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고구마 캐러 갔던 진짜 이유

는 따로 있었지....

by 여울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이번 주에 날 너무 춥지 않으면 고구마 캐러 와~." 사실 나는 아빠와 좀 꽁 한 상태라 가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의 돗자리 글을 가족 단톡방에 올렸는데 앞부분이 마음에 안 드셨던 것이다. 마음에 안 들었다기보다는 내 기억이 정확하지 않고 중요한 포인트는 빠졌다고 하셨다. 나는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뒷부분이 핵심이라고 했고 그 가운데서 아빠와 삐걱삐걱 생각이 맞지 않았다. 그렇게 좀 안 좋은 상태로 있다가 어제 엄마 전화를 받고 어쩔까 싶었다. 오늘 아침에 또 전화가 왔는데 "비도 왔고 날도 추워서 안 갈래요."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해 보다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엄마! 고구마만 캐는 거야 아니면 고구마 캐고 나서 아빠랑 지난번 걸로 이야기도 하는 거야?"

"고구마만 캐는 거지 얘기할 게 뭐 있어. 지난번부터 고구마 캐러 오라고 했잖아!"

"엄마! 나 아빠한테 삐졌거든!"

"그래서 안 캐러 온다고 한 거야?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

"아빠도 나한테 삐진 거 아니야?"

"부녀지간에 삐지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어. 애기네 애기."

"나 애기 할 거야! (이게 마흔네 살 네 아이 엄마 초등교사의 말인지 나도 하면서 기가 막혔다....) 암튼 나는 그러니까 그 얘기 또 할 거 같으면 안 가고 안 하면 가요. '내가 네 마음 알겠다'라고 말 한마디 하는 게 뭐 그렇게 어렵다고."

"그런 말 하면 너네 아빠니? 알았어! 여울이 마음 좀 알아주라고 내가 얘기해 놓을게."


그래서 나는 갔다. 사실 고구마가 목적이 아니었다. 오늘이 가기 전에 아빠를 봐야 서로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싶었다. 오전에 막둥이 픽업을 잘 마치고 집에 와서 아이들 밥 먹이고 모처럼 오랜만에 운동을 제대로 각 잡고 하고 나서 씻고 눈도 잠깐 30분 정도 감았다가 갔다. 날이 너무 좋아서 집에 있기 아쉽긴 했다. 글로성장연구소 멤버들은 오늘 모여서 뒤풀이도 하고 글도 쓴다는데. 나도 가고 싶은데. 자꾸 막둥이 픽업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수 없어서 집에 있어야 했다. 그러자니 좀 아쉬웠다. 셋째랑 넷째를 살살 꼬셔서 (이제는 외갓집 가는 것도 꼬셔야 하다니..... 어릴 때는 그냥 좋다고 따라나섰는데....) 안산까지 열심히 차를 몰았다. 날이 좋아서 그런지 갈 때도 올 때도 차가 참 많았다.


고구마는 아직 꽤 많이 남아 있었다. 삽을 꽂는다. 어설프다. 다섯 번쯤 했나? 엄마가 보시더니 안 되겠나 보다. "그냥 내가 하마." 엄마가 두어 번 더 삽질을 해서 고구마를 아이들이 목장갑 껴고 줄줄이 꺼낸다. 고구마가 저렇게 붙어서 나온다는 것도 직접은 처음 봤다. 엄마랑 아빠는 농사를 참 잘 지으시는데 나는 흙이 싫고 허리 숙이는 것도 아프고 하여간 농사는 짓는 게 남는 게 아닌 것 같다. 엄마가 고구마 순 또 다듬고 고구마 흙 털어주시는 것을 보니 더 그런 것 같다.


나는 차라리 하우스를 정리하는 게 적성에 맞아서 어질러진 것들을 다 정리했다. 3년은 된 화장품 샘플들이 한가득 담긴 것도 다 버리고 노끈이니 마스크니 자잘한 쓰레기도 싹 다 모아서 담고 문풍지며 갑 티슈며 물품도 한 곳에 다 모아서 꽂아두고 씨앗들도 쇼핑백 하나에 다 담았다. 그 사이 아들들은 할머니를 도와서 열심히 고구마도 나르고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고 그 사이 아빠가 왔다.


"할아버지!"하고 막둥이가 달려가 안긴다. 나랑 아빠는 서로를 머쓱하게 쳐다보았다. 나는 "오셨어요." 하고는 어쩐지 분한 마음에 "흥"하고 한 마디하고 그래도 아빠가 반응이 없으시길래 한 번 더 "흥!" 했다. 아빠는 들었는지 아니면 못 들은 척하는 건지 아니면 어떻게 하셔야 하는지 애매한 건지 가타부타 아무런 말씀도 안 하셨다. 그렇게 우리 사이의 어색한 기류는 끝난 건지 아닌 건지도 잘 모르겠다. 아빠는 아이들 간식을 사 오셨다면 간식 박스를 하나 차에 실어주셨고 우리는 미리 캐서 말려 놓으신 고구마 한 박스와 오늘 캔 고구마 한 박스 조금을 들고 집으로 달려왔다. 어쨌거나 고구마 캐러 가기를 잘했다. 내가 한 거는 삽질 몇 번뿐이지만 아들들은 나름 즐거웠고 흙투성이가 되었고 아빠와는 어색하게나마 눈을 마주쳤고 얼굴 봐서 마음을 푼 것 같으니 된 것 같기도 하다. 다다음 주 생신인데 다음 주는 각자 일정이 바빠서 오늘 아니면 또 애매했는데 힘들어도 시간 내어서 달려가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