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 태어나 좋은 점 2부

ch.3 레슨인케미스트리

by 여울

<레슨인케미스트리를 원서로 읽으면서 느낀 점들을 하나씩 풀어가고 있습니다.>


“You’re saying,” he said slowly, “that more women actually want to be in science.”

She widened her eyes. “Of course we do. In science, in medicine, in business, in music, in math. Pick an area.” And then she paused, because the truth was, she’d only known a handful of women who’d wanted to be in science or any other area for that matter. Most of the women she’d met in college claimed they were only there to get their MRS. It was disconcerting, as if they’d all drunk something that had rendered them temporarily insane.


캘빈이 천천히 말했다.

“선생님 말씀은, 정말로 여성들이 과학 분야에서 일하기를 원한다는 말이군요.”

엘리자베스는 눈을 크게 떴다.

“당연하죠! 과학이든, 의학이든, 경영이든, 음악계이든, 수학계든 말이죠. 어느 분야든 하나만 골라 보세요.” 그리고 잠시 말을 멈췄다. 왜냐면 사실인 즉 과학계이든 아니면 다른 분야던지 간에 실제로 해당 분야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여성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가 대학에서 만났던 대부분의 여성들은 ‘결혼’을 하기 위해 대학에 온 거라고 주장했다. 이는 엘리자베스를 당황하게 했는데 마치 다 같이 잠깐 정신을 나가게 하는 뭔가에 취한 듯 보였기 때문이다.


“But instead,” she continued, “women are at home, making babies and cleaning rugs. It’s legalized slavery. Even the women who wish to be homemakers find their work completely misunderstood. Men seem to think the average mother of five’s biggest decision of the day is what color to paint her nails.”


“하지만 대신에” 그녀는 계속 말했다. “여성들은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깔개를 빨죠. 그건 합법화된 노예제도라고요. 가정주부가 되고 싶었던 여성들이라도 일은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남자들이 생각할 때 하루의 가장 중대한 결정은 손톱에 칠할 매니큐어의 색깔을 정하는 것 아니겠어요? 아이 다섯의 엄마라도 말이죠."




슬프게도 이 대목에서 나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거의 30년 전 대학을 결정할 때 SKY 합격권에 있었는데, 생각보다 수능 점수가 안 나와서 조금 하향지원을 해야 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했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한 여대를 말씀하셨는데 나는 펄쩍 뛰었다. 그 여대에 대해서 내가 너무나 많이 들었던 말은 (루머겠지만) 그들의 졸업앨범이 너무나 중요해서 중매하시는 분들이 꼭 가지고 체크한다는 점과, 좋은 결혼을 위해서는 다른 것보다도 이 여대의 졸업장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실제로 이 학교에 다니는 언니와 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편견이 많이 깨졌는데 어린 마음에는 그런 이야기만 들렸기에 지금도 좀 미안한 감정이 있다. 하지만 교대 졸업생도 억울한 것은 정말 지긋지긋하게 들었던 '초등 여교사는 최고의 신붓감'이라는 말이었다. 뭐 많지는 않아도 안정적으로 월급이 나오고 퇴근은 상대적으로 일찍 하고 방학도 있는 데다가 초등학생까지의 교육학적 지식도 갖추었으니 상대적으로 육아와 가사에 수월한 직업임은 부인할 수 없다.


다는 아니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대학은 내가 앞으로 살아갈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나의 현재를 좀 더 맞게 채워가기 위해서 인문학적 소양과 학문적 기반을 다지는 곳이 아니라 적당히 교양을 쌓고 졸업한 후 결혼하기 위함이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여자가 똑똑하면 뭐 해. 결국은 애 낳고 살림할 텐데."라는 말과 "남자 잘 만나는 게 제일 중요해."라는 말도 '정말' '너무' '자주' 들어서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바로바로 써지는 것이 그 증거다. (부인하고 싶지만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남편을 만난 친구들의 삶이 훨씬 수월하게 가는 것을 보면 순수하게 부럽기도 했다. '왜 내 소득이 우리 집의 생계수단이 될까'라는 생각에 우울한 마음도 들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회에서 아빠는 나가서 일하고 엄마는 집에서 가사와 육아를 하는 도식화된 구조가 은연중에 자리 잡고 있다. 이제는 엄마도 나가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맞벌이부부라는 단어는 익숙하지만, 엄마가 일을 하고 아빠는 집에서 살림을 한다고 하면 무슨 문제가 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신랑이 일 년간 일이 없어서 집에서 쉬어야 했던 때가 있었다. 당시 심리적으로도 많이 위축이 되고 우울해 보여서 낮에 나가서 산이라도 다녀오고 헬스장이라도 다녀오라고 했더니 싫다고 대답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낮에 건장한 남자가 동네를 활보하거나 산을 타면 혹시라도 하는 마음이 있는지 자신을 향한 시선이 곱지 않다고 했다. 수상하다는 듯 훑어보는 것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라 몇 번 겪고 나니 낮에는 집에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고 대답했다.


나는 길에 다니는 사람들을 신경 쓰는 편이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을 항상 의식하는 신랑에게는 좀 힘든 일이었겠다는 생각이 그제사 들었다. (신랑은 외출할 때는 스프레이로 머리를 항상 고정시키고 그렇지 않을 경우는 모자를 쓰고, 옷도 신경 써서 입는다. 외출 준비가 나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 음식물 쓰레기도 잘 버리지 않는다. 엄청나게 싸운 결과 지금은 가끔 버리지만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은 남자답지 못하게 '보인다'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고 나서 생각을 해 보니, 대낮에 아파트 단지를 활보하는 사람들은 여자들이 대부분이다.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이에 대한 편견은 많이 줄었지만 그때는 코로나도 전이라 그럴 수 있겠다.


최소한 사람들에 대한 접근성은 여성이라서 편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길을 물어볼 때도 스스럼이 없는데 신랑은 굉장히 싫어했다. 처음에는 성향의 문제인가 싶었다. 외향적이냐 내향적이냐. 그런데 신랑의 말은 낯선 남자가 느닷없이 말을 걸면 경계의 눈길로 쳐다본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 익숙지 않다는 말도 덧붙이긴 했다.) 다른 이들에게 다가갈 때 누군가 나를 경계의 시선으로 방어벽을 세우고 대한다면 표현의 방법에서도 조심스러울 것이고 이는 결국 내 마음을 좀 더 자유롭게 드러내는데 제약으로 다가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회가 남성을 우대하고 남성 중심적으로 세워져 왔지만 그만큼의 제약도 많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죽을 때까지 세 번 운다는 것과 (아들이 울면 아버님은 사내자식이 울면 쓰냐고 버럭 말씀을 하시곤 했다)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흠으로 여기거나, 남자니까 좀 더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나가야 한다는 부분은 또 다른 제약일 것이고 편견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자유로웠다. 내 마음을 그냥 다 가감 없이 보여! 이런 것은 아니지만 나는 울고 싶을 때는 울었고 웃고 싶을 때는 웃었다. (물론 일부러 더 열심히 웃은 것도 있지만 이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엉엉 울어도 감정이 풍부하고 눈물이 많다고 하지 여자 답지 못하다고 (사실 이런 표현도 웃기지만) 하지는 않았다. 슬프거나 감동적인 이야기나 영상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 오르면 우리 반 아이들은 "선생님 또 울어요?"라고 하지 "선생님 왜 여자인데 울고 그래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여자라서 스트레스를 받는 면면도 있지만 내 감정을 마음껏 흘려보낼 수 있는 장치도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이 글을 쓰다가 문득 정말로 '여자로 태어나 좋은 점'은 뭐가 있지? 하고 생각하는데 또 막상 생각하지 마땅치 않았다. 검색도 해 보니 '화장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선택의 자유', '여자에게는 두 가지 성공의 길이 있다는 것(진짜 제일 싫었던 이유)', '복장의 자유 - 한 여름에 입는 치마와 반바지는 얼마나 시원한지 예찬', '장수', '여자라서 봐주는 경우가 많음' 등등이 나왔다. 심지어 '군대를 안 간다'라는 부분도 나왔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우리 딸들도 보내야 한다면 기꺼이 보낼 마음이 있다. 이스라엘처럼 남녀 평등하게 보내는 것도 대찬성이다. 우리는 애 낳는다는 말로 군대 가는 이들에게 대답하지 말자, 제발.) 맞기는 맞지만 내가 생각한 좋은 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참을 고민했다.


내가 생각했을 때 한 가지 정말 좋았던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남녀 모두에게 공평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 더더욱 그랬다. '여자니까 이 정도까지만 해도 괜찮아', '여자가 뭘 그렇게까지 하려고 해' '역시 여자는 어쩔 수 없어'라는 말은 나에게 '그래. 이만큼만 해도 잘 한 거지.'라는 마음이 들게 하진 않았다. '왜 이 정도로 만족하고 접어야 해? 더 해 보자'라는 도전의식을 갖게 했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기에, 그리고 여성에 대한 편견 때문에 억울하고 아쉬운 마음을 많이 느껴 봤기 때문에 또 다른 소수나 약자에 대한 고민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난민에 대해서도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서도 다문화 가족에 대해서도 그 외 다른 수많은 소수자 그룹에 대해서도 어렵고 피하고 싶은 힘든 부분이지만, 모두 함께 해결해야 하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나의 지식의 짧음인지 모르겠지만 '인류학자'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나에겐 단연코 제인 구달과 마거릿 미드이다. 물론 훌륭한 다른 인류학자분들도 많이 계실 것이다. (다른 분야에서는 남성분들이 더 많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제가 아주 틀리지는 않겠지만 혹시라도 제가 놓친 부분이 있다면 제발 댓글로 알려주세요.) 다만 둘 다 여성임을 생각하면서 굳이 왜 인류학이라는 분야에서 탁월한 시각을 가지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남성 여성이라는 성적 특성을 인류학이라는 분야에 특별히 부여한다기보다는 여성으로서 삶을 겪어 오면서 좀 더 시선을 이쪽으로 돌리게 되고 파고들게 된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이것도 틀린 것이라면 알려주세요.)


결국은 그렇다. 내가 약자로서, 비주류로서 겪었던 경험은 나를 성장하게 하고 성숙하게 하는 동력이 되는 것이다. 비록 저기 유리 천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저곳을 통과할 방법을 찾아내지 않겠는가. 다만 중요한 것은 '통과' 내지는 '도달'이 아니라 그 이후일 것이다. 길게 썼지만 쓰고 나서 보니 이 글의 제목이 굳이 '여자로 태어나 좋은 점'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붙이자면 '"내가" 여자로 태어나 좋다고 생각한 점' 정도가 맞는 제목이겠다.


(3부 4부까지도 예상했는데 글을 어디에서 잘라야 할지 애매해서 그냥 썼더니 길어졌다. 사실 담고 싶은 이야기는 더 많았으나 이 레슨인케미스트리를 읽으면서 계속 나올 것 같아서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미 브런치스토리 가독성을 따질 땐 차고 넘쳤다.....)


#글로성장연구소 #별별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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