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 주는 조금 더 길고 조금 더 힘겹게 느껴졌다. 그 과정 사이에는 내 친구는 아니지만 한 죽음이 있었다. 친구의 친구의 죽음. 모처럼 절친과 길게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는데 톡이 왔다. "지금 병원에 가는 길이야." "왜?" "내 친구가 죽어가고 있대."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날 밤, 그 친구는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밤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한 번도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그런 친구가 있는 줄도 몰랐다. 내가 잘못했다고 흐느껴 우는 친구에게 네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왜 자꾸 잘못했느냐고 물었더니 조금씩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삶이 너무도 그녀에게 각박하여 어쩌면 그럴 수 있을까 싶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 전액 장학생으로 명문대에 입학했으나 허약한 몸으로 인한 잦은 결석과 그로 인한 장학금의 취소, 감당할 수 없는 학비로 자퇴, 겨우겨우 살아가던 그녀에게 남겨진 얼마 안 되는 유산을 가져간 친척들, 친구의 이용과 배신, 그리고 혼자 사는 여성이었기에 당했던 말 못 할 일들까지.... 정말로 삶이 어떻게 한 사람에게 이렇게 모질 수 있었는지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그리고 투병 중이었다고 했다. 아직 젊은데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내가 더 자주 만났어야 했는데, 친구의 아픈 모습을 보는 것이 두려워 그러지 못했어."
"혼수상태에 빠지기 전에, 죽음이 임박해 오기 전에 갔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너무나 미안해."라며 흐느껴 우는 친구 앞에서 나도 같이 울었다. 나는 그 친구를 모르지만, 나의 몇 안 되는 절친이 그렇다면, 그리고 내 앞에서 우는 네가 그렇게 세상을 떠난다면, 그 슬픔에서 어찌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 비통함의 무게가 고스란히 내게로 전해져서, 그 아픔이 그렇게 다가와서 친구와 함께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다. 친구는 자신이 더 잘해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고 후회했다. '조금 더 일찍 갔으면 좋았겠다'는 말을 수없이 하는 친구에게 할 수 있었던 말은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네가 있어서 위로를 받았을 것'일뿐이었다.
20년 전, 정말 아끼는 친한 후배의 어머니가 병상에 계실 때 함께 찾아갔었다. 가서 인사를 드리고 기도를 해 드리고 위로를 해 드리고 왔다. 몇 번 더 가야지 생각을 했는데 곡기를 끊으셨다는 이야기를 다른 선생님께 들었다. 당시만 해도 곡기를 끊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리고 며칠 후 후배의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나는 시간이 좀 더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랬는데 이미 늦었고,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후배에게 해 줄 수 있는 위로는 한정적이었다. 살아계실 때 찾아뵈었어야 했다.
어제 도덕 시간에 사용한 자료 중 하나가 '죽기 전에 후회하는 것들'이라는 영상 자료였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죽기 전에 후회하고 싶지 않은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한 가지는 십 년 후, 쉰셋의 나이에 유학을 가는 것이다. 20대에 가고 싶었지만 결혼을 하고 육아와 출산을 하면서 계속 미루어졌던 그 꿈을 정말 간절히 이루고 싶었다. 40대도 아니고 50대라니.... 너무 늦은 것 아닌가 싶고 누가 그 나이에 공부를 하러 떠나냐 싶겠지만 나는 공부가 하고 싶다. 영문학을 제대로 공부하는 것은 나의 오랜 꿈이었다. 꼭 유학일 필요는 없지만, 무엇이 되었든 나는 공부가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공부와 하고 싶은 수많은 바람들 앞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엄마로 지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이제 큰 아이는 중학교 3학년. 막내는 초등학교 3학년. 네 명의 아이가 나를 많이 필요로 할 시간은 아마도 10년. 큰 아이를 낳고 집에서 임신과 출산을 10년간 번갈아 하면서 너무 힘들었고, 정말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면서 나를 위한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못한 시간에 대한 보상 심리였는지 복직한 후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를 치고 책을 읽고 공부를 했다. 아이들에게도 많은 것을 해 주려고는 했으나 나를 위한 것들을 놓지 않았다. 때로는 나의 일들이 우선이었다. 미안함이 밀려왔다.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것. 그래. 조금 아쉽고 힘들어도 한 번 더 움직이고 한 번 더 미뤄보자고 생각했다. 이미 큰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고 엄마를 덜 필요로 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의 한숨 같은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 자락 바람에도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을 한꺼번에 쏟아 내는
거대한 밤하늘이다.
어둠 속에서도 환히 얼굴이 빛나고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 마디의 말
얼마나 놀랍고도 황홀한 고백인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이해인 – 사랑한다는 말은
좋아하는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 기쁜 것은 당연하지만 부재할 때 고통스럽다면 그의 존재가 각별한 것이다.
어둠과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그토록 황홀한 고백인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난다. 내 삶의 동반자가, 함께 걸어온 친구가, 내 소중한 가족이 세상에 있지 않기에 더 이상 사랑한다는 말을 나눌 수 없다. 그 사람이 세상에 없을 때 가장 고통이 극심하게 다가오는 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막상 그 부재의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잘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그 누군가가 내 곁에 없을 때, 그를 위해 애도 mourning는 당연하지만 후회 remorse는 없도록 마음을 다해야겠다고 가만히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