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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Aug 27. 2023

클래식이 아니어도 괜찮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피아노를 40년 가까이 쳐 오면서 항상 클래식을 고집했다. 모든 곡이 클래식은 아니고 뉴에이지 피아노곡도 좀 쳐 봤지만 레슨을 받고 주력을 다해서 연습하는 곡들은 항상 정석적인 클래식 피아노 곡들이었다. 안드레 가뇽이나 유키 구라모토 같은 작곡가들의 곡들은 그냥 초견으로 한 번 쓰윽 쳐 보고 마는 것으로 항상 만족했다.


그렇게 한 곡 혹은 두 곡을 한 학기 동안 연습했다. 연습해서 연주회에 올리고 다음 곡에 매진하고, 그렇게 대학교 3년 반 동안 바흐부터 슈만까지 다양한 클래식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공부하고 마지막은 슈만의 알레그로를 올리는 것으로 끝났다. 대학교 졸업한 후에도 쇼팽과 브람스, 리스트 같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공부했다. 연주시간은 보통 7분 이상. 곡 하나를 완성하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공부를 하고 나서 꾸준히 연습을 해 주지 않으면 공부를 안 한 것처럼 곡이 낯설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 한 곡을 쳐 달라고 부탁했을 때 악보가 없으면 칠 수가 없고 쳐도 서로가 부담스러웠다. 듣는 사람의 집중력이 3분을 넘기기 힘들다는 것을 치면서 알았다. 


잔잔한 소품들을 치고 싶었는데 보는 것과 다르게 소품들도 어렵다는 것을 사십 대가 되어서야 알았다. 쇼팽의 녹턴이나 드뷔시의 월광과 같은 작품들은 듣기에는 편안하고 부담이 적지만 그렇게 살려서 치려면 사실은 굉장한 내공이 필요하다는 것도 나이가 들어서 제대로 알았다. 악보로 보기에는 쉬워도 그 선율을 살리고 호흡을 이어가는 것은 치는 사람의 마음도 중요하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을 고려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또한 깨달았다. 화려한 소나타나 광시곡도 너무 좋지만 간단하지만 울림이 있는 소품이 어느 순간부터 와닿았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브람스의 인터메쪼를 연습한다. 느린데 더 어렵고 생각할 것도 더 많다. 페달링이 간단하고 선율 구분이 확실한 하이든과 너무 달라서 극과 극을 달리는 것 같다. 


오늘 그저 피아노가 좋아서 라는 문아람 피아니스트의 에세이를 읽었다. 읽으면서 노력하는 사람의 아름다움과 겸손한 사람이 가지는 깊이를 느꼈다. 그리고 그녀가 연주하는 대표적인 곡들의 목록도 보았다. 클래식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곡들도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시크릿 가든의 Last Present나 스티븐 바라캇의 Rainbow Bridge, 러브레터 OST인 윈터스토리, 그리고 안드레 가뇽의 조용한 날들도 있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도 홀로 아리랑이나 마법의 성, 등대지기, 꽃밭에서와 같은 대중적인 곡들도 있었다. 클래식 애호가들이 묻는 질문 중에는 클래식의 대중화냐 대중의 클래식화냐가 있는데 둘 다 맞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클래식 골수팬들은 대중의 클래식화에 조금 더 무게를 두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닐 수도 있다.) 나 역시도 항상 정통 클래식 곡들만 연주하려고 했으니 할 말이 없다. 그런데 기대하지 않게 감동을 문득문득 느끼는 때는 우연히 틀은 라디오에서, 카페 배경 음악에서, 길을 가다 갑자기 조우한 음악일 때도 많았다.


스티븐 바라캇의 레인보우 브릿지는 그 환상적인 화성과 전개로 한순간에 귀를 사로잡아 버린다. 친구에게 들려주니 화장실 음악이라고 해서 웃은 적이 있다. 호텔 화장실에 가면 나오는 음악이라는 것이다. 화장실에서 들려주는 음악은 편안해야 하니 그야말로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인 셈이다. 그리고 사실 이런 뉴에이지 음악도 제대로 연주하려면 난이도가 높다. 어쩌면 더 어려울 수 있는 것이 박자가 자유롭고 복잡하고 다양한 화성을 표현하기 위해 임시표도 다닥다닥 붙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듣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려면 연주자가 힘을 빼고 연주를 해야 하는데 힘을 주는 것보다 힘을 빼는 것이야말로 난이도 상이다. 늘 정석대로 by the book 타입으로 살아온 내가 과연 이런 곡들을 제대로 살려서 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겨울 방학 즈음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클래식이 아니어도 충분히 감동과 울림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될 것 같다. 나는 '나'를 위해서 피아노를 치지만 결국 음악은 '나눔'이 있을 때 그 가치가 확실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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