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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Nov 13. 2023

그녀가 내 당근 마켓 고객이 되었던 날

나는 서비스를 팍팍 주었다

도덕 시간이었다. 나눔 장터 이야기가 나왔다. 아이들과 해 보고 싶었다. 물건 가격은 100원, 200원 정도로 책정하자고 했다. 어차피 사용하지 않을 물건, 더 이상 쓸 수 없는 물건들. 나눔을 하거나 버려야 하는 것들이니까 그 정도면 아이들에게 서로 부담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물건이 없다고 사 오거나 하지 않기로 이야기하는데 ㅅㅁ이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그거 당근 마켓에 내놓으면 몇 천 원씩은 받는데 굳이 그래야 해요?"


ㅅㅁ이는 나보다 당근마켓 전문가이다. 사회과 부도도 얼마에 팔았다고 하던가... 사회과부도가 당근 마켓 물품에 올라온다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 외에 잡다한 것들 팔아서 수익을 잘 올린다고 했다.


"그러니까 팔기 애매한 것들 내놓으면 되지. 나만 봐도. 이것 봐라?"


나는 교실에 가져다 놓은 슬라임 파츠 및 부자재를 담아 놓은 상자를 보여주었다. 둘째가 생일 선물로 사 달라고 해서 5만 원이 넘게 부자재를 구입한 것들인데, 별로 쓰지도 않고 아이는 슬라임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러더니 당근에 팔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올려놓은 지 몇 달. 몇 번의 채팅은 있었지만 실제 거래로 이어지진 않았다. 갑자기 지금 사러 오겠다고 나의 사정은 묻지도 않길래, 외부에 있으니 나중에는 안 되겠냐는 질문에 갑자기 대답 없이 사라지거나, 다음날 만나기로 해 놓고는 연락이 없는 경우만 세 건이었다. 


"원래는 만 원에 내놓았는데 안 팔리더라고. 그래서 7천 원으로 낮추었는데도 거래가 몇 번 불발되더니 안 되는 거 있지. 그래서 당근은 좋기도 하지만 안 좋기도 한 거야."


그런데 가격을 들은 아이들이 갑자기 웅성웅성 거린다. 


"선생님! 그 색모래 엄청 비싼 건데요?" (나는 모른다. 모르니 넣었겠지.)

그러더니 본인들이 사고 싶다는 것이다. 그냥 딱 봐도 고가의 파츠가 가득하고 (진심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 거기에 슬라임카페에서 구입한 다른 물품까지 포함) 반 정도 사용했지만 여전히 양이 상당한 물풀이나 다른 재료들, 장식들이 상자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학생과 선생 간의 돈거래는 안 될 말씀. 나는 너네가 이 품목을 당근에서 찾아서 거래 요청을 하면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정말로 채팅이 왔다. 내일 11시에 ㅇㅇㅇ 터널 앞에서 거래가 가능하냐는 질문이었는데 토요일이고 일정이 있어서 어려웠다. 그래서 죄송하지만 월요일 5시 (퇴근 무렵)은 어려우실까 여쭤 보았더니 갑자기 ㅇㅇ이 어머니시라면서 월요일 하교 길에 주시면 어떠시겠냐고. 감사의 인사와 함께 그냥 주고 싶으나 둘째의 요청으로 판매대행이라 그냥 못 드려 죄송하다 했더니 ㅇㅇ이 어머니도 당연하다시며 아이가 용돈 모아서 사는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바로 이어 ㅅㅁ이에게도 챗이 왔으나 이미 판매 완료였다. 


6교시 끝나고 집에 가는 길. ㅇㅇ이가 슬쩍 온다. "선생니임~!" 아. 오늘 내내 잊고 있다가 이제 생각이 났다. ㅇㅇ이 계속 물어보고 싶어서 얼마나 입이 간질간질했을까. ㅇㅇ이 단짝 ㄱㅂ이가 "저도 사고 싶어서 당근 검색하는데 찾을 수가 없었어요."라고 살짝 서운함이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히히 내가 샀지롱~!" ㅇㅇ이는 ㄱㅂ이에게 (아마도) 파츠를 나누어 줄 것이다. ㄱㅂ이가 정말 사고 싶은 파츠가 몇 개 있었기 때문이다. 싱글싱글하는 ㅇㅇ이 곁으로 ㅅㅁ이가 오더니 "아악. 한 발 늦었어. 분하다!"라고 외치며 지나간다. ㅇㅇ이 어깨가 조금 더 올라간다. 나는 박스에 구매 서비스로 제티와 엠보싱 스티커를 몇 개 더 넣어주었다. 입꼬리가 더더욱 올라가는 아이를 보니 나도 웃음이 쿡쿡 나왔다. 그렇게 ㅇㅇ는 두 손으로 박스를 소중하게 잡고 교실을 나섰다. ㅇㅇ이 웃음처럼 햇살이 한가득 교실을 채운 화창한 월요일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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