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신박한 정리가 불가능한 이유

by 여울

올 겨울 방학의 목표는 책장을 세 개 비우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책장 세 개만큼의 책들을 비우고 정리하고 그 책장들을 다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3x5 사이즈의 큰 책장을 하나 버리는 데 성공했다. 난생처음으로 벽이 넉넉하게 보이는 주방 공간을 갖게 되었다. 그 책장 하나를 버리기 위해서 수많은 책을 온라인에 올려서 판매하고 나눔 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책을 판매하려면 먼저 짝을 맞추어야 한다. 1권부터 80권까지 혹은 150권까지 하나하나 짝을 맞추면서 어떤 하자가 있는지를 살핀다. 책이 바로 판매되면 정말 좋다. 하지만 일은 이제 시작이다. 물티슈로 책등과 책표지를 닦아내고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낸다. 혹시라도 있는 먼지를 털어내고 지워지지 않는 낙서는 손세정제로 문지르면 없어진다. 이렇게 해서 번호를 다시 확인하고 박스에 차곡차곡 넣는다. 설 연휴 전후로는 방문해서 수거를 하지 않기 때문에 편의점으로 들고 가야 한다. 카트에 담아서 편의점까지 끌고 가서 저울에 올린다. 20킬로가 넘으면 박스를 다시 열어서 재포장과 재접수를 해야 한다.


이렇게 서너 박스 정도를 빼내고 좀 버리고 정리를 했던지 공간이 생겼다. 5단 책장은 빈틈이 많고 공간 정리에 효율성이 떨어진다. 6단 책장을 하나 비운 것이 있어서 거기에 5단 책장에 있던 책들을 넣고 올려져 있던 온갖 잡동사니를 정리했다. 아이들 작품도 빼내고 자잘한 장식품들은 과감하게 버렸다. 친구가 결혼선물로 준 신랑신부 오르골은 부서진 지 오래였는데 차마 버리지 못하고 신랑 목이 부러진 그 오르골을 17년째 들고 다녔다 큰 딸이 어릴 때 부서뜨리고 몇 번을 접착제로 붙여도 계속 떨어지다 이사 중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고민 끝에 몇 번을 넣었다 뺐다 하다가 결국 버렸다. 그 책장이 하나 빠졌다고 집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외치면 메아리가 울리는 진귀한 경험을 하는 중이다.


치우고 나니 설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가 식구들이 우리 집에 오기 때문에 더 빠른 정리를 해야 했다. 완벽하게 깨끗하게는 못해도 화장실의 묶은 때도 벗겨야 하고 책장을 빼내고 남은 자리의 어수선함도 보기 좋게 바꿔야 한다. 이리저리 자잘하게 신경 쓸 것이 너무 많았다. 하나를 치우고 나면 기운이 빠져서 한참을 앉아 있다가 다시 힘을 내서 치우고, 그리고 다시 쓰러져 있다가 치우기를 반복했다. 집에서 할 일이 없던 막둥이가 책을 빼내고 꽂는 것을 도와주면서 한 마디 했다. "아 힘들다. 책이 진짜 너무 많아요. 엄마는 책을 좀 버려야 한다고 아빠가 그랬어요. 그런데 자꾸 산다고 문제라고 했어요." 동의하고 싶진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분했다.


작년에 책을 치우면서 토할 것 같았는데 올해도 토할 것 같았다. 작년에도 크고 작은 책장 2개 이상을 빼내었고 올해도 이렇게 빼내었는데도 아직도 13개인 것은 미스터리다. 아. 17개였는데 13개로 줄였으니 일단은 성공한 것일까. 며칠 만에 집이 확 바뀌고 '서프라이즈!!!'를 해 주는 신박한 정리는 나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정리 업체를 알아보니 최소 몇십에서 몇 백은 필요했다. 진심 정리업체의 도움을 받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 집의 문제는 책이라서 내가 일일이 확인을 해야 하는 것이니 업체에 맡기는 것은 좀 어렵다. 결국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해내는 수밖에.


직업의 특성상 책을 무작정 버리기는 어렵다. 2, 3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는 그림책이 많이 필요했고, 6학년 담임을 맡을 때는 어느 정도 글밥이 있는 책들이, 그리고 영어 교과를 맡을 때는 당연하게도 영어 그림책과 다양한 종류의 코스북 및 리더스, 챕터북 등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2살 차이로 터울이 나는 4명의 아이를 키우다 보니 원래도 많았던 내 책들과 초중고등학생이 아이들 책까지 어우러지고 심지어 아기들 책까지 여기저기 끼어 있어 난리도 아닌 것이다.


그제는 시가 식구들 가고 나서 남자아이들 방에 가서 책을 한 권씩 빼내면서 다시 한번 보았다. 애정을 가지고 있던 책들이었다. 이 책은 소장용, 이 책은 보내도 되겠다 이러면서 분류를 하다 보니 시간은 한 시간이 지났는데 겨우 한 칸 반을 정리할 수 있었다. 책정리 할 때는 책을 보면 안 된다는데. 나는 애당초 글렀던 것일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 스타일로 천천히 정리해 나간다. 한 번에 화르륵 빼내어 감정의 몸살을 앓지 않도록. 버리지 못하고 그렇게 쌓아 올린 것들이니 결국 정리하면서 겪는 신체적 고통도 내가 감내해야 할 몫이라 여기면서 차근차근 오늘도 노력해 본다.




만 5~8세 정도가 읽으면 좋을만한 창작동화 상태 좋은 A급 책들 출판사 랜덤으로 섞어서 100권 정도(추가로 B급 80여권은 그냥 드려요) 만 원에 드리려고 합니다. 직거래는 서울동작관악입니다. 이런 글을 올리고 있는 아줌마를 발견하신다면 그건 저입니다. ^^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부엌 창문을 닦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