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가길 참 잘했다

막둥이 문화예술제

by 여울

언제부터인가 '자녀돌봄휴가'라는 것이 생겼다. 아이 한 명당 최대 2일까지 쓸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아이가 넷이니까 8일을 쓸 수 있어야 하지만, 다른 분들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자녀가 여러 명이면 최대 사흘을 쓸 수 있다. 유급은 사흘이고 무급은 열흘까지다. 아이가 크면 부모가 따라다녀야 할 일이 적을 줄 나도 알았는데 오히려 더 많아진다는 사실도 아이가 크고 나서야 알았다.


자녀돌봄휴가는 하루를 온전히 쓸 수도 있고 시간 단위로 쪼개서 쓸 수도 있는데 아이 치과 및 병원 진료로 이미 상당수를 썼고 남은 시간은 채 하루가 되지 않았다. 6시간 정도. 그중 2시간을 오늘 오전에 쓰기로 했다. 기존에 학예회라고 불리던 문화예술제가 막둥이네 학교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그제 신청을 했는데 띠롱! 교감선생님께 메신저로 메시지가 왔다. "이미 이틀을 쓰셔서 기존에 올리신 것 기결취소하시고 변경하셔서 올리셔야 합니다." "저는 다자녀라서 최대 3일까지 가능합니다!"라고 보냈더니 "아이코 그렇군요. 잘 다녀오세요."라고 하셨다.


학교가 큰 학교이다 보니 6번 정도로 나눠서 한다고 했다. 아침 9시에 시작해서 10시 반에 끝나는 일정이라 정말 너무 좋았다. 학교를 하루 종일 빠지지 않아도 되고 와서 아이들을 챙길 수 있으니 나도 한결 마음이 편했다. 엄마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이는 계속 나를 찾았나 보다. 내가 도착하는 순간부터 손을 엄청 흔들어 대면서 연신 눈을 마주쳤다. 다섯 번째 정도 되는 순서였는데 이미 많은 학부모님들이 오셔서 사실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엔 자리가 애매했다. 제일 앞 줄에 서 계신 분은 "찍으실 때 말씀하시면 비켜드릴게요." 했는데 의외로 소심한 나는 그분이 다른 분들께 두어 번 양보하시는 모습을 보니 차마 입이 안 떨어져서 그냥 폰을 머리 위로 들고 찍었다. 어쨌거나 그런 배려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고 마음이 훈훈해진 것은 사실이다.


아이들의 공연은 좋았다. 소고춤을 추는 저학년 차례에서 당연하게도 무대에 설 때 간격이 좀 애매하게 떨어진 아이가 있었다. 그러자 여자 아이가 이쪽으로 오라고 티 (많이) 안 나게 손짓으로 알려주는데 그런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노래 문어의 꿈에 맞춰서 댄스 공연도 있었는데 사실 나는 이 노래가 나오자 좀 마음이 무거워졌다. 노래 가사는 좋은데 마지막 가사 때문이다. 다양하게 노래하다가 "이곳은 참 우울해"로 마무리하는 부분이라 어쩐지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으로 끝내는 것 같아 틀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에 염려가 되었다. 그런데 "이곳은 - " 하고 "참 우울해."라는 부분의 가사를 그냥 지워 버렸다. 그리고 아이들이 "괜찮아. 넌 할 수 있어!"라고 다 같이 외치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들의 센스와 용기를 주는 아이들의 말에 또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 막둥이 차례. 사실 기대가 없었던 것은 이 아이가 몸치이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시절 공연을 보러 가면 매번 한 박자에서 반 박자 느리고 어설프고 설렁설렁.... 보는 내가 민망할 정도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뭐 다를 게 있겠나 싶은 마음으로 그래도 엄마니까 갔다. 무대 자리도 오른쪽 제일 끝에 서 있길래 '그래. 그럼 그렇지.'라는 마음이었다. 아아닛. 그런데 막상 음악이 나오니까 생각보다 너무 잘하는 것이다. 내 눈을 의심하면서 보는데 정말 순서도 안 틀리고, 동작도 정확하고, 온몸으로 즐기면서 추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무대 가운데로 오고 인사 구령도 우리 막둥이가 했다! 헐..... 이런 날도 오다니.... 이것은 담임 선생님의 인간 승리라고 볼 수밖에 없다. 매일 옷도 돌려 입고 글씨는 괴발개발에 "아 맞다!"가 일상인 아이. 저 아이가 우리 반 교실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는데, 우리 막둥이를 이렇게 사람처럼 공연할 수 있게 만들어주시다니....'선생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어쩌면 아이는 그 사이 쑥쑥 잘 자랐는데 내가 몰랐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정말로 담임 선생님들의 공이 지대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처럼 사교육도 별로 없고 엄마는 직장에 자기 일에 바빠서 아이를 많이 못 챙기면 바로 티가 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정말 이 아이를 챙겨주시는 선생님들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늘 백배 가득하다.


6학년 공연까지 잘 끝나고 학교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서 1층으로 서둘러 내려왔다가 아차! 싶어서 다시 강당으로 올라갔다. 아이가 강당 밖으로 나갈 때 어쩐지 엄마가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역시 아이는 내가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했고 집에서 맨날 끌어안고 보는 엄마지만 한 번 더 손깍지를 끼면서 활짝 웃었다. 나는 막둥이 공개수업도 학부모총회도 가질 못했다. 대부분의 초등학교가 같은 날 공개 수업을 하기 때문에 나는 우리 반 공개수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둘째처럼 엄마 안 온다고 엉엉 울진 않았지만 분명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 서운함과 아쉬움이 있었을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 가길 정말 잘했다. 일 년 간 아껴서 쪼개 쓰는 자녀돌봄휴가. 이제 마지막 남은 4시간은 중학교 3학년 첫째의 졸업식에 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