사이사이마다 끼어 넣은 박수 한 장은
언제나 오늘 위로 '붕' 떠오른다.
'어'제의 진한 칭찬 소리를 내일로 잇는다.
이 삶이 힘들고 지쳐 참 고될 때가 있다.
나에게 박수 한 번 해줄 생각조차 잊히다가
어느 날, 초라해진 나를 본다.
이런 감정이 하루 건너 돌고 돌아 제자리이다.
그날이 그날인 듯 붕어빵처럼 닮아있다.
그러다가 삶의 박자를 못 타는 날이 많아졌다.
'인정' '진심' ‘박수’
한 박자 차이를 느끼며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세 박자마저 쉬고~♬
그래 노래를 불러보자
난 삶에 진심을 다 했어야 한다~♩
박수 한 번에 마음을 담았어야 한다~♪
정성을 다한 인정을 나에게 보냈어야 한다~♬
역시 난 박치다. 아무리 포장해도 숨길 수가 없다.
이미 아이들이 수년간 나에게 이 삼박자를 알려주고 있었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사람은 말을 안 해도 내가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하는지 아닌지 알고 있는 듯하다.
특히, 아이들은 이걸 본능적으로 안다.
어쩌면, 아이가 힘든 이유는 내가 자신을 수업하기 힘들어하고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아이의 마음은 어머님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결국, 이 수업은 유지되기 힘들다.
특히, 내면은 이걸 본능적으로 안다.
어쩌면, 내가 힘든 이유는 내가 자신을 못마땅해하고 싫어하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은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결국, 이 세상의 박수소리는 우울 속에 흔적조차 사라진다.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는 누구보다 내가 젤 잘 알고 있다. 그게 무엇인지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이제야 내가 심각한 박치라는 걸 인정한다.
늘 한 박자 늦게 알았을 때는, 많은 것을 잃은 후였다. 이 한 끗 차이를 이제는 놓치지 말자.
네(you) 박자에 몸을 실어
'인정' ‘진심’, ‘박수’까지는 그래도 운 좋으면 맞춰질 때도 있었다. 그렇다 해도 늘 한 박자는 부족했다.
그래서 네 박자에 맞춘 춤을 추지 못했던 걸까?
그래서 네(상대) 박자에 들썩거리지 않았던 걸까?
지금이라고 다를까? 난 또 어설픈 네박자에 춤을 추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 내(I) 박자에 춤을 춰보자.
1. 또! 3. ㄹ ㅣ 소 헛!
2. 어 4. 합 화!
딜! ㄹ ㅣ
여전히 규칙도 없고, 리듬도 이상하고, 말이 안 되는 춤을 추고 있다. 인생이 그냥 제멋대로 흐느적댔다. 조금 나아진 거 같기는 하지만, 역시 난 몸치다.
이럴 때마다 소중한 사람들은 내게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이제 와서야, 그 말들이 삶의 박자를 맞추는 ‘정박’이 맞았다는 걸 느낀다.
엇박도 자신만의 멋진 춤사위를 가질 수 있는데,
난 삶의 틀박이 많았다.
삶의 틀린 방향에서, 내 틀에 박혀, 틀에 박힌 행동을 하며
내 박자에만 놀아나는 게였다.
흠... 아니다. 이건 내박이 아니다. 이렇게가 맞다.
내 박자에만 놀아, 나는 개였다.
도중 왈왈. 그래 이게 맞다. 난 이미 44화에서 개로 흑화 했었다.
하하하. 늘 이딴 식이다.
난,
상대의 마음을
새겨듣고,
맞출 줄 알고,
헤아리며,
기다릴 수 있는
'네(you) 박자'를 진심으로 느꼈어야 한다.
삶의 몸치를 탈출하기 위해, 내게 필요한 단 한 가지는 이거였다.
어떤 날, 어떤 모습으로 멈출 것인가?
어긋나면 잠시 멈추었어야 한다. 모든 것은 이게 빠진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난 멈출 때 팔을 뻗었고, 멈춰야 할 때 감정을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멈추지 못하고,
정신이 감정에 사로잡힐 때,
멈추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 하나가 더해지면,
3(삶)+1(잘못된 선택)=4(死)가 될 수도 있었다.
아이를 들어 올릴 때,
아이는 팔을 평생 못 쓸 수도 있었다.
도박에 미쳤을 때,
주변을 공포와 두려움에 몰아넣어 죽일 수 있었다.
그리고
삶을 포기할 때,
나는 죽을 수도 있었다.
난 이 모든 것을 멈추지 못했다.
삶은, 그렇게 박자를 놓치며 흔들렸다.
죽음의 마지막 박자가
삶에 무엇을 넣었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결정된다면
난 내 삶에
무엇을 넣을 것인가?
난 내 죽음에
어떤 박자에 맞춰 마지막 춤을 추며 박수를 칠 것인가?
난 어떤 날, 어떤 모습으로 멈출 것인가?
<死부에 계속>
소중한 당신 삶의 박자에 벅찬 박수가
진심 어리게 실리길 바랍니다
박수 세 번 시작~♬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