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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알약의 유혹

by 여울

작년 4월 말에 바디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정신적으로 가장 피폐했던 시기에 억지로 만들어낸 몸이라 하면서도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가 많았다. 그 전해에는 즐거웠었다. 바프는 생각하지도 않았었고 그저 날마다 운동을 하면서 하루하루 건강해지고 바뀌어가는 몸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나이 마흔이 넘어가면 살을 빼려고 가 아닌 살려고 다이어트를 한다는데 딱 그게 나에게 해당이 되었다. 날마다 하는 운동과 건강한 식단은 내게서 비염과 불면증, 생리통과 요실금과 같은 자잘한 생활질병들을 거의 다 가져갔다. 병원에 가는 횟수는 현저하게 줄었고 약을 거의 복용하지 않아도 견딜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 크게 다친 후 두 달간 운동을 쉬면서 몸이 많이 망가졌다. 살이 5kg 불어난 상태에서 이전에 약속했던 것이 있어서 거의 반강제로 몸을 만들어갔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는데 학폭 아닌 학폭이 진행되면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학부모를 상대하느라 진을 뺐다. 그 과정에서 이미 정해진 날짜와 약속을 바꿀 수가 없어서 두 달간 거의 두 시간씩 운동을 해야 했으니 잠은 잠대로 못 자고 몰아붙이면서 즐겁지 않은 다이어트를 했다. 그리고 그전에는 요요가 없었는데 서서히 요요가 왔다. 바프를 찍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케이크류, 빵과 쿠키류를 극도로 절제해야 했다. 두 달간 아예 끊고 살았다.


바프를 찍고 나자 몸이 그동안 먹지 않던 반동작용을 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그래도 치팅 데이를 가지고 적당히 먹어주었는데 두 달은 아예 끊었던 것이 패착 원인이었을까. 아니면 억지로 몰아붙인 것이 원인이었을까. 아직 확 드러나는 정도는 아니지만 식구들과 나는 안다. 아이들이 배를 슬쩍 만져 보더니 "엄마 살쪘다."를 이야기한다. 바지 위로 불쑥 튀어나오는 '머핀 탑'이 조금씩 생겨나더니 지금은 확실해졌다.


몸도 무거워지면서 다시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운동 모드로 가고 싶다. 그런데 사실 귀찮고 싫다. 운동을 열심히 하던 모드가 사라지면 되돌리기가 정말 힘들다. 조금 쉽게 가고 싶은 마음에 미적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공구 전문 블로거의 '다이어트 알약' 판매글을 보았다.


이토록 효과적이고 부작용 없는 약은 처음이라며 극찬하는 후기가 한가득이었고 찐이라고 하는 전후 사진을 보니 더 매력적이었다. 문제는 가격이다. 거의 30만 원 하는 이 금액을 고작 다이어트 약에 나를 위해 쓰겠다고? 사흘간 너무너무 고민을 했다. 좀 쉽게 빼고 싶은 마음은 물론 있지만 아이 넷 엄마로서는 선 듯 지출하기 어려운 비용이다. 미국 직수입 완제품이라는 이 광고를 보여주니 친구가 아마존에서 쓱쓱 검색을 해 본다. 그런데 뜨지 않는다. 회사 이름으로 검색해도 제품명으로 검색해도 말이다. 그렇게 효과가 좋고 유명한 제품이라면 제품명은 아니더라도 회사 이름은 떠야 하는 거 아닌가? 미국알약이라고 검색하면 화악 뜨는데 정작 구글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이래저래 나는 마음을 접었다. 아무리 효과가 좋아도 그냥 예전처럼 미련하게 운동과 식단을 병행하면서 다시 진행해 보기로. 정말 약의 도움이 필요한 분들도 물론 계실 것이다. 다만 한 번 손쉽게 약에 의존하면 앞으로도 반복적으로 약을 찾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얼마나 쉽게 편리한 수단에 의지하려고 하는지 잘 알고 있고 그 과정에서 내성이 생기면 더 어려워진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알약의 광고에서도 이전에 다이어트 약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더' 효과가 좋다고 했다. '더' 라니. 이 얼마나 의미심장한 한 글자인가 말이다.


그러니 두 달 안에 56kg을 만들어야 한다는 그런 병적인 집착은 없이 하기로 했다. 아침에 30~50분 정도 할 수 있는 만큼 즐겁게 운동하고 기운차게 하루를 진행하고 음식은 조금 건강하게 먹기로. 그동안 사실 과자와 케이크를 신나는 마음으로 먹긴 했다. 지금은 62kg 초반대이다. 한 달간 식이를 병행하면서 제대로운동하면 2~3kg 정도는 빠질 것이고 딱 그 정도를 유지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마음의 준비는 좀 필요하니까 식단은 6월 1일부터 들어간다. (그렇다고 오늘이 다이어트 전 마지막 식사인 것처럼 그렇게 먹지는 않는다 물론.) 지금은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그리고 군것질류를 서서히 줄여가면서 조금씩 다져가는 중이다. 힘내서 가 볼 생각이다.


이번에 다시 마음을 다지면서 무리하는 건 아닌가 생각했지만 건강은 정말 전체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다. 조금 더 건강하고 활력 있는 몸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서 미룰 수 없었다. 정말 건강하고 힘이 나는 사십 대의 오늘을 위해서 다시 다이어트 시작이다. 조금 더 쉽게 가고 싶은 다이어트 보조제의 유혹을 물리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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