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하면 커버 사진 같은 느낌이다 이상하게도!!
일 년 열두 달 매달마다 최소한 하루의 공휴일은 있는 것 같은데 11월은 없다. 11월은 날씨에 상관없이 흐린 것 같은 이미지가 있는데, 어쩌면 수능시험이 있는 달이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12월은 아예 춥고 크리스마스에 대한 설렘과 눈에 대한 기대가 있는데 11월은 가을과 겨울 사이 애매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추석과 한글날, 개천절까지 있는 9월과 10월을 지나고 나서 12월이 오기까지 그 긴 간극을 쉼 없이 버티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리 셋째네 학교는 11월에 개교기념일이 있어서 하루 쉬는데, 정말로 너무너무 부러웠다. 11월에 개교기념일이라니!!!! 집돌이인 셋째는 하루종일 집에서 뒹굴거리면서 밀린 숙제도 하고 신나는 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나머지 다섯 명은 모두 부러운 눈으로 뒹굴거리는 그 아이를 보면서 아침 일찍 출근과 등교를 해야 했다. (거기에 중학생 두 딸은 수능 시험과 그 다음날 모두 학교를 안 가며 자유를 만끽했다. 초등학교를 가는 나와 막둥이만 쉼 없이 달릴 뿐...)
나는 오늘 조퇴를 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알았다. 이것은 언제 하느냐의 문제이다. 나는 오늘 풀근무를 할 수 없는 상태이다. 이대로 교감선생님께 전화를 드려서 3교시 정도에 출근한다고 말씀드릴지, 아니면 하루 병가를 쓸지, 아니면 조퇴를 해야 할지. 보통은 늦어도 7시 40분에는 일어나는데 (학교가 가깝다) 오늘은 8시 1분 전까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간제 교사도, 시간 강사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다. 너무도 좋으신 우리 교장선생님마저 "조퇴는 얼마든지 해 드릴 테니 부디 수업만 조금이라도 해 주세요."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셨다. 그동안 우리 학교로 나오시던 십여분 정도의 시간강사님들이 현재 모두 기간제로 우리 학교에서 근무하셔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시니 말 다했다. 올 가을 유난히 아픈 선생님들이 많았다. 꾀병이 아니라 진짜로 심각하게 아프신 분들이 많았다. 원래 있던 지병이 재발하신 분들도 계셨고, 몸살인데 너무도 심해서 목소리가 아예 나오지 않을 정도이거나 독감이나 귀에 있던 염증 재발 같은 이런저런 것들이 많았다. 학년에서도 교과시간이면 번갈아 가면서 다른 반 수업을 들어가야 헸다. 이 상황에서 일단 열은 안 나니까 출근하기로 한다. 다행히 2교시에 교과가 예정되어 있다. 교과실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다. 나머지 수업을 어찌어찌 이어가면서 결국 병조퇴를 올렸다. 6교시 끝나고 교실 정리 후 3시경 학교를 나섰다. 눈이 부시게 환한 오후 햇살 속에서 학교를 나가려니 이상하다.
예전부터 아파도 일단 집 밖으로 나가던 버릇이 있었다. 집에만 누워 있으면 더 아픈 것 같아서 아파도 나갔는데, 확실히 아이들과 같이 어쩔 수 없이 움직이다 보니 조금 나은 것도 같아서 고민했다. 이왕 조퇴를 썼는데 피아노 연습이라도 하고 올까? 5분 정도 고민을 했으나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파서 조퇴를 신청했고, 피아노 연습을 하면 그 순간은 행복하지만 마치는 순간 엄청난 피로가 더 겹쳐서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이러지 말자. 고민 없이 바로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누우려고 보니까 무려 3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야구부 훈련이 없는 셋째, 학원을 끊은 중3 큰 딸, 오늘 마침 눈높이 영어 수업이 취소되어 형과 놀고 있는 막둥이까지. 그리고 곧이어 둘째가 온다고 한다. 이 말은... 이미 집이 상당히 어질러져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의 고질병이 있으니.... 어질러진 집에서는 쉬질 못한다. 누워도 눕는 게 아니고 자도 자는 게 아니다. 그런데 진짜 아픈데.....? 그러니 청소를 한다. 화장실에 락스를 뿌리고 싹싹 다 청소를 했다. 물기가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청소기를 돌리고 어질러진 것들을 또 치웠다. 다 치우고 나니 5시인데 내가 이러려고 조퇴를 했나 약간 자괴감이 들었다. 밥도 해야 하는데 이제는 진짜 한계다.
그냥 누웠다. 꿈을 꿨는데 너무 쪽팔리다. 친구가 아파트 같은 단지에 살았다는 설정인데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한다. 가기 전에 봐야지. 친구네 집에 가는데 버리는 물건들이 완전 한가득. 조카딸이 쓰면 좋을 소꿉놀이, 주방놀이 같은 거대 장난감 세트부터 예쁜 옷들과 명품 가방까지 집 앞에 버린다고 막 놓여 있어서 구경하면서 집어 들다 보니 팔이 너무 아파서 옮길 수가 없었다. 우리 동 앞으로 와서 차를 가져와서 본격적으로 옮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꿈속에서도 '이거 내가 뭐 하는 짓이지....'라고 생각하다가 진짜로 꿈도 없는 깊은 잠 속에 빠져든 것 같다. 막둥이가 깨워서 보니 6시 20분... 밥 해야 하는데.... 신랑이 냉동 너겟과 떡갈비를 에어프라이어에 돌려서 대충 아이들과 먹고 나갔다. 다이어트하면서 라면을 절대 먹은 적 없는데 내가 먹을 너겟과 떡갈비는 없길래 (슬픔) 계란 두 개 넣고 라면을 끓여서 아들들과 나눠 먹었다. 그리고 몇 주 동안 냉동실에 내 몫으로 남아 있던 월드콘도 하나 먹고 뜨거운 커피도 마셨는데 여전히 몸은 춥고 머리는 아프다. 1월 첫 주 우리 반 아이들 졸업까지 아직 7주가 남아 있다. 절대 아프면 안 되고 긴장을 놓아서도 안 된다. 보일러를 좀 더 올리고 아파도 운동은 꼭 해야겠다. 살려고 운동한다는 말이 너무나 이해되는 나이 마흔 중반. 운동하고 나서 아파서 다시 이틀을 쉬더라도 운동하고 일찍 자기.
어차피 11월에 하루 쉰다는 것은 불가능한 꿈이니 스스로 관리를 잘 헤서 회색빛 11월이 아닌 반짝임이 있는 11월로 만들어 보자. 잘 자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렇다고 수능감독을 하고 싶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