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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Aug 14. 2023

그와 나의 끝

끝판왕의 사랑

어젯밤에 분명히 글을 쓰면서 내 첫사랑 이야기는 이것으로 당분간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우연히 들여다본 제시어가 왜 죄다 사랑인 건지 참. (사실은 다섯 개 중 2개니까 내가 우기는 거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내 음악과 피아노를 넓혀주고 난생처음 황홀했던 그 첫 연애의 끝은 사실 좀 messy 하고 dirty 하게 끝이 났다. 사귀는 와중에도 계속 고민이 되고 그와 나를 망설이게 만들었던 것은 두 가지가 있었으니 하나는 7살이라는 나이차이였고 하나는 종교차이였다. (나이차이가 나는 괜찮았는데 그에게는 아니었다.)


당시 완전히 법적으로 성인이 되지 않았던 나와 사귀면서 "어쩐지 원조교제하는 기분이야."라는 말을 다소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가끔씩 말하곤 했다. 그러거나말거나 사귀는 동안 행복했던 나는 다이어트에 비교적 성공을 했다. 연애하면 살이 빠진다는 말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적게 먹어도 배가 안 고팠던 것 같다. 그렇게 서서히 살이 빠져서 6kg 정도 감량을 했던가. 과 친구들이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정작 당사자는 말이 없길래, "친구들이 나 예뻐졌다고 하는데 오빠는 왜 아무 말도 안 해?"라고 물어보자 내 손을 만지고 있다가 "어? 어? 예쁘지." 하며 당황해하던 세종문화회관 뒤의 그 카페에서의 그 모습이 아직도 생각이 나는 것을 보면 정말 그를 제대로 좋아하긴 했나 보다.


그와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우리는 그냥 함께 앉아만 있어도 마음이 통했다. 어쩌면 한참 어린 후배라서 그냥 다 귀엽게 봐주고 다 해주려고 했던 그의 배려와 마음에서 내가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늘 마음 한 켠에는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었으니, 그와의 연애를 우리 가족 중 그 누구도 반기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실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정말 엄격하고 확실한 크리스천 집안이었다. 다른 가정은 그래도 결혼할 사람이 교회에 다니겠다고 하면 봐주는 경우도 있다지만 우리 집의 경우는 확실하게 신앙을 고백하고 내가 다니는 교회에 가입을 해야 했다. (교회 이야기는 또 따로 다루어야 할 만큼 큰 다른 이야기이다.) 행복하지만 불안한 마음에 동생만 알고 있었고 그 누구도 몰랐는데 1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 교회 언니가 우리를 보았다. 나는 당시 수요일에 있는 기도회에도 필참해야 했는데 나를 데려다주려고 근처 역에서 서 있는 나를 보고 교회 언니는 내게 말했다. "목사님을 한 번 찾아가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어느 사이 우리 여울이가 연애할 만큼 이렇게 컸구나." 그 언니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고 정말 좋은 의도로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직감했다. 아 이제 끝이구나. 이 문제를 두고 그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다른 것은 몰라도 종교는 극복할 수 없다고 했다. 나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던 그의 말은 진심이었는데 이 정도로까지 독실하고 열심인 집안인 줄은 몰랐다고 했다. 같이 교회에 가서 앉아 있어 줄 수는 있지만 그 정도면 괜찮을 줄 알았다고. 너희 집안에서도 나를 받아 주지 않을 것이 눈에 너무 확실하게 보인다고 했다. "그럼 내가 오빠 세계로 갈게." 그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순 없다고. 그렇게 하기엔 너무나 많은 희생이 따른다고 했다. 잠깐은 괜찮을 수 있겠지만 장기간으로 볼 때는 둘 다에게 괴로운 길이 될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 말에 동의했는데..... 문제는 그렇게 끝이 아니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이별을 고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만난 날. 그가 나에게 꺼낸 말은 다른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는 말이었다. 잠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잖아도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데 뭐? 너 없는 시간을 혼자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어서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다른 선생님에게 결혼을 전제로 만날 생각이 있냐고 물어봤다고 했다. 와. 지금 뭐라는 거지?


그러니까. 그는 이별을 예감하고, 그렇지만 그 이별을 혼자서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체할 다른 사람을 미리 준비해 놓고 나온 것이었다. 정말 나쁜 것은 그것으로도 끝이 아니었다. 그녀와 만나면서도 나를 잊지 못했고, 그녀와 여러 문제로 만남과 헤어짐을 번복하면서 그 갈등이 있을 때마다 나에게 찾아왔다. (확실하게 끊어내지 못했던 나도 잘못이라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그를 좋아했던 내게는 어려웠던 문제였다.) 나를 찾기란 매우 쉬웠다. 음악관에 있었으니까. 피아노를 치면서 아픔을 잊으려고 노력했으니까. 그가 올만한 시간에 가끔씩 몰래 피해있었던 것을 그는 알까. 그러다 가끔 피아노에 몰입해서 놓치면 선배가 연습하는 음악이 들려와 너무 아팠다. 가끔은 피하기도 하고 가끔은 그렇게라도 그가 그리워 연습하다 말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가끔 시선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나를 피하려는 마음과 멀리서라도 보고 싶었던 마음. 동일했겠지. 그리고 결국 그는 그녀와 헤어지겠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그러지 않았다. 다시 만나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던 그날 역시 피아노 앞에서, 그는 나에게 그녀로 인해 너무나 힘들다면서 내 손을 잡아 아래로 끌었다. 그 순간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가 나에게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을지 이해는 했지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당시 그가 누군가와 결혼해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연애와는 이별하고 안정을 찾고 싶었다는 마음이라는 것은 알겠다. 그렇지만 그 대상은 아직 한참 어린 대학교 4학년이 갓 된 졸업반에 종교 차이를 극복해야 하는 어린 20대였다. 그러니 이 아이와는 힘들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알고 헤어져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감정적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았다는 것도 알겠다. 그래도 그 사이에 그녀를 혹은 나를 끼워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리고 그녀도 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와 교제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그만큼 괜찮았다.) 동아리 연주회 때 와서 딱 보더니 "저 애지?"라고 했다고. 그저 동아리 후배와 사귀었다고 말했을 뿐인데 바로 알아차렸다고 했다. 내 졸업 연주회 때에도 둘이 같이 와서 축하해 주었다. 이 정도면 정말 끝판왕 아닌가? (수많은 일들은 소설을 한 권 쓸 수도 있겠다 ㅡ 써 볼까?) 그리고 나와 헤어진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그 해 12월 그는 결혼식을 올렸다. 그 부분도 마음이 아팠다. 나와 이 지지부진한 매끄럽지 않은 결말을 마친 지 반년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몇 년이 아니라 십몇 년을 아팠다. 잊고 있다가 종로를 지나갈 때, 그와 같이 다녔던 오래된 작은 음반 가게들의 추억들이 떠올라서 아팠고 강남을 지나다니면 그와 같이 갔던 카페들이 보여서 아팠고, 예술의 전당과 같은 공연장은 말해서 무엇하랴. 리사이틀홀부터 음악분수까지, 세종문화회관의 그 계단과 그 뒷골목들까지 안 다닐 수 없는 그곳들을 지나다니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아픔의 빛이 많이 바랜 것은 정말로 세월이 두 번 이상은 바뀌고 나서였다.


그래서 그를 생각하면 아프고 아프다.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아프고 이런 결말이어서 아프다. 그가 나에게 이별 선물로 준 것은 아쉬케나지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음반이다. 앞부분의 피아노 선율이 위로해 주는 것 같다면서 나에게도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이 음반을 주고 갔다. 그래서 나는 4번을 잘 듣지 않는다. 그 앞부분의 부드럽게 두드리는 선율이 오히려 아픔을 끌어오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 첫사랑과의 연애를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아팠고 여전히 그 아픔의 상처가 있어도 그래도 극복할 수 있으니 되었다. 겪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삶의 '애'를 이렇게 겪은 것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우리 딸들이 연애를 할 때 나처럼 엄마에게 말도 못 하는 일이 없기를, 그리고 아픔을 겪을 때 혼자 감당하게 두지 않고 함께 울어주고 토닥여줄 수 있는 품이 되어줄 수 있다. 삶의 시선이 넓어졌고 이해의 폭도 넓어졌다. 사랑의 아픔은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 길을 결국 걸어내어 스스로 세울 수 있으면 그것이 극복이다. 이 과정을 조금 더 여러 번 거쳐 더 많은 사람을 만나보며 시선과 시야를 키우면 그만큼 더 성숙한 내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끝판왕의 사랑도 긴 안목의 관점에서는 괜찮다. 당면한 그 순간이 못 견디게 힘들 뿐. 결국은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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