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석 게임 28_위치
작은 밥상, 큰 밥상
오늘 저녁은 엄마와 단 둘이 밥 먹은 날.
씹는 소리 낸다고 형에게 맞을 걱정도 없다. 헤헤헤.
술냄새도 아빠냄새도 안 나서 밥맛이 좋다. 하하하.
그리고 무엇보다 막 떠들 수 있어서 좋다. 히히히.
오늘 저녁 밥상은 자유롭게 뛰노는 놀이터.
엄마와 밥 먹는 게 신났다.
형과 아빠랑 다시는 밥을 함께 먹기 싫다.
함께 앉는 것만으로 벌써 속이 뒤틀린다.
배 아프면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재래식 화장실 가는 게 무섭다.
난 저 네모난 문을 못 넘는다.
형과 아빠랑 밥 먹는 건 숨 막힌다.
중학생이 되었다.
재개발이 되고 들어선 아파트로 이사 왔다.
이제 더 이상 밥상이 움직여 다닐 필요가 없다.
4인용 식탁과 의자 4개가 같은 자리에 있다.
그러나 의자는 3개만 있어도 됐다.
그 식탁에 형과 아버지와 함께 앉은 기억이 거의 없다.
내게 밥상의 크기는 그때그때 달랐다.
그날은 자유로운 놀이터였다.
대부분의 날은 나를 숨 막히게 조여 오는 네모였다.
살면서 절대 피할 수 없는 것들.
난 밥상을 피했고, 화장실을 두려워했다.
그런데 밥상은 늘 같은 크기로,
화장실은 항상 같은 위치에 있었다.
다르게 느낀 건
그 앞에 서있던 나였다.
이 마을이 재개발되어 없어졌어도,
그 위치는 지금도 같은 곳에 있다.
내가 찍어놓은 발자국의 위치도 이와 같다.
허송세월 보낸 시간과 일어난 사실도 마찬가지다.
많은 것들이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
나의 경험과 해석들이 그 위에 선을 긋고 덧칠하며 그려진다.
이제라도 이 꼬맹이가 좀 더 뛰어놀 수 있도록...
내 남은 숨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조금 넓은 네모를 그려본다.
오늘은 이 마을에 먹구름이 흐르고, 비가 내리고 있다.
잔뜩 낀 먹구름과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