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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Nov 09. 2023

말없이 보낸 사진 하나가 불러온 파장

우리 학교는 고학년인 5학년과 6학년을 대상으로 '직업인과의 만남' 시간을 가지고 있다. 현직에서 각 분야의 실제 전문가들이 학교에 와서 직업에 관련된 이야기도 들려주고 체험도 해 보는 시간이다. 우리 반은 '특수분장사'를 신청했다. 사실 슈가크래프트 같은 것을 하고 싶었으나 비용이 비쌌다. 한 명당 오천 원 이내로 신청하라는데 슈가 크래프트는 만이천 원이었다!!! 그래서 1 지망으로는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것과 2 지망으로 혹시 여유가 있을 경우 조금 저렴한 인당 6500원인 '특수분장사'를 신청했다. 다른 반에서 래퍼, 모델 등의 다른 직업인을 신청해 주셔서 우리 반은 특수분장사를 받았다. (사실 슈가크래프트도 3 지망에 넣었으나 탈락.)


특수 분장은 사실 나는 딱히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좋아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 주된 이유였다. 작년 어느 하루, 집에 돌아온 나에게 둘째가 손을 확 내밀면서 "엄마 나 다쳤어!"라고 했다. 손에 커다란 핏자국과 깊게 갈라진 상처에 나는 기함하면서 "왜 그래!" 하면서 "왜 전화도 안 했어!" 하는데 다른 아이들이 모두 키득거리길래 보니까 분장이었다. 특수 분장이 너무나 재미있었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던 것이다.


드디어 현직 특수분장 전문가 선생님이 오셨다. 강의를 들으면서 특수분장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새로이 알게 된 것도 많고 어떤 직업이나 그렇겠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확인했다. 교사라는 직업 세계만 경험한 나에게는 좀 더 시선을 확장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드디어 아이들이 기다리던 특수분장 시간. 화상을 입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라텍스 액을 바르고 이쑤시개로 살짝 뜯어서 구멍을 만든 다음, 색 물감과 색 물엿을 적절하게 바르면 화상자국이 완성된다. 아이들은 즐거워했고 보는 나도 즐거웠다. 사진을 찍고 싶다길래 그러라고 했다. 몇몇 아이들이 부모님께 사진을 보낸 모양이다. 깜짝 놀라길 바랐는데 "어마나, 놀라워라. 뭐니." 같은 반응에 아이들은 아쉬웠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수업은 마무리되고 나는 옆반 수업 보결을 들어갔다. 요새 선생님들이 많이 아프셔서 강사를 구하기가 정말 너무 어렵다고 하셨다. 3반 선생님은 아예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아프셨다. 나는 체육 수업 보결이라서 체육관으로 아이들과 함께 가서 열심히 배드민턴을 치고 교실로 돌아왔다. 어차피 우리 반 다음 시간도 체육이었기 때문에 겉옷과 핸드폰은 그대로 체육관에 두고 왔다.


교실로 돌아가는데 내가 보결에 들어갈 동안 영어를 가르치신 교과 선생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연락을 받으셨냐고 물어보신다. "아니요? 무슨 일 있었나요?" ㅈㅇ 어머니가 아이가 무슨 사진을 보냈는데 심하게 다친 것 같다면 보건실에 몇 번이고 전화를 하셨고 교실로도 전화를 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ㅈㅇ는 수업을 잘 받고 있다고 하니까 화를 내시면서 아이가 이렇게 다쳤는데 왜 학교는 연락도 없냐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을 하라고 하셨다고.... 그런데 나는 교과실에 없고. 3반에도 없고. 3반 아이들도 없고.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다들 몰라서 애가 탔다고..... 체육 수업이었다는 말에 그제사 '아!' 하신다. 빨리 연락을 드려서 안심시켜 드려야 하는데 나는 핸드폰을 체육관에 두고 왔다. 이를 어쩌나 싶어 일단 ㅈㅇ를 불렀다. 어머니께 사진을 보내고 다른 설명을 했냐는 질문에 아이는 아니라고 했다. 빨리 통화를 하라고 했고 나는 그 사이 컴퓨터 메신저 앱으로 들어가 문자를 먼저 드렸다. 잠시 후 ㅈㅇ가 우울한 얼굴로 교실로 돌아와 "죄송하다고 말씀 부탁드린대요."라고 이야기했다. 아이는 그냥 장난 삼아 다른 친구들이 하니까 같이 보냈을 뿐인데 이 정도로 사태가 커졌는지는 몰랐던 것이다. 나와 바로 연락만 되었어도 어머니의 걱정은 이렇게까지 커지지 않았을 텐데, 담임 선생님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고, 보건실에 전화해도 아이는 온 적도 없다고 하고 교실로 전화해도 잘 있다고 하니 너무나 걱정되는 마음에 화가 나신 것이다.


일이 안 되려면 이렇게 안 되기도 한다. 40분간 애끓는 마음오로 노심초사하셨을 ㅈㅇ 어머니를 생각하니 나도 그 마음을 모르지 않아 이해가 된다. 그 조마조마했던 심정이 안도의 마음으로 바뀌었을 때 탁하고 풀리는 그 순간의 허탈함까지. 어휴. 정말로 일이 안 되려면 그렇게 안 되기도 하는 것이다. 점심을 먹는 내내 ㅈㅇ는 기운이 없었다. 맛있는 샤인머스켓은 손도 대지 않아 그대로 잔반처리통으로 가려는 찰나 ㅁㅎ이가 보고 받아가는 일도 있었다. 내가 토닥토닥해 주어도 소용이 없었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라는 물음에 고개만 끄덕였다. 다행히도 집에 갈 무렵에는 조금 밝은 표졍으로 친구들과 말도 했다. 혹시 몰라서 어머니께도 토닥여 달라고 연락을 드렸다.


오늘 동학년 협의회는 유난히 더 길었다. 동료장학 협의회를 겸하는 바람에 그렇기도 했지만 직업인과의 만남 행사로 인해 유난히 에피소드가 더 많았다. 옆반에서는 라텍스 알레르기 반응도 두 명이나 일어나기도 하고 동물조련사와 함께 온 개의 털로 인해 개털알레르기도 발생하는 등등 정말 많은 일이 그 두 시간 동안 일어났다고 한다. 다행히 알레르기 반응은 약을 바르니 모두 잘 가라앉았다고... 라텍스 알레르기는 나도 처음 들었는데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도 모르셨다고 했다. 다음에 특수분장사를 또 신청할지 잠깐 고민이 된다. 만약 하게 된다면 부모님께 사진만 달랑 한 장 보내면 절대 안 된다고. 혹시 보내더라도 1분 후에는 바로 이거 분장이라고 꼭 메시지를 드리라고 신신당부해야겠다. 원래도 긴 목요일이 유독 길게 느껴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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