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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Sep 16. 2023

6학년 제자의 결혼식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첫 학교 첫 제자들과의 시간은 더 기억에 남고 더 소중하다. 나는 놀랍게도 첫 발령을 내가 다녔던 영등포의 한 초등학교로 받았다. 늘 그곳의 추억은 좋았고 친구들도 좋아서 비록 5학년 때 전학을 갔지만 내 마음속의 모교로 남아 있던 곳이었다. 발령받아 간 그 학교의 아이들은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정말로 그랬다. 근처의 한 중학교에서 보통 서너 개의 초등학교 졸업생들이 모이게 되어 있다. 그 중학교의 선생님들이 우리 학교 아이들이 유난히 예의도 바르고 착하고 성실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가끔 들었다. 물론 내가 도치 선생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니 상당히 객관적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첫 제자들은 내가 정말로 사랑했지만 사실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은 반년뿐이다. 1학기에는 영어 전담을 맡았고 2학기 시작되면서 2개였던 반이 3개로 늘어났고 중간 담임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아이들이 나를 사랑했던 것보다 내가 더 사랑했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이 너무 짧아 너무 아쉽기만 했는데 아이들은 순식간에 졸업했고 나는 펑펑 울었다. 그 28명의 아이들의 이름은 지금도 가끔씩 떠 올려 본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는 5학년을 했는데 좀 힘들긴 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사랑스러웠고, 그다음 해도 5학년을 했는데 정말 제일 사랑한 아이들인 것 같다. 우리는 정말 행복한 한 해를 보냈다. 주말이면 아이들과 박물관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한강에 가서 자전거도 타고 여름방학에는 같이 캠핑도 가서 암벽등반부터 캠프화이어까지 정말 제대로 추억을 쌓았다. 아이들이랑 지하철 타고 가서 버스 갈아타고 용인까지 그렇게 대중교통으로 오고 갔으니.... 나도 참 어찌 그리했나 모르겠다. 그 아이들이 하도 예뻐서 그대로 데리고 올라가고 싶었다. 교장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그건 안 되고 원한다면 6학년 담임을 시켜 주겠노라고 하셨다. 그래서 아이들을 따라 올라가서 6학년 담임이 되었다. 반 배정을 잘한다고 했는데 전학이라는 변수가 있어서 우리 반은 조금은 힘든 반이 되었다. 아이들의 아픈 상처를 함께 겪어 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노력한다고 했는데 잘했는지는 모르겠다. 6학년 담임을 하면서 합창부 지도도 했고 스카우트 대장도 맡아서 했다. 수업개선연구교사도 했다. 학교의 힘든 일은 그냥 다 맡아서 열심히 했다. (성과급은 다음 해부터 도입이 되었는데 내가 했던 그 수많은 일들은 이전의 일들이니 해당 사항이 없고 나이 많으신 순으로 드린다고 했다. )


오늘 결혼한 제자는 우리반이면서 합창부 활동도 같이 해서 조금 더 나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합창부 아이들과 따로 공연도 많이 보러 다녔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음악회와 발레, 연극, 스케이트 등등 경험을 넓혀 주고 싶어 여기저기 많이 데리고 다녔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합창대회도 있고 중창대회, 독창대회까지 교육청 주관으로 있어서 더더욱 시간이 많이 들었다. 노래를 잘했던 ㅎㅁ이는 학급 회장도 했고 마음이 착하면서도 적극적으로 학교 일에 임했다. 자연스럽게 어머니와 또 ㅎㅁ이 이모님까지 간혹 뵙기도 했다. (당시에는 학교 행사에 부모님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 ㅎㅁ이 말고도 정말 많은 어머님들을 자주 뵈었다.) ㅎㅁ이는 토실토실 귀여웠는데 본인은 그게 좀 스트레스였었나 보다.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몰라보게 살을 빼서 정말 오늘도 우리 ㅎㅁ이가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다른 것은 다 변했는데 쌍꺼풀 진 예쁜 눈은 그대로였다.


첫 학교 아이들과는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하고 있었는데 ㅎㅁ이가 결혼을 하다고 했다. 물론 제자들 중에는 이미 아기 엄마가 된 아이들도 있다. 분명히 결혼할 때 연락하라고 했는데 그냥 조용히 한 아이들도 좀 있었다. 축하한다는 댓글에 ㅎㅁ이는 바로 연락을 했다. 미리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신혼집 입주문제와 겹쳐서 도저히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는 예의 바른 인사였다. 그러면서 6학년 시절에 어떻게 자신감을 얻고 지내올 수 있었는지 자세하게 쓰면서 지금도 여전히 감사하다고 했다. 매주 네 명의 아이들을 번갈아 가며 따라다니느라 정말 시간이 없었는데 오늘은 딱 좋았다. 길을 잘못 들고 급한 마음에 과속해서 (분명 속도위반 티켓이 날아올 것이다...ㅠㅠ) 또 다른 길로 헤매고.... 40분이면 갈 거리를 1시간 40분을 걸려서 갔으니 나도 기가 차서 어이가 없었다. 중간에 들어가서 축가를 하는 것부터 봤는데 여전히 미성으로 곱게 노래를 잘 부르는 모습에 예전 그 모습도 함께 겹쳐서 그냥 눈물이 자꾸 났다. 어리던 아이가 이렇게 잘 커서 한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보니까 자꾸자꾸 눈물이 나서 좀 힘들었다.


내가 아이를 키워보니 정말 잘 자라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겠다. 이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운동을 잘하고 음악을 잘하고 미술을 잘해서 뭔가 두각을 드러내고 엄마아빠의 자랑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정말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착한 아이로 잘 자라서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꾸려나가기만 한다면, 대학이 무슨 상관이고 직업이 무슨 상관이랴. 그래서 ㅎㅁ이 부모님께 또 정말 수고 많으셨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기도 했다. 예전 제자들도 많이 왔다는데 나는 또 바로 다음 일정이 있어서 아이들을 보지 못한 것이 좀 아쉽긴 하다.


내년에도 결혼한다고 또 다른 제자가 연락이 왔다. 올해 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말했다. 나중에 결혼하면 꼭 연락하라고. 어른되어도 꼭 오라고. 밥도 사주고 너네가 컸으니 술도 사 주겠다고 했다. 아이들이 잘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그것만큼 큰 기쁨은 없는 것 같다. 수백 명의 제자들이 있어서 기억 못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마음 속에 다 남아있다. 물론 이름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어떻게든 기억은 난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마음을 쓰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잘 되기를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좋겠다. 생각해 보니, 나의 담임 선생님들도 그러셨겠지. 이렇게 이렇게 내가 받은 그 마음을, 그 사랑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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