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3 레슨인케미스트리
<레슨인케미스트리를 원서로 읽으면서 느낀 점들을 하나씩 풀어가고 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실험을 하기 위해 비커가 필요해서 서류를 여러 번 작성하고 요청도 여러 번 하고 석 달을 넘게 기다렸지만 결국 받지 못해 캘빈 에반스의 연구실에서 남는 비커를 들고 왔다. 그 이유로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원래 하던 연구에서 밀려나 더 낮은 단계의 연구에 배정받는다.
“But why was it so hard to get supplies?” Calvin asked. “Hastings has plenty of money.”
Elizabeth looked at him as if he’d just asked how, with all those rice paddies, there could possibly be starving children in China. “Sex discrimination,” she answered. “But also, politics, favoritism, inequality, and general unfairness.”
“But mostly sex discrimination,” she said.
“What sex discrmination?” he asked innocently. “Why wouldn’t we want women in science? That makes no sense. We need all the scientists we can get.”
“하지만 용품을 얻기가 왜 그렇게 어려웠다는 거죠?” 캘빈이 물었다. “헤이스팅스는 예산이 넉넉하거든요.”
엘리자베스는 캘빈이 마치 벼로 가득한 논을 두고 중국에 어떻게 굶주린 아이들이 있는지 물어본다는 듯 쳐다보았다.
“성차별이요.” “하지만 또 정치, 편파성, 불평등, 그리고 일반적인 불공평에 기인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대체로는 성차별입니다.”
“무슨 성차별 말씀인가요?” 그가 순수하게 물었다.
“왜 과학계에서 여성이 더 필요하지 않다는 거죠? 말도 안 됩니다. 우리는 가능한 많은 과학자들을 필요로 하니까요.”
“Where you were at Cambridge,” she said carefully, placing her hands back on the table, “How many women scientists did you know?”
“None. But my college was all-male.”
“Oh, I see.” she said. “But surely, women had the same opportunities elsewhere, correct? So how many women scientists do you know? Do not say Madame Curie.”
He looked back at her, sensing trouble.
엘리자베스가 손을 탁자에 올리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이 캠브리지에 계셨을 때, 얼마나 많은 과학자들을 알고 지내셨나요?”
“아무도 없었어요. 하지만 제가 다닌 대학은 전부 남자만 있었거든요.”
“아 그러시군요.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어딘가 다른 곳에서 여성들이 동등한 기회를 얻고 있겠죠? 그렇다면 알고 계시는 여성 과학자들이 몇 명이나 되나요? 퀴리부인은 빼고요.”
캘빈은 곤란한 얼굴로 엘리자베스를 쳐다보았다.
생각해 본다. 당신은 얼마나 많은 여성 위인들을 알고 있는가? 위인들 앞에 '여성'이란 단어를 붙이는 것도 달갑진 않지만 일단 붙여본다. 내 어린 시절, 우리나라의 여성 위인들을 떠올려보려고 하지만 생각나는 사람은 단 둘 뿐이었다. 신사임당과 유관순 열사. 그리고 조금 더 자라서 청소년이 되었더니 허난설헌과 황진이도 이름 있는 여성으로 쳐 주지만 그렇다고 위인인가 하면 갸우뚱하게 된다. 이름난 문인이자 예술로 인정받았으니 위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수많은 남성 위인들 속에서 몇 되지 않고 그나마도 미미한 느낌이다. 그래서 5만 원 권 등장인물로 신사임당을 넣는다고 했을 때 사실 나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허난설헌과 신사임당의 명성 차이는 저명한 자녀-물론 아들이다-를 두었는지 여부에 기인한 것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허균의 누이,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불리는 것도 사실 좋지는 않았다.
우리 집은 나와 여동생 둘 뿐이다. 엄마는 늘 아들이 하나 있었으면 하셨고 그래서 사위들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셨다. 나와 동생을 두 번 다 제왕절개로 낳으셨는데 더 이상의 임신은 생명에 위험하다는 의사의 소견에 아빠는 지체 없이 불임수술도 함께 하셨다고 했다. 마취에서 깨어난 엄마는 '왜 당신 맘대로 그렇게 결정하느냐고, 나는 아이를 더 낳을 건데!'라고 통곡을 하셨다고 한다. 더 낳을 아이의 성별은 아들이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우리 집은 다행히 딸만 둘이어서 가정 내에서의 명시적인 성차별을 겪지는 않았다. 다만 친척들이 모이면 아주 분명했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손주들을 아주 귀애하셨고 우리 집에 오셨을 때 사촌 오빠들과 사촌 남동생들이 있을 때 그들에게만 딸기를 더 먹으라고 주시면서 나와 내 동생, 그리고 사촌 여동생에게는 그만 먹으라고 접시를 아예 가져가시는 장면이 사진처럼 박혀 있다.
안다. 할머니 역시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중심제도에서 그렇게 자라나셨고, 아들들이 집안의 기둥이자 존재 이유였던 시대상에서 자유롭기 어려우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소소한 차별들이 문득문득 생각나서 가슴이 쓰린 것은 어쩔 수 없다.
굳이 열거해서 무엇하랴. 내가 둘째도 딸을 낳았을 때 시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괜찮다. 셋째는 아들 낳으면 되지."
아니. 아이를 하나 더 낳는 것을 누가 결정하고 또 새로 태어날 아이는 아들이라고 누가 확신한다는 말인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셋째는 아들이었고 나는 어떤 책임감에서 조금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2년 후 아이를 또 낳아서 네 아이 엄마가 되었다. 아이가 넷이라고 하면 꼭 이렇게 물어보시는 분이 계신다.
"막내가 아들인가요?" "아들 낳으려고 넷 낳았군요?" (가끔은 "낳았구나?"로 반말도 많다.)
그러면 딱 잘라서 대답한다.
"아니요. 아들 하나 더 있는데요."
그러면 이렇게 대답하신다.
"아, 애국자시구나." (나는 애국하려고 아이를 넷이나 낳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애국자라는 이 말도 사실 좋지는 않다.)
아들을 낳아서 마음이 홀가분한 것은 있지만 아들을 낳았기에 며느리 된 도리를 다했다는 이 기분은 더더욱 유쾌한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이 시대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성이 좀 더 많은 교직사회에 속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차별은 덜 받지만 일반적인 직장에 근무하는 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더 마음이 좋지 않다. 내 친구는 여자라서 대학원 박사과정까지만 하고 그만두었다. 교수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여자는 어차피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경력단절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교수가 잘 뽑아주지 않고 그렇게 되기도 힘들다고 했다. (20년 전 이야기라서 지금은 어쩐지 모르겠다.) 취직해서도 비슷한 일들이 비일비재했고, 남편의 파견을 따라서 가족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직장을 접고 같이 해외로 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돌아와서 다시 직장을 찾느라 고생하는 것은 모두 내 친구들의 이야기였고, 친구들의 남편은 상대적으로 이런 고생을 겪지 않았다. (상대적이란 말이다. 누구나 힘든 과정은 동일하고 각자 어려운 과정을 지나기 때문에 여기서 고통은 여성들의 몫이고 남성들은 수월하게 간다는 그런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다.)
제목은 여자로 태어나 좋은 점인데 여기에 쓴 이야기는 다 부정적인 이야기만 써서 제목과 부합하지 않는다. 그래서 1부이다. 여자로 태어나 좋은 점을 이야기하기에 앞서서 안 좋은 점을 써야 좀 더 잘 연결이 될 테니까.
<그래서 2부에 연결해서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