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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셋의 바디프로필

그리고 그 후 이야기

by 여울

지난 4월의 마지막 날 나는 난생처음으로 바디프로필을 찍었다. 작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심하게 넘어져서 두 달간 운동을 쉬면서 늘어난 몸무게도 몸무게지만 더 속상했던 것은 운동하던 습관과 겨우 자리 잡은 근육들이 풀어지기 시작했던 부분이었다. 사실 바디프로필은 내 큰 목표는 아니었다. 굳이 남에게 나의 몸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었고, 앞으로도 찍을 예정이 있는가 하면 대답은 '글세요.'이다.


찍게 된 계기도 자의보다는 타의의 비중이 조금 더 높았다. 온라인 필라테스 강사님의 큰 프로젝트 중 하나였고, 여러 가지 상황이 더해져서 미리 약속이 된 상태였기에 이왕 이렇게 된 것 최선을 다해 약속을 지키자는 마음이었다. 62kg까지 불어난 몸무게도 몸무게지만 없어진 근육이 더 힘들었다. 거기에 학년초인 3월 4월의 특수성과 정말로 기가 막힌 확률로 한 사건이 우리 반에 일어나면서 퇴근 후에도 내 삶을 옥죄었다.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상담도 마무리하고 집안일도 어느 정도 한 밤 12시. 바디프로필에 대한 약속으로 최소한 1시간 반 이상은 운동을 해야 했기에 잠자리에 드는 시각은 빨라야 2시. 지금 생각해 보면 하루에 네댓 시간씩 자면서 어떻게 그 두 달을 버텼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은 의지가 있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바디프로필을 찍는 당일은 오히려 마음이 담담해지더라. 그날 아침 다시 예전 몸무게의 근접점인 56.8kg을 찍은 것을 확인했다. 며칠간 수분과 탄수화물을 극도로 제한했기 때문에 원래의 몸무게는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안심이 되었다. 비 오는 아침, 일찍 일어나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스튜디오로 향했다.


서울에 바디프로필만 전문으로 하는 스튜디오가 꽤 많다는 것도 그즈음에야 알았다. 그리고 예약도 미리미리 하지 않으면 원하는 시간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많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과하지 않게 건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곳이라고 들어서 좋았다.

다양한 포즈로 찍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완전하게 만족스러운 상태는 아니었지만 내가 스스로를 판단하는 것과 카메라의 시선으로 보는 것은 또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 다만 찍고 나니 '와. 모델분들, 연예인 분들 참 대단하시다. 이렇게 식이를 조절해 가면서 이렇게 힘들게 헤어와 메이크업을 해 가면서 촬영하는 것 보통일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톡방에 이야기하니 한 분이 "그렇지만 그분들은 페이를 받잖아요." 아. 큰 깨달음이 왔다. 그래. 나라도 이렇게 해서 수입이 들어오면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겠어!

촬영은 순식간에 끝이 나고 몇 가지를 선택해서 즉석 인화분을 받았다. 원본 파일은 나중에 받아서 거기서 원하는 컷을 선택하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모든 일정이 끝나고 친구를 만나 파스트라미 버거를 먹었다. 밀크 쉐이크도 먹고 윙도 먹고 쿠키.... 는 반 정도 먹었다. 극도로 제한을 하다가 그날 갑자기 기름진 음식을 먹은 탓인지 탈이 났다. 회복식처럼 서서히 돌아왔어야 하는데 평소 원하던 것을 그대로 했더니 문제가 생긴 셈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에 따로 적었다. 바프 이후 신나게 음식을 먹은 결과 (brunch.co.kr)


그리고 한동안 그럭저럭 유지를 했는데 급찐급빠라는 말처럼 급빠급찐도 있더라. 물론 급하게 찐 것은 아니고 바디프로필을 준비하는 동안 미뤄두었던 각종 약속들이 다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사적으로는 친구와 지인들의 약속부터 공적으로는 학교의 각종 회식과 협의회 등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방학을 하니 매주 있었던 여행과 모임으로 식단과 운동습관을 지키기는 더더욱 힘들었다. 그리고 너무 더운 날씨에 운동할 의욕도 잘 잡히지 않았고. 그렇게 눈치채지 못한 사이 아주 서서히 체중이 다시 증가하기 시작해 바프를 찍기 전과 비슷한 몸무게인 60kg대로 돌아갔다!


아니 이 무슨 기가 막힌 일이란 말인가. 그런데 문제는 사실 체중이나 라인이 아니었다. 몸에서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필라테스를 한 이후로 몸이 서서히 건강해져서 알레르기성 비염도 거의 사라졌고 생리통이나 소화장애도 없어졌었는데 바빠서 운동을 대강 건너고 밀가루 음식을 즐기게 되면서 눈이 너무 가렵고 콧물이 많이 나고 전반적인 몸의 컨디션도 불편해졌다. 살기 위해서 운동한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다시 운동을 한다. 7월에는 운동을 자주 하지 못하다 보니 점점 더 귀찮아져서 영화를 틀어놓고 조금은 덜 집중해서 한 적도 많았다. 뭔가를 틀어놓고 운동을 하면 시간은 빨리 가고 덜 힘든 것 같지만 집중력이 분산된다. 얼마 전부터 TV를 끄고 오로지 운동 영상만 틀어놓고 집중해서 하기 시작했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자세와 호흡에 정신을 쏟으며 빨리 끝내고 싶어 1.2배속 심지어 1.5배속으로 하던 속도도 정상으로 돌리고 차근차근 진행했다. 운동을 시작하던 처음처럼 했다. 난이도가 높은 동작들로 구성된 날은 한 세트, 조금 쉬운 날은 두 세트씩 하다가 이제 난이도에 상관없이 두 세트는 고정으로 하고 상황에 따라 아령을 추가한다. 아직 허리둘레에 살은 좀 잡힌다. 하지만 다시 탄탄해져 가는 허리 근육이 느껴진다. 아침에 늘 기본으로 하는 루틴 다섯 가지를 할 때면 잡혀가는 허벅지 근육이 눈에 들어온다. 온몸에 기분 좋은 뻐근함이 느껴진다. 몸이 다시 건강해진다는 신호를 보여준다.


크림과 케이크, 아이스크림을 너무 좋아해서 끊기가 참 어려웠는데 몸이 힘들다는 신호를 인지하니까 안 먹어도 괜찮아졌다. 먹을 수는 있는데 먹고 나면 배가 아프고 오히려 몸이 쉽게 지쳤다. 빵을 먹기 위해 밥을 안 먹는다는 지인의 말에 놀랐던 적도 있었는데 내가 그러고 있었다. 빵과 과자를 먹으면서 포만감과 칼로리 계산에 밥을 건너뛰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방학 때가 되면서 여러 일정상 불규칙하게 되기도 했지만 한 번 입에 대기 시작한 간식을 끊기는 참 어려웠다.) 그래서 식습관도 다시 원래로 돌아간다. 아침에는 계란 두 개와 잡곡빵에 버터를 발라 먹고, 가끔 토마토나 로메인을 곁들인다. 점심도 가능하면 깔끔하게 단백질 위주로. 그리고 잔뜩 사 둔 쉐이크로 탄단지 비율을 맞추고 입이 심심하면 견과류를 더한다. 쉐이크만 먹어서 허전할 때면 계란과 그릭요거트를 먹었다.



역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운동하는 것보다는 나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 운동하는 것이 좋다. 내 몸 안에 잠들어 있던 운동근육들을 다시 깨우고, 라인을 예쁘게 만들기 위해 필라테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할 때 받는 에너지와 성취감이 주는 건강한 기쁨을 느끼며 운동하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 필라테스도 하지만 이제는 달리기를 좀 해 보고 싶다. 다들 마라톤이 좋다고 하는데 딱히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진 않았지만 얼마 전부터는 제대로 달려보고 싶다는 마음도 든다. 운동 신경이 없어서 뛰어난 반사 신경을 필요로 하는 피구나 탁구는 어렵고 피아노를 쳐야 하니 테니스나 늘 하고 싶은 암벽 등반은 어렵다. 그래도 한 가지 나에게 있는 장점은 심폐능력과 지구력이다. 단거리 달리기는 못해도 장거리는 잘할 수 있고, 춤은 잘 못 춰도 천천히 늘리는 스트레칭이 많은 발레는 할 수 있다.


석 달 전에 찍은 바디프로필의 결과는 지금은 애매하게 되었지만 역시 배우고 생각하게 된 바가 많다. 역시 다시 생각해 보건대, 나는 작년 이 맘 때 그저 열심히 운동하던 시간이 더 즐거웠던 것 같다. 인스타광고나 바프에 대한 부담감 없이 순수하게 운동했던. 그리하여 깨달은 바를 정리해 보면.... 보여주기 위한 것보다는 스스로를 위해서 할 것. 목표를 세우는 것도 좋지만 너무 무리하게 잡으면 결국은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는 것.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려 하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충실하게 즐기면서 진행할 것.


그래서 내 진짜 바디프로필은 지난봄에 찍은 그 사진이 아니라 건강한 몸을 위해서 노력하는 현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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