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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Nov 08. 2023

부끄러움을 마주하다

"찰칵."

아이들 떠드는 소리에 살짝 스쳐서 묻혀가는 이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한데 확실치 않았다.

"선생님! 누가 핸드폰 썼어요!"

"저도 들었어요! 사진 찍는 소리였어요!"

"ㅎㅈ예요!"

"나 아냐!"

"아냐! 너 셀카 찍는 거 다 봤다고!"

그러자 아이가 멋쩍은 얼굴로 "한 장만 찍고 바로 내려놨어요."라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아이들이 우수수 수업 시간에 핸드폰 사용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부터였다.


"선생님! 도서실에 가서요. 거기 아이들이 동그란 데 숨어서 핸드폰으로 몰래 영상 봐요."

헉.... 어쩐지. 내가 가끔씩 자리를 이동하는데 가까이 가면 사르르 흩어지는 광경이 이상하다 싶었다. 속으로 '내가 불편한가?'하고 걱정했는데 아니었다. 아니다. 불편하긴 했겠구나. 몰래 핸드폰 사용해야 하는데 선생님이 가까이 있으면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났으면 나에게 잠깐 잔소리와 학생생활규정에 나온 항목에 대한 설명을 듣고 끝났을 것이다.

"ㅂㄱ도 핸드폰 사용하는데요?"라는 문제가 나오면서부터였다. 마침 조퇴를 해서 교실에 없었는데 이 아이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는 이야기가 갑자기 우수수 나오는 것이다. 평소 워낙 모범생이고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는 아이였다. 요즘 들어 수업 시간에 몰래 간식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살짝 들렸는데 문제는 아이가 없을 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 아이는 조퇴를 자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단 둘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경우가 없었다. 처음에는 그냥 넘기고 나중에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다. 다만 한 가지 물어는 보았다. "왜 있을 때 이야기 안 하고 없을 때 이야기 하니?" 그러자 아이들이 일순간 입을 꼭 다물었다. 한 명이 머뭇거리다가 멋쩍은 표정으로 말한다. "사실 마음 상하게 하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 그리고 어쩐지 그 아이의 잘못을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고 좀 어려워요." 그 말에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나는 정말 좋아하는 친구라서 잘못을 이야기하면 배신하는 것 같고 고해바치는 것 같으니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특유의 카리스마가 있는 아이인지라 아무래도 조심스럽고 어려운 마음에 밉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친구들이 "그러면 안 되지 않아?"라고 했을 때 태연하게 난 학급 임원이니 괜찮다는 대답을 했다는 부분에서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지금까지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반에는 나에게 자주 이름이 불리는 3+1 총사가 있다. 3+1인 이유는 원래 자주 불리던 아이 하나가 요새 많이 노력해서 절반 이하의 수준으로 이름이 불리기 때문이다. 그 삼총사 중 한 명은... 하아... 이제는 물병을 돌려 던져서 받는 대신 핫팩을 던지고 있다. 그래서 다른 아이가 몇 번 핫팩에 맞는 것을 보아서 지금 일단 기록해 놓고 있다. 여전히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고 (6학년 2학기 임) 필기도구가 없어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빌리고 ("너 나에게 지금까지 3월부터 계속 연필을 빌려 가는 거 알아? 하루라도 안 빌린 적이 없어!"라고 절친이 말했다.) 시험을 잘 보지만 다 같이 해야 하는 모둠 과제는 너무나 귀찮아 대강대강 무임승차를 하도 많이 해서 원성이 자자하고 다 같이 돌아오는 길에 수시로 사라졌다가 엉뚱한 노선에서 뿅 하고 나타나고 청소 시간에 쓰레기를 발로 몰래 밟아서 숨기다가 나중에 들킨다. 아무튼 그러하니 이 친구들은 내가 "ㅈㅇ아! ㅎㅁ아! ㅅㅇ야!" 하고 불러도 나를 보고 '헤... 또 걸렸네.' 하는 표정으로 배시시 웃을 뿐이다.


모범생인 아이에게 야단을 치는 것이 더 어렵다. 혼나 본 적도 없고 혼을 내 본 적도 별로 없기 때문에 사실 내 마음이 제일 어렵고 힘들었다. 이 아이가 왜 그렇게 했을까. 이유는 짐작이 가긴 했는데 내일도 학교에 나올지, 나와도 얼마나 있을지 잘 몰라서 고민고민 끝에 어머니께 직접 말씀드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아이와 먼저 이야기를 하고 해결이 되면 부모님께는 말씀을 드리지 않는다. 이 경우는 나로서도 좀 예외적이라서 메시지를 드리기 전에 한참을 고민하고 망설이다가 정말 어렵게 자판을 두들겼다. 어머니는 이해를 해 주셨고 아이와 이야기를 잘 나누어 주셨다. 이 과정에서 여러 번 메시지가 서로 오갔고 길게 통화도 했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아이들이 네가 없는 자리에서 너를 헐뜯으려는 의도가 아니었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오늘도 역시 조금 늦게 등교하긴 했다.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나는 아이의 눈에서 어색한 멋쩍음과 부끄러움을 보았다. 본인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사각지대에서 한 두 번 한 것이 들키지 않고 넘어가자 횟수가 많아지고 점점 대담해졌을 뿐. 혹여라도 선생님께 또 다른 말을 들을까 긴장하는 모습이 작은 어깨에서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아이 어머니는 내게 자신이 정말 많이 혼을 내었으니 편을 좀 들어달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우리 아이 잘못을 눈감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지혜롭게 잘 극복하고 나갈 수 있게 도와달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럴 수 있는 학생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둘러싼 상황이 힘들고 스스로 노력해서 다지고 나가는 과제가 무거워 좀 일탈을 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반 다른 아이들이 나와 그 친구가 어떻게 하는지 열심히 지켜보는 시선을 느꼈다. 누군가는 나에게 입모양으로 '선생님!'하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나 역시 입모양으로 '했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지나갔다. 나는 오늘 이 부분이 제일 어려웠다. 내가 부디 바라는 것은 야단을 쳐야 하는 일이 있을 때, 잘못을 알려줘야 하는 일이 있을 때, 아이가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이다. 오늘은 하교 후에 남아서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여럿이라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그냥 보냈다. 내일은 둘이 같이 이야기를 해야지. 초조하고 불안했을 마음. 어쩌면 선생님이 이야기를 별도로 하지 않아 차라리 나았을까 싶었을 그 애매한 마음자리에서 나는 너를 아끼고 잘 되길 바란다고. 그리고 우리 반 아이들도 너를 너무 좋아하는 마음에 지금까지 고민했던 것이라고. 그리고 그 마음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고 말이다. 부끄러움을 마주하고 시인할 수 있고 고쳐갈 수 있는 용기는 너에게도 나에게도 필요하다. 이 일로 이틀간 잠을 못 자고 고민했다. 교사는 정말 용기가 필요한 직업이라는 것을 오늘 또 생각한다.


용기란 일어서서 말할 때도 필요하지만 또한 앉아서 들을 때도 필요하다는 것. 말하기 싫은데 말해야 하는 용기와 듣고 싶지 않았지만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 들어주어 고맙고 눈을 마주해 주어 고맙다.


Courage is what it takes to stand up and speak; courage is also what it takes to sit down and listen. (Winston Churchill)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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