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하나인 것도 괜찮았던 하루

원래는 넷입니다만

by 여울

나는 지금 강원도에 아들과 단 둘이 있다. 다른 세 아이는 서울에 있고. 셋째와 둘이서 단풍 구경을 하러 온 것은 아니고 홍천에서 열리는 야구대회 때문이다. 토요일에는 시합이 두 번, 일요일에는 한 번이 있는데 시간이 참으로 애매했다. 토요일 첫 경기는 10시 반이니 9시까지는 도착해야 했고 경기가 끝나면 대략 4시 반 정도 된다. 그리고 일요일 첫 경기도 10시 반이다. 이제 여기서 선택을 해야 한다. 토요일 경기가 끝나면 집으로 올라왔다가 다시 일요일 새벽에 내려가는 것이 한 가지. 그냥 여기서 1박을 하고 경기가 끝난 후 올라오는 것 한 가지. 이리저리 고민을 좀 해 보다가 그냥 여기서 1박을 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동안은 단체로 지냈는데 이번에는 각자 알아서 하기로 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문제는 숙소를 구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는 것이다. 물론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성비 숙소는 이미 일찌감치 예약이 끝난 상태였다. 나는 딱히 단풍 구경에 관심이 없어서 몰랐는데, 이 가을,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그렇게 많은지도 몰랐다. 어찌어찌 검색 끝에 무리가 되지 않으면서 아이와 둘이 묵기 좋은 작은 호텔을 발견하고 하나 남은 방을 얼른 예약했다. 그리고 바로 매진이 되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휴우.


이제 몇 시에 출발하면 되는지를 생각해야 했다. 어젯밤에 검색을 해 보니 1시간 27분이 나와서 이 정도면 딱 좋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출발 예상 시간을 바꿔서 알아보니 7시는 2시간 30분이라는 것이다!!! 10분씩 일찍 출발할수록 소요시간은 10분씩 줄어들었다. 고민고민하다가 6시 40분에 출발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나도 잠은 자야지. 어제 따라 학년에서 회식이 있어서 집에 좀 늦게 왔다. 도저히 그냥 떠날 수 없어 집 청소 및 정리를 대강 해 놓고 나서야 출발 준비를 했더니 1시가 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나는 완벽하게 집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사람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 정리병과 청소병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왕 자는 거 정말 푹 잤으면 좋았을 텐데 늦게 일어나면 안 된다는 긴장 때문에 슬프게도 5시가 넘으니 계속 잤다 깼다를 반복했다. 어찌 되었건 6시 42분 정도로 잘 출발했는데 예상 소요 시간이 2시간 28분으로 나오는 것이다. 지각인데!!


당연히 고속도로를 타는 줄 알았는데 내비게이션은 대성리 팔당댐 두물머리를 지나는 국도 코스로 나를 안내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 아침에 그렇게 일찍 출발하시는 부지런한 분들이라는 것도 처음 안 것 같다. 막혀도 늦게 일어나 느긋하게 준비하는 우리 집 식구들과는 정말 다르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으며 부지런히 운전을 했다. 분명히 뒤차는 멀리 있어 차선을 바꾸려고 깜빡이를 켜고 슬슬 오른쪽으로 움직이려는데 뭔가 싸한 느낌에 들어가려는 것을 잠깐 멈추는데 정말 미친 듯이 내 옆을 지나가는 다른 차가 있었다. 멀리 있는 뒤차는 그대로인 것을 보니 옆 차선에서 들어온 모양이다. 정말 큰일 날 뻔했다는 것을 한 번 더 느끼고 나니 가슴이 콩닥거려서 좀 늦어도 안전운전이라는 마음으로 빨리 달렸다. 도착한 시각은 8시 46분. 오오 이 정도면 선방인데 라는 생각으로 다른 집 이야기를 들었다. 바로 옆집은 5시 40분에 출발했는데 더 늦게 도착하셨고 5시에 출발한 집은 3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그냥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었는데 그래서 더 오래 걸리셨다고 했다. 다들 고속도로를 타셨는데 나 홀로 국도를 질주해서 최단시간이었다.


오전 경기를 치르고 나서 아이와 둘이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항상 여럿이서 복닥복닥이었는데 둘이서 조용히 돈가스와 초밥과 가락국수를 먹었다. 오후 경기 치르기 전 너무 피곤해서 30분 잠깐 눈을 붙이고 있는데 전화가 7통이 왔다. 경기 시작하니까 엄마를 꼭 불러 달라고 했단다. 오늘 첫 경기 선발과 두 번째 경기 마무리로 합쳐서 다섯 이닝 정도를 던진 것 같다. 아이가 하는 야구를 볼 때면 모든 부모님들이 그렇겠지만 정말 가슴이 어찌나 조여드는지 말로 표현을 못하겠다. 삼진으로 깔끔하게 끝내면 좋겠는데 볼넷도 나오고 가끔 데드볼도 나온다. 우리 아이는 한 번 맞추고 한 번 맞았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그래서 투수도 타자도 참 어렵다. 첫 경기는 워낙 강팀이라서 9대 3으로 졌고 두 번째는 아슬아슬 주고받고 동점과 역전을 오가다가 8대 7로 졌다. 플라이아웃으로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혔던 아들 친구는 결국 훌쩍훌쩍 눈물을 흘렸지만 나는 괜찮았다. 아이들은 열심히 했고 수비 실책도 예전에 비해서 거의 없다시피 좋아졌다. 서로 합이 맞는 야구 시합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지금 5학년 아이들 대부분이 정식으로 야구를 시작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기에 성장하는 모습을 이렇게 보여주는 것은 너무도 기꺼웠다.


가까이 있는 호텔로 와서 둘이 잠깐 쉬었다. 나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고 아이는 런닝맨과 행복한 타임을 가졌다. 둘이서 정말 밥 먹으러 나가기 싫은데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하니까 나갔다. 아는 동생이 가성비 한우집과 비싼 한우집을 소개해줬는데 물론 가성비다. 둘이서 먹어도 5만 원은 나왔지만 그래도 둘이니까 먹을 수 있었다. 우리 집 식구 6명이 모두 다 왔으면... 끼아아.... 30만 원이다.... 내일 아침 먹을 시리얼과 우유를 사서 들어왔다. 아이들이 어릴 때 4명을 척척 잘 데리고 다녔다. 막둥이는 아기띠로 안고 있고 셋째는 유모차에, 두 딸은 유모차를 잡은 내 손을 잡고 따라왔다. 차를 태울 때에도 막둥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그다음에 셋째를 유모차에서 내려서 카시트에 태우고 그 사이 두 딸은 스르르 좌석에 앉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일상이어서 아이들이 항상 내 곁에 바글바글하지 않은 상황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오늘 이렇게 둘이서 있는 것이다. 잠깐 몇 시간씩은 있기도 하지만 이틀을 온전히 둘이서만 있는 것은 처음이다. 말도 별로 없는 셋째는 아침저녁으로 나를 꼭 끌어안고 자기 전에 "안녕히 주무세요."라는 인사를 하면 "잘 자라, 귀염둥이야."라는 대답을 들어야 안심하고 잠을 잔다. 오늘 사실 막둥이를 데려올까 말까 정말 고민을 많이 했는데 좀 미안하지만 셋째랑만 있는 것도 괜찮았다. 아이가 하나니까 이것저것 챙기고 봐 주기도 편했고 어디를 가고 올 때도 에너지가 훨씬 덜 분산이 되었다. 조용한 고요함이 있는 것도 은근히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집에서도 네 명의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나를 아이들에게 맞추느라 힘을 쓰고 있었나 보다.


새벽에 일어나 혼자 운전하고 추위에 떨면서 몇 시간을 밖에 있었지만 (강원도의 10월 낮이 이렇게 추울 줄은 몰랐다.) 그래도 뭔가 마음에 홀가분함과 한적함이 더해진 하루. 그래서 피곤함이 온몸을 휩쓸고 있는 이 시간에도 잠을 안 자고 버티고 있나 보다. 조금이라도 더 누려보고 싶어서. (아 물론, 날 기다리는 다른 세 아이를 위해서 여기 맛있는 쌀롤케이크를 사 두었다.) 아마도 지금의 한적함과 홀가분함이 좋은 것은 기간이 정해져 있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 보름달이 환하게 비취는 아름다운 가을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