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숙제를 하나 했다. 창문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지난겨울을 지나면서 부엌 창문이 얼어붙었다. 한겨울이 되면 창문이 얼어붙어 열리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얼음이 다시 녹아내리면 물로 흥건해진다. 바로 닦아내어야 하는데 어쩌다가 때를 놓치면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곰팡이가 달라붙기 시작한다. 점점 세를 불려 가는 까만 자국을 보면서도 질끈 눈을 감고 눈길을 돌렸다. 여름이 되자 습기를 타고 피어올라 실리콘 있는 부분이 이제 까맣게 되어 버렸다. 그리고 아차 하는 사이에 겨울이 다시 왔다.
오늘, 나는 말도 못 하게 피곤했다. 주말이 되면 늘 아프고 피곤했지만 오늘은 최강이었다. 아침형 인간이 되겠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이번 주에는 두 번 실패했다. 실패한 것은 그냥 늦잠을 잤다는 뜻이 아니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데 실패했다는 뜻이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나는 정말 일찍 자려고 시도했으나 내 의지와는 별개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문제는 여전히 일찍 일어나야 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늦어도 7시 조금 넘어서는 일어나야 했으니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이 5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오늘은 3시간이나 되었으려나. 4시 넘어서 자고 7시 정도 일어나 시험감독을 하러 D중학교로 갔다. 운전해서 갈까 싶었으나 이 피곤한 상태로 왕복 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날까 싶어 대중교통으로 갔더니 확실히 시간은 많이 걸렸다.
시험감독을 하는데 시험장에서도 온갖 일이 다 있었다. 종이 치기 1분 전 안내 방송이 나오는데, 그럼 그냥 펜을 내려놓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 감독을 마친 후 시험장에서 준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학교로 가서 밀린 일을 했다. 내가 왜 교생실습지도교사를 하겠다고 했는지 오늘은 좀 후회가 되었다. 통과가 될지도 안 될지도 모르는 계획서를 매일 같이 모여서 수정하고 다시 작성하느라 정작 필수로 해야 하는 서류와 수업 준비를 못해서 일이 밀렸다. 토요일 오후 4시 반까지 학교에서 수업 자료를 만들고 있자니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나 자신에게도 어이가 없어서 한숨이 나왔다.
집에 왔더니 둘째가 열이 나고 아프단다. 너무 아파서 혼자서 병원도 못 갈 정도로 아팠는데 지금은 좀 괜찮다고 한다. 막둥이가 떡볶이를 먹고 싶다고 해서 해 주고 쌓인 설거지를 했다. 둘째가 토요일은 설거지 당번이지만 아픈 아이를 어떻게 시키나. 그냥 내가 하면서 가스레인지의 묵은 때도 다 닦아 냈다. 올 겨울 이사 갈 거라는 생각에 집을 좀 덜 치웠었다. 그러다 문득, 이사를 가든 말든 깨끗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살고 있는 공간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이사를 간다 한들 달라지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저 가스레인지는 정말 답이 없는 것이, 집주인 할머니가 그냥 두라고 했기 때문이다. 25년은 된 오래된 기름에 찌든 때가 처음부터 너무 심해서 닦아도 닦아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묵은 때를 간직한 그 주변으로 깨끗하지 않은 기운이 같이 번져 나가는 것 같았다. 약간은 포기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래서 부엌 창문도 그냥 내버려 두었는지 모르겠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티슈와 키친 타월을 들고 닦아 내기 시작했다. 이미 외풍으로 인해서 이슬이 맺힌 터라 잘 닦였다. 실리콘은 곰팡이 제거제를 쏴야겠지만 어느 정도는 없어졌다. 이제는 누가 봐도 원래 하얀 바탕인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제거되었다. 그리고 창문틀 사이사이 바닥까지 닦는다. 빗물과 바깥이 먼지가 쌓이고 쌓여 수십 번을 닦아도 계속 까만 땟자국이 묻어 나온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사이에 있던 못 쓰는 칫솔들과 나무젓가락들이었다. 청소도구로 쓰겠다고 창틀에 올려둔 낡은 칫솔들이 틈새로 끼어 들어가 있었는데 안 보여서 몰랐다. 하나를 꺼내고 키친 타월을 접어 넣어 닦으면 또 뭔가 걸렸다. 그렇게 꺼낸 칫솔만 다섯 개는 되고 나무젓가락도 세 개나 나왔다. 나는 도대체 이 안 쪽에 뭘 쌓아두고 있었던 것일까. 보이지 않는 공간이라고 대충 놓고 살았구나. 부끄럽다기보다는 기가 막혔다. 이제 어느 정도는 된 것 같다.
저 누런 실리콘이 까맣게 되어 있었다....창틀 바닥은 시커맸고..
시험 감독 하는 2시간 내내 서 있느라 무리했던 허리가 다시 아파와 잠시 누웠다. 잠깐 눈을 감았다 곧 떴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가야지. 피곤하다고 미루면 또 쌓인다. 집 안에는 쓰레기를 쌓아두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안 보이는 곳에 잘 숨겨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안 보이는 곳에서 그 썩어가는 기운이 풍겨나 안 좋은 영향을 끼치겠지. 곳곳에 숨어 있고 쌓여있는 것들을 비워내어 바람이 통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 그리고 일찍 자자. 다시 아침 시간을 시작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