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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Sep 03. 2023

갑자기 아팠던 몸이 아프지 않았던 이유

7차 추모집회를 다녀와서

지난주 내내 정말 아팠다. 얼굴빛이 하도 안 좋아서 신랑은 자기가 뭘 잘못했나 말도 못 하고 걱정했다고 오늘에서야 말했다. 그 좋아하던 피아노 연습도 다 내려놓고 운동도 할 의욕이 없어서 못했다. 정말로 몸을 꼼짝할 수가 없었다. 힘드니까 단 과자류와 커피만 잔뜩 마셔서 속은 더 부대끼는데 그거라도 먹어야 살겠으니 먹는 바람에 더 안 좋아지는 악순환이었다.


슬픈 마음으로 어제 집회 장소로 향했다. 오전부터 1 구역, 2 구역 차례로 마감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회는 2시부터인데 오전부터 와 계신 선생님들.... 정말 존경스러웠다. 대학교 절친은 2 구역에 있다고 했고 친한 후배는 11 구역 끝자리에 앉았다고 했다. 동학년 샘들은 이제 자리가 없어 여의도 공원에 앉으셨다고 소식을 전해 오셨다. 오전에 시합이 있어 끝나자마자 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부지런히 가는 길, 노량진 역에서 만난 수많은 우리 검은 점들.... 우리는 검은 점이라고 부른다. 작은 점들.... 가끔 왜 일반 시민분들의 의아한 시선을 받으면서 여의도 공원으로 향했다.


12 구역까지 가득 차서 이제는 그냥 여의도 공원에 중간중간 나누어 앉았다. 조용히 줄을 맞추어 질서 정연하게 앉아 있는 우리 선생님들. 조용히 경청하면서 가끔씩 구호를 외쳤다. 선생님들의 아픈 이야기들, 전하지 못한 마음들.... 이미 흘릴 눈물이 없을 정도로 다 말라 버린 것 같은데 또 눈물이 났다. 그렇게 3시간 가까이 앉아 있었다. 원래는 4시에 폐회 예정이었으나 예정된 이야기들이 계속되었다. 이 자리에서 발언권은 유가족과 교사 외에는 그 누구도 안 된다고 했음에도 함께 자리한 국회의원분들과 교육 관련종사자 분들도 계셨다. 우리가 아무것도 줄 수 없다고 했을 때 오는 사람들이야 말로 또 진정으로 관심 있는 분들이 아닌가 잠깐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추모의 시간과 나눔의 시간을 가지고 인디스쿨 TF팀에서 정리한 보고서의 내용을 확인하는데 정말 감탄만 나왔다. 어쩌면 저렇게 일목요연하고 시원하게 대응방안절차를 내놓을 수 있는지, 이것이 현장에서 근무하며 직접 경험한 교사들의 힘이다. 마음이 아프고 몸이 너덜너덜한 가운데서 또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픔 속에서도 다시 서서 나갈 힘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


세 시간 동안 그 뜨거운 햇빛 아래 앉아 있었지만 덥다고 느껴지진 않았는데 일어나는 순간 핑하고 어지러웠다. 쓰러질까 싶어 잠깐 서 있었더니 견딜만했다. 뜻하지 않게 아는 얼굴들을 마주하기도 했다. 집회가 끝나고 하늘에는 무지개가 떴다. 작은 무지개. 뭔가 또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선생님들 위로 잘 받았어요'라는 속삭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끝나고 후배와 친구와 이야기를 길게 나누었다. 여전히 내일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있고 마음의 무게가 다 덜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 밤, 나를 누르던 통증들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손목도 발목도 어깨도 훨씬 덜 아팠다. 운동할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올라오던 식탐이 사라졌다. 함께 아픔을 나누고 함께 나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이토록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제대로 느낀 것이다.


나라고 왜 힘든 시간이 없었겠는가. 정말 하루하루 날짜를 지워가면서 필사적으로 버틴 해도 있었고, 그냥 다 놓아버리고 싶은 시간도 있었다. 옆 반 선생님이 견디다 못해 병가를 쓰시고, 그 해를 기점으로 명퇴를 하시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기도 했다. 그때는 정말 그냥 혼자서 감당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관리자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상황을 알고 계셔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한 선생 힘들어서 어쩌니." 하는 안타까운 듯한 눈빛과 말만 받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나의 무능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선생님 어떻게 작년 한 해를 버티셨어요? 지금 올해 각 반에서 유명한 아이들 다 선생님 반에서 왔더라고요."라는 질문에 나는 그저 웃었다. "그 반 아이들 힘들기로 유명하다던데 괜찮아요?"라는 질문에는 "아이들은 괜찮아요. 학부모님들 대하는 게 더 큰 일이죠."라는 대답이 저절로 나오기도 했다. 학부모님들의 협조만 있어도 아이를 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정말로. 올해 1학기 내내 시달린 그 일이 마무리되면서 더 이상 학부모의 연락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정말로 얼마나 마음에 안도감을 주는지 새삼 깨닫는 요즘이었다.


추모집회에 다녀온 어젯밤. 일주일 내내 나를 짓누르던 몸의 통증과 마음의 아픔은 한결 가셨다. 정말 몸이 물먹은 스펀지처럼 무거웠지만 그것은 할 일을 했다는 감사한 피로감이었다. 아직 갈 길은 여전히 많이 남아있지만 나 홀로 감당할 짐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위로받은 하루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눕자마자 정말 죽은 듯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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