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낙타인가

나는 낙타였다

by 여울

요 며칠간 미친 듯이 책을 읽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밤 독서 시간은 하루도 빠짐없이 잘 지켜지고 있어서 놀랍고 때로는 정해진 30분보다 길어진다. 가장 책을 안 읽던 둘째는 한 시간째 독서 중이다. 장르가 로맨스면 어떠랴. 일단 책 속에 빠지기 시작해서 앉아 있는 힘, 책을 들고 있는 힘이 길러진다면 조금씩 장르를 넓혀 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반강제 독서의 힘은 생각보다 컸고, 내가 평소 읽던 양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독서로 자연스럽게 이끌어갔다. 아이들과 함께 하니 그 시간만큼은 다 내려놓고 같이 책 속에 파묻혔고, 읽다 보면 가외로도 많이 읽었고, 그러다 보면 책은 책을 불렀다.


구립도서관에서도 빌리고 학교 도서관에서 빌리고 집에 사 두고 미뤄둔 책들도 읽었다. 장르에 상관없이 마음 가는 대로 그냥 집어 들었는데 오늘 보니 여행기 책들이 좀 있었고 그중에서도 인도 여행기가 두 권이나 있었다. 아마 내 마음속에 답답함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있어 그 바람이 은연중에 반영이 되었나 싶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동학년 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도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몸도 아팠다. 손목이 아프고 팔이 아프고 발목도 아팠다. 피아노를 칠 수가 없었다. 매주 빠짐없이 가던 피아노 레슨을 취소했다. 감각을 놓지 않고 싶어 연습을 하려고 해도 30분 이상 치기 힘들었고 가끔은 5분으로 그쳤다. 뭔가를 자꾸 먹었다. 원래 케이크와 과자를 좋아했지만 다이어트를 하면서 딱 끊고 정말 가끔만 먹었는데 그냥 자꾸 뭔가를 먹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몸에 억지로 에너지를 넣어주어야 수업을 하고 오후에 다른 업무들을 해 낼 수 있었다. 커피도 하루에 한 잔만 마시던 것을 아침부터 밤까지 몇 잔을 마시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억지로 정신을 깨우고 몸을 깨우는데도 자꾸 힘이 들어 눈을 감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 정신을 놓았다. 그러다가 10여분 만에 깜짝 놀라서 깨는 일이 반복되었다.


인도를 다녀온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도 그렇고 여행기를 보아도 그렇고, 덥고, 더럽고, 온갖 오염물질이 대기와 강을 채운 그곳에 가면 처음에는 경악하지만 다녀오면 자꾸 생각이 나고 그립다고 한다. 다시 가게 된다고. 수억 개가 되는 인도의 신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우리가 쉬쉬하는 것들을 다 노출하고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카스트제도가 너무나 당연한 그곳. 그 책에서 또다시 나는 니체를 만났다. 요새 읽는 책들마다 다 니체를 이야기해서 몇 년 전에 입문 정도로 읽고 덮어둔 니체를 다시 한번 제대로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니체가 계속 나왔다. 로판에서도 나오고 음악 관련 서적에서도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도 그리고 끌리거나 혹은 떨리거나라는 인도여행기에서도 나오고, 이쯤 되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고 상식인 것 같다.


낙타에 대한 이야기를 빼고 갈 수가 없는데, 낙타는 그야말로 온순함과 인내의 상징이다. 주인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착하고 예의 바르고 공경심과 인내심이 강한 동물이라니. 이처럼 이상적인 가축이 어디 있으랴. 그래서 어떤 명령에도 "예"라고 복종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아니요"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했다. 그야말로 자신의 삶을 사막으로 만드는 공허한 인내의 몸짓을 보여주고 있다고. 애당초 비극은 존재하지 않았고 행복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가진 편견이었다고....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라고. "그대들은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모두 입을 닫을 수밖에 없다. 노력한 줄 알았다. 참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그것이 정말로 맞는 노력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바보 같은 굴종이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지 않으려는 회피였을 뿐인데도 어차피 변하지 않을 테니 잘 참고 넘기면 되겠다고 그렇게 합리화하면서 지난 세월을 보내왔다. 결국 우리는 낙타였던 것이다. 아니. 나는 낙타였던 것이다. '우리'라는 단어로 은근슬쩍 묻어가려고 하지 말자.


왜 아픈지 알겠다. 비겁했던 스스로에 대한 직시. 자만했던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아픔을 겪는 그들을 모른 척, 아니 공감하는 척하며 넘어가려던 비겁함에 대한 모멸감. 그리고 여전히 권력이라는 무기 앞에 무릎을 꿇는 동료들에 대한 안타까움. 이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타고 올라오는데 내가 안 아프고 괜찮다면 그게 더 이상하겠다. 도서관에 또 가자는 아이들에게 미안하지만 내일은 갈 수 없다고 했다. 아이들을 놓아두고 엄마로서의 직무를 잠시 미뤄두고 나는 조금이라도 낙타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기를 써 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하도 많이 당연하게 해서 저절로 "네"라고 대답이 나오는 나의 방향을 바꾸려는 것이다. 젖어 들은 줄도 몰랐던 이 깊이 배인 습관의 늪에서 분연히 몸을 일으켜 나오려고 한다. 이대로라면 그대로 가라앉는 줄도 모르고 죽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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