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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Oct 30. 2023

티볼에서 공친 후 배트를 던지면

아이들과 티볼을 하고 있다. 오늘로 4주째. 5학년 때 배웠지만 한 번 더 해 보자고 스포츠강사님이 제안을 하셔서 좋다고 했다. 야구의 변형인 티볼은 아이들에게 부담감을 줄여주면서 야구의 맛을 조금은 느껴볼 수 있는 운동이라 인기가 좋다. 두 팀으로 나누어 한 팀은 타자 순서를 정해서 받침대에 공을 올려놓고 친다. 상대팀은 수비를 한다. 공을 주고받는 캐치볼 연습과 배팅 연습을 2주 정도 한 후 지난주부터 연습 게임에 들어갔다. 


우리 반에는 체육만능선수가 하나 있어서 그 아이가 들어간 팀은 승률 99퍼센트 확률로 이긴다. 심지어 작년에 리틀야구단 활동까지 해서 야구형 게임에서는 거의 선수급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도 예쁜 것이 이 아이는 과하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서 활동에는 임하지만 친구들이 받을만하게 공을 던지고 친다. 아이들의 아우성이 있는 가운데 그래도 체육 잘하는 두 아이가 팀을 짰는데도 불구하고 팀의 균형이 맞지 않았다. ㅅㅁ이 말로는 "저희 팀은 예능팀이에요." 그 말인즉슨 실력으로 승부하기 힘들고 티볼을 하는 것이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웃길 예정이라는 뜻이다. 설마... 싶었는데 진짜로 헛스윙은 기본이고 플라이아웃에 뛰질 않나, 안타를 쳤는데 서 있다가 3루에서 둘 다 죽는 등등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그럭저럭 했는데 한 번은 ㅁㅎ이가 공을 아주 잘 쳤다. 본인도 그걸 알아서 신나게 배트를 휙 던지고 뛰었는데 휘슬이 울렸다. "아웃이에요." "네?" "티볼에서는 공치고 나서 배트 던지면 아웃입니다." 기본규칙이고 작년에 배웠는데 이미 까맣게 사라진 것이다. 아쉬운 마음으로 아웃이 된 ㅁㅎ이는 다음번 순서에도 공을 아주 잘 쳤다. 그런데 그만 또 배트를 휙 던지는 것이 아닌가. 마음이 급해서 빨리 1루로 뛰어가려다 보니 배트를 정말 있는 힘껏 던졌다. 당연히 아웃이고 거기에 더해서 그만 홈베이스를 담당하던 ㅎㅈ가 배트에 맞았다. 고무 배트지만 맞으면 아픈 것은 당연하다. "아프다고!!" ㅎㅈ를 좋아하는 ㅁㅎ이는 당황했다. 그렇게 예능팀은 결정적인 찬스를 두 번이나 날리고 말았다. 그렇잖아도 한 점이 아쉬운 참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버리다니. "그럼 배트를 이렇게 살포시 내려놓아야 하나요?" "네, 그럼요." 그리고 그것으로 ㅁㅎ이의 공격 기회는 더 이상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두 번의 아웃을 당하고 말았다.


티볼은 꽤 괜찮은 경기다. 아웃이 세 번이면 이닝이 종료되는 일반 야구와 달리 10명의 선수가 모두 타석에서 공을 쳐야 이닝이 교체되기 때문에 공평한 기회가 주어진다. 슬라이딩이나 터치 아웃을 하지 않아 아이들이 무리해서 달릴 필요가 없고 정말 순수하게 즐기기 좀 더 쉽다. 그래서 배트를 던지면 안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거기에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ㅁㅎ이는 귀여운 아이다. 순수하고 밝고 쾌활한데 친구를 너무 좋아해서 가끔 자신이 할 일을 놓쳐버린다. 눈앞에 놓인 그 일에 집중을 하면 다른 것이 마음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아웃을 한 번 당하고도 똑같은 실수를 했겠지. 그래도 이렇게 해서 하나씩 알아가면 된다. 아쉬워도 실수를 하면서 배우는 것이 더 많으니까. 


요새 나를 돌아본다. 나 역시 내 눈앞에 놓인 그 목표에만 집중하느라 혹여 배트를 던져 버리는 실수를 한 건 아닌지, 혹시라도 그 과정에서 다친 사람이 있는 건 아닌지. 딸아이가 핸드폰을 그렇게 사랑하는 것도 어쩌면 내가 더 챙기지 못했기 때문일까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로서 선생님으로서 두루두루 살펴보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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