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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Nov 03. 2023

가을 아침 내게도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

소중한 우리반

올해 우리 학교 우리 학년은 1인 1악기로 우쿨렐레를 배웠다. 우쿨렐레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은 반반이다. 너무 싫어요와 재미있어요. 싫다는 아이들은 사실 다른 악기를 해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긴 한다. 지금까지 다른 학교에서도 1인 1악기로 했던 악기들을 보면 소고, 장구, 칼림바, 우쿨렐레, 기타, 바이올린까지 정말 다양한데 그래도 칼림바와 우쿨렐레가 아이들이 접근하기가 좋은 악기들이다. 올해 우쿨렐레를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은 많은 곡들을 하지 않으셨고 다섯 곡을 선정하셔서 아이들과 찬찬히 진도를 나가시면서 반복을 하셨다. 여러 곡을 겉핥기처럼 지나가는 것보다 반복해서 다양한 주법으로 가르쳐 주셔서 아이들도 확실하게 익힐 수 있어서 지켜보는 나도 좋았다. 


매 주 한 것은 아니고 1학기 2학기 모두 합쳐서 14번 정도 한 것 같다. 어설프던 멜로디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형태를 잡아갔고 소리는 더 분명해졌다. 그리고 어제는 모둠별로 곡을 하나씩 정해서 발표회를 하기로 했다. 아침 교실 문을 열자 아이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피아노 쪽에 서 있기도 하고 자리에 책상을 돌리고 있기도 하고 바닥에 동그랗게 앉아 있기도 했다. 우쿨렐레를 미리 연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통은 아침에 세줄쓰기를 하고 독서를 해야 하지만 잘하겠다고 준비하려는 그 모습이 참 예뻤다. 평가도 아니고 누군가 다른 손님들이 오셔서 발표회를 하는 것도 아닌데 서로 역할을 분담하고 열심히 연습을 했다. 일기장을 보니 누구는 C코드와 F코드 밖에 몰라서 노래를 해 달라고 했는데 노래도 몰라서 가르쳐 주느라 애를 먹었다는 내용도 있고 우연으로 우쿨렐레 수업이 있는 날만 3주 계속 빠졌다가 등교한 날이 마침 발표회날이라 어쩌면 좋으냐고 하소연하는 모둠 등등 사연도 다양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잘했다. 


영상을 찍어주다 말고 나도 같이 노래를 불렀다. 가을아침이 아이유 노래인 줄도 모르다가 악보를 보니 아이유 작곡이라고 되어 있어서 알았다. 그냥 조용히 읊조리듯, 어떤 격정적이고 특별한 멜로디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더 편안하게 와닿는 노래. 6개의 모둠이 연주를 하는 동안 마음이 참 좋았다. 나 혼자 보고 듣기가 어찌나 아깝던지.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해서 결과를 내는 예쁜 모습들을 나는 선생님이라서 볼 수 있다. 틀려서 지르는 괴성과 다시 맘 잡고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시작하는 모습. 잘했든 못했든 환호성과 함께 아낌없이 쳐 주는 박수 소리. 끝나고 "선생님! 누가 제일 잘했어요?"하고 굳이 확인하고 싶은 그 마음. "쉿. 비밀이야!"라고 대답해 주지 않자 "에이." 이러면서도 더 이상 조르지 않고 아쉬운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가는 아이들. 아. 나는 정말 우리 반이 사랑스럽다. 우리 반과 함께 하는 가을 아침. 가끔 "빨리 졸업시키고 싶으시죠?"라는 질문도 들려오기도 한다. 아이들을 무사히 졸업시키고 여유롭게 쉬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나가는 이 시간이 나는 너무 아깝다. 우리 반 아이들은 내게 선물 같다. ("여울 선생님 생각하면 어떻게 견디시나 싶은데."라는 다른 반 선생님의 한 마디는 잊기로 하자. ㅋㅋㅋ) 2023년의 이 가을아침이 내게는 정말 기쁨이고 내게는 정말 행복이다. 노래 가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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