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언니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어린 시절부터 같은 교회에서 자란 우리는 친자매 같은 감성의 공유가 있었다. 언니에게는 대학생, 고등학생 두 아들이 있었고 그 아이들은 나를 이모라고 부르며 따랐다. 나에게도 조카와 같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다. 언니가 몇 년 전에 둘째가 사춘기를 심하게 앓는다며 도를 닦는 마음으로 무한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고 했다. 과학상자 도대회 대표로 전국대회에 나갈 만큼 총명함을 보이던 아이가 공부고 뭐고 다 놓았다고 했다.
언니의 그 이야기가 생각나서 전화를 했다. 통화를 하는데 자꾸 눈물이 났다. 언니는 말했다. "아이가 담배를 하기를 하니, 술을 마시길 하니. 가출하는 것도 아니고 학교는 가잖아.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거야. 학교도 안 가고 집에만 있는 아이들도 정말 많아. 우리 둘째 친구들도 5명이 자퇴를 해서 얘 혼자만 남아서 힘들었어." 지금 우리 큰 딸은 사춘기를 제대로 겪는 중이라고 했다. 중 3 제일 까칠하고 예민한 시기. 고등학교에 가고 대학교에 가면 한결 부드러워진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우리 큰 딸을 봐 온 언니는 아이의 상냥하고 부드럽고 다정한 성품과 책임감 있는 면면을 알고 있었다.
특성화고를 보내려고 한다는 말에 함께 어울리게 될 친구들을 좋은 아이들로 만났으면 한다는 말과 함께 그래도 아이가 하겠다고 하고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고 했다. 그래도 본인이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게 고마운 거라고. 그러면서 네 딸은 엄마가 좀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고 했다. "내가 너를 아는데, 너 하고 싶은 것도 많아서 지금도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지?" 내 상황을 멀리서도 환하게 들여다보는 것 같은 언니의 말의 난 정말 뜨끔했다. 피아노에 수채화에 한국어와 영어 원서 읽기에 영어공부에 글쓰기, 운동까지.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것도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니 얼마 전 몸살이 난 것이다.
"엄마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이들은 별로 상관하지 않아." 그 말이 정말 맞다. 엄마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잔소리 없이 보여주면 아이도 알아서 따라 한다던 어떤 강사들의 말은 맞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제일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은 바로 나니까. 혼자 앉아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옆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알아서 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잠시 피아노를 멈추기로 했다. 다른 것들은 아이들이 옆에 있는 공간에서 할 수 있다. 글 쓰기도 그림 그리기도 책 읽기도 운동도. 그런데 피아노는 연습실을 가기 위해서 최소한 두 시간에서 많게는 네댓 시간을 비우는 일이 잦았다. 매일매일 가지는 않더라도 일주일에 며칠이라도 그건 큰 일이었다. 어쩌면 엄마가 옆에서 제일 필요할 그 시간에 나는 내 음악을 하겠다고 자리를 비운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일단 다음 주에 레슨은 받는데 12월까지는 좀 미루고 방학을 하면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날마다 하는 연습과 매주 받는 레슨으로 피아노와 음악이 성장하는 것을 스스로도 느끼고 다른 사람들도 알아차리고 말을 해 주고 있어서 더 정성을 쏟았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제 큰 딸을 시작으로 차례차례 사춘기를 겪어갈 네 아이들. 2살 터울이라 최소 8년은 가겠지. 지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내가 시간을 내어 아이들과 있는다고 해도 내 계획이 촘촘하고 하려는 것이 많으면 마음이 분산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아이가 지금 사춘기를 겪어 주는 것이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다. 지금 겪지 않으면 나중에 겪게 되어 있다는 것을 나이 마흔에 알았다. 나는 착하고 순종적인 딸로 큰 반항 없이 사춘기를 보냈는데, 십 대에 겪지 않았더니 나이 마흔이 넘어서 왔다. 그 극심한 마음의 갈등과 괴로움은 정말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차라리 지금 십 대에 잘 겪으면 좋겠다. 살면서 계속 도전이 되는 어려운 일들이 있겠지만 사춘기를 제대로 겪고 나면 그래도 그보다는 덜할 것이고 한 번 어려움을 겪었으니 다음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또 성장하는 시간을 겪어 간다. 아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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