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Life+1

#05. 살아있는 한, 죽지 않는다

by 이별난

4-3부: 하나


Life +1


끝날 수도 있는 삶에,


살아있는...


하루가 더해졌다


이 하루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오늘,


다시 시작된 숨 하나가 감사할 뿐이다


이 숨에 그의 숨을 더해,

다시 하나가 되었다

이 사실이

벅차게 감사하다


살아내는...


"자훈아, 다녀올게"


"어, (미소 지으며) 나 신경 쓰지 말고 천천히 다녀와"


자훈이는 차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준비해 온 것을 챙겨 내렸다.


어젯밤 내린 눈이 새하얗게 깔려있다. 세상은 삶에 새하얀 도화지를 펼쳐 놓고, 이 눈 위에 나의 발자국을 그려보라고 기다린다. 내가 갈 저곳까지 한 걸음, 한 걸음 뻗어 다리를 놓아 잇는다.


'뽀드득, 뽀드득, '


내딛는 한 걸음마다,

눈 밟는 소리에

아픈 기억이 날 누른다


8년 전


"언니, 언니!! 밖에 사고 엄청 크게 났어. 트럭에 사람이 치었어."


젊은 여성의 놀란 목소리가 열린 문 틈 사이로 들어온다. 순간 술기운이 다 날아갔다. 방금 나간 자훈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일어나지 못하던데. 죽은 거 아닌지 모르겠네."


"형, 내가 나갔다 와볼게."


같이 있던 후배도 나랑 같은-자훈이일지 모른다는-생각을 하고 있다.


자훈이는 방금 나랑 심하게 다툰 후 나갔다. 마지막에 서로 말없이 몇 초 동안 바라보았었다. 그의 눈빛이 마음에 깊이 박힌다. 그건 나에 대한 실망, 절망, 포기였다. 기억도 안나는 4살 때부터 만난 우리는 서로 말 안 해도 이별임을 알고 있었다. 설사 사고가 자훈이라 해도 난 이제 그의 곁에 안 간다.


살아 잇고, 살아 잇는...


그날 이후 6년이 지난 후였다. 재작년에 자훈이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를 봤을 때, 난 가슴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가슴에 꾹꾹 눌러 담고 있던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제 기능을 못하는 그의 왼쪽 다리를 보고 죄책감이 휘몰아쳤다.


'잉~잉~'


그날, 자훈이가 뒤돌아서 방을 나갈 때,

그의 뒷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그의 온전했던 왼다리였다


'휘이잉~ 휘이잉~'


차에서 기다리는 자훈이 쪽으로 바람이 불고 있다.


'뽀드득. 뽀드득.'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서 자훈이 쪽을 바라보았다.


이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자훈이는 한동안 다시 걷는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한 걸음을 뻗기 위해서, 그가 얼마나 노력했을지 나는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처음엔 나에 대한 분노와 상실감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국 본인이 먼저 나에게 자신의 왼다리를 뻗어주었다.


그가 용기 내어 다시 뻗은 한 걸음이,

내가 인생의 한 걸음을 다시 내딛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는 다리를 뻗어,

내가 미래로 갈 수 있는 다리를 놓아주었다


내 삶의 희망은,

그 다리를 건너며 시작되었다


그와 다시 함께 할 수 있는 오늘을 맞이한 것이,

꿈만 같다


그에게 진심 어린 사랑과 감사를 이 바람에 실어 보낸다


'휘이잉~~ 휘이잉~~'


저 멀리 차를 바라보는데, 자훈이가 손을 흔들고 있다. 멀리서도 그의 미소가 느껴진다. 나도 손을 흔들어 그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돌아서 가던 길을 갔다.


'뽀드득, 뽀드득,'


늘 만감이 교차하는 이곳. 오늘은 자훈이와 함께라서 그 감정이 더 깊어지는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도착했다.


살아지는...


"어머니. 저 왔어요."


어머니가 참 좋아하시던 팥 붕어빵을 꺼냈다. 눈 덮인 산소 아래 그녀의 미소꽃이 피어오르길 바라본다.


하얀 눈밭에 올려져 있는 이 붕어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 눈에 보일듯했던

자훈이의 미소와

어머니의 미소가

눈 위에 피어나

붕어의 웃는 표정으로 살아난다


참붕어 DAY라 정했던 그날이 생각난다. 그때, 그분의 말이 이제야 뒤늦게 가슴에 밀려 박혀온다.


2014년 겨울


"아내처럼 슈크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팥은 잘 안 팔리겠네요?"


"에이, 모르는 소리. 그래도 붕어빵에는 팥이 딱이죠. 아직 많이 찾아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늘 오래 사랑받는 거 아닐까요? 손님이 아내분과 가정에 사랑을 넣는 것처럼요. 하하하"


그의 말이 맞았다.


기본을 지키지 않은 수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 인생에도 붕어빵과 팥처럼

가장 기본적인 형태인 것이 있었다


^3~바람~사람~사랑~♡


내 삶에...


소중한 사람들,

그들의 사랑이,

그들의 바람이,

내게 불고 있었다


그 해 겨울,

붕어빵 9마리에 넣었던

수박, 슈크림, 팥


이제는 나 살아가면서

반성, 잘못, 후회 속에 잠시 멈춰

시간, 순간, 기회 의 숨을 내쉬며

바람, 사람, 사랑 을 놓치지 말자


3+1=4(死), 4-1=3(삶), 4-2=2(두 개의 숨), 4-3=1(한 걸음)


죽음에 무엇을 넣고 빼느냐?

저마다 이 문제의 답은 상황에 따라 다 다를 것이다.


삶에 잘못된 선택을 더해 죽음의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런 순간이 왔을 때,

삶을 포기하지 않으면 살 수도 있다.

때론,

죽기 위해 삶의 방향으로 가야 살지도 모른다.


앞으로 많은 것들이 또 어떻게 변할지, 나는 모른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살아야 할 끝나지 않는 문제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변치 않는 것이 있었다.


내 삶에


어머니의 숨,


아버지의 숨,


두 개의 숨


내 폐처럼 존재했다.


한 걸음 옆으로 이동해

붕어빵 옆에,

아버지가 그토록 좋아하셨던 소주 한 병을 꺼내 들었다.


살다 보면...


한때는... 그 모습이 너무 싫었었는데,

지금은... 그가 수없이 따랐을 소주 방울들이

땅이 꺼질 듯 떨어지는 그의 한숨 같다


그의 숨소리가 그립지만,

지금 들을 수가 없다


그 숨 사이에 들어가려 노력해 본 적도 없다


그렇게 아버지의 숨 사이에

나의 사랑은 없었다


그의 숨결을 느끼지도 못했고

그의 사랑을 외면하기 바빴다


아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여전히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돌아갈 수도 없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알아가고 있다.


내가 이런 것들을 볼 수 있는 능력과 상관없이,

부모님은 내 삶의 첫걸음부터 숨을 듬뿍 넣고 있었다.


"여보, 여보, 이거 봐, 도중이 걸으려 해, "


"하, 하, 하, "


"조금만 더, 도중아,,, 할 수 있어,,,"


살아있는 한...


내가 처음으로 걸을 때,

미소 지으며 흘리셨을 어머니의 벅찬 눈물,

말없는 웃음 사이 스며든 아버지의 벅찬 숨,


그 응원에 처음 내디딘 첫걸음

매 순간 나아갈 내 삶의 한 걸음


그때나, 지금이나,

이제 죽는 날까지

그들의 숨은 바람 되어

나를 밀어 걷게 해 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늘 불고 있던 그들의 숨결을 잡아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그 숨향기가 다시 살아나 내 삶에 퍼진다


붕어 한 마리, 소주 한 병


눈앞에 붕어 한 마리와 소주 한 병이

눈 위에 나와 함께 놓여 있다


살다 보면

한숨 섞인 소주 한 방울을 따를 때가 있다

그 방울들이 모여 삶을 무겁게 할 때가 있다


차갑게 식은 붕어처럼

시리도록 차가운 땅 위에서 얼어 죽을 것 같을 때가 있다


살다 보면

벅찬 눈물 가득한 벅찬 숨이 쉬어질 때도 있다


한겨울에도 많은 경험들이 주는 의미가 따뜻하게 살아날 때도 있다.


저 붕어를 죽이는 것도, 살려내는 것도 내 몫이다.

다시 그런 동굴에 갇히는 상황이 오면, 난 빠져나올 자신이 없다. 무섭고 두렵다.

다만,

살아 있는 한, 죽지 않고 살아진다는 걸 믿을 뿐이다. 지금 생각이 한 시도 사라지지 않게 매일 더 할 뿐이다. 그래야 지금 상태를 유지할 것만 같다.


종이 한 장


부모님께 보여드리려고 미리 적어둔 종이 한 장을 눈 위에 펼쳤다.


"이건 이제 세상에 무엇이라도 내가 써 내려가겠다는 다짐이야"

3+1=4-1+1

4-4=O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기 위해 한 발 물러섰다.

+1


"두 분이 주신 사랑의 깊이를 난 감히 100% 알 수가 없어. 그래도 예전이 0%였다면 지금은 1% 정도 된 것 같아. 1%만 느껴도 살아있는 하루가 이렇게 감사한지 몰랐어. +1이 모든 것의 한 걸음이었다는 걸 새삼 다시 깨달아."


"살아내는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뎌,

내일로 살아 잇고, 살아 잇는 다리를 잘 놓을게."


"앞으로 많은 의미들은

내가 살아있는 한, 죽지 않고 살아날 거야."


"내 삶의 의미들도 그럴 거야. 나 죽을힘을 다해 살아갈게. 난 꼭 그래야 해. 어머니, 아버지를 다시 찾아갈 자격은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아. 내가 이 세상이라는 산의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고, 정상이 과연 있나 싶긴 해. 하지만, 나 갈 수 있는 최대높이에서 눈 감을게. 그때 꼭 다시 만났으면 좋겠어."


난 감사와 사죄의 큰 절을 올리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나를 품었던

어머니, 아버지가

여전히,

이 땅 아래서

나를 받쳐주고 있다


"너무 미안했고 고마웠어. 그리고 사랑해."


<마지막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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