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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Sep 19. 2023

브람스를 좋아하시나요

브람스의 인터메쪼를 연습 중입니다. 좋아하는 작곡가가 다들 있으시고 그중 누군가 하나를 꼽으라 한다면 참으로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굳이 하나를 정하라 한다면 저는 브람스를 말하겠습니다. 저는 베토벤이 참 어려웠습니다. 그의 단단함은 견고하기가 성 같아서 아무리 문을 두들겨도 문이 열리지 않고 벽도 넘기가 어려운 높은 성과 같았어요. 물론 그렇다고 다른 작곡가들이 쉬운가 하면 절대 그런 것은 아니에요. 모든 곡들은 다 어렵습니다. 쉬운 곡이 단 하나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게 유독 어려운 작곡가는 베토벤이라서 연습하다 보면 매번 벽에 가로막히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템페스트 3악장 같은 곡들은 정말 좋아하지만 제가 템페스트를 템페스트답게 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싶은 생각까지 듭니다. 언젠가는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20년, 아니 30년이 지난 것 같습니다.


브람스도 역시 견고한 작곡가입니다.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그 깊고 깊은 무게는 가끔은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압도적인 무게감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제게는 어쩐지 인간적인 면모가 베토벤보다는 느껴지는 것은 어쩐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도 그렇고 교향곡도 그렇고 강렬하고 장엄하게 시작하기도 하고 화려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이해하는 듯 다가옵니다. 어쩌면 그의 고독과 헌신, 그리고 온 생애를 통해 드러난 그의 절제가 음악에 반영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는 낭만시대를 살았지만 낭만적인 것과는 조금은 거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정말 베토벤에 가까운 고전적인 면모가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고전적 낭만주의자라는 이름이 그냥 붙은 것은 아니니까요. 한 번 듣고 반해서 지휘자 별로 모으기도 했던 독일 레퀴엠 같은 경우도 그 절제되면서 단아한 아름다움이 어찌나 아프게 마음을 에이는지 모릅니다. 쇼팽이나 차이코프스키처럼 대놓고 '나 아파'라고 말하지 않아서 더 아리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브람스가 좋아요. 단아하면서도 인간적입니다.


그런데 브람스의 그 절제된 음악들 중에서 유독 브람스 같은데 브람스 같지 않은 음악이 하나 있습니다. 작품번호 118번 중 두 번째 곡 인터메쪼, 간주곡입니다. 6개의 소품들로 이루어진 피아노 모음곡입니다. 클라라 슈만에게 헌정된 곡입니다. 스승의 부인인 클라라를 평생 사모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누구보다 이해하고 존경했던 남편이 정신병으로 세상을 먼저 떠났고, 아이들 역시 그리 이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세상을 일찍 떠났습니다. 명피아니스트이자 훌륭한 음악교사였고 작곡가이기도 했던 클라라는 사실 좀 아까운 면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로베르트 슈만이 클라라의 남편으로 불렸다는 사실만 봐도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이자 명문가의 딸인 그녀가 어려운 환경에서 7 아이를 키우며 남편도 살피며 생계를 유지했어야 했다는 부분은 좀 많이 안타깝습니다. 이러한 클라라는 정말 이상적인 여인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 다 놓아버리고 싶은 상황에서도 매몰되지 않고 끝까지 서서 나갔던 그녀의 모습은 그래서 브람스와 더 떼어놓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그 마음, 수많은 말보다도 이 음악 하나에 어쩌면 이렇게 다 담겨 있는지요.


브람스는 숨겨왔던 마음을 담아 클라라에게 편지를 씁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이란 단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수식어를 사용해 당신을 불러보고 싶습니다."


그의 나이 60세에 74세의 클라라에게 헌정한 곡. 노년에서야 비로소 용기를 내어 표현을 했고, 클라라는 연주함으로 화답합니다. 그리고 클라라의 죽음.

"삶의 가장 아름다운 경험이었고 가장 위대했던 가치였으며 가장 고귀한 의미를 잃어버렸다."


클라라가 죽은 후 1년 후 브람스도 세상을 떠났다고 해요. 클라라는 정말 브람스를 우정을 나누는 존재로만 생각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길진 않지만 마흔이 넘는 시간을 살아보니 정말 다양한 빛깔의 애정이 존재하더라고요. 브람스를 향한 마음이 절제된 사랑이었는지, 삶을 함께 걷는 벗으로서의 깊은 이해가 동반된 우정이었는지 그것은 정말 클라라만 알 것 같아요. 제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14살이나 어린 청년과 함께 오랜 시간을 지냈다고 해서 남자로 보일까? 하는 마음도 솔직히 들거든요. (그건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만.) 이모 같은 마음으로 잘 되라고 응원하고 싶을 것 같고, 이 아이가 나를 사모한다고 해도 음.... 하여간 그렇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완벽한 여인 클라라에 대한 이 마음. 저는 또 약간은 알 것도 같아요. 너무 고귀하고 너무 소중해서 그 내성적이고 수줍음 많았던 브람스는 이 곡을 쓸 때도 용기를 그러모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슬쩍 사이에 끼워 놓았고요. 그렇기에 그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할 때조차 저는 그의 머뭇거림이, 그리고 절제가 느껴져서 더 아리게 스며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연습하는 내내 아프고 어려운데 할수록 빠져드는 느낌이에요. 이번 주 미니연주회가 있어서 갑자기 집중 연습하는 기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연습하고 레슨도 또 받아봐야 알 것 같아요. 윗 선율 살리기에 주력하는 중이라 아직 거칠고 왼손과의 밸런스나 레가토와 렌토의 표현도 한참 멀었지만... 기록하는 의미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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