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혼자 학교에서

근무하는 날

by 여울

토요근무하는 날이다. 어떤 학교는 토요일 근무를 없앴지만 우리 학교는 아직 남아있다. 토요근무를 하지 않으면 방학 중 근무를 해야 해서 고민 끝에 나는 토요근무를 신청했다. 어차피 바쁠 학기 중이고 매번 퇴근 시간을 넘기기 일쑤이니 그냥 나와서 일하면 되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어제 매우 후회했다.




학년말이 다가오니 주말만 되면 아프다. 어제도 너무 아파서 조퇴를 하고 싶었지만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와 다른 일을 하고 나니 또 퇴근 시간을 넘기고 말았다. 한참 보고서를 쓰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어머니~ 오늘 청소하러 오시나요?" 헉. 그랬다. 셋째가 다니는 야구부실 청소를 하러 가는 날이었던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라 부담은 없지만 정말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만약 어제 가지 않으면 다른 분과 연락해서 바꾸어야 하는데 그날하나 다른 날 하나 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라서 그냥 갔다. 아픈 날은 커피를 안 마시려고 하지만 커피도 한 잔 마시고 비타민도 한 알 먹었다. 청소가 있는 줄 모르고 차도 안 가져와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로 닦고, 세탁기를 돌리고, 쓰레기통마다 비우고, 화장실 청소를 우리 집 화장실보다 더 깨끗하게 하고 쓰레기장까지 두어 번 오가며 재활용쓰레기까지 비우고, 마지막으로 입구를 쓸고 나면 끝난다. 이왕 온 김에 아들이랑 같이 집에 가야지.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배 고프면 오리고기를 구워 먹으라고 했다.


7시 반. 이제 집에 간다. 둘이서 그냥 집까지 걸어가자고 했다. 차비도 아낄 겸. 붕어빵이 먹고 싶다고 했지만 붕어빵 아저씨는 이미 끝났다고 하셨고 어묵을 먹을까 했는데 가격을 보고 돌아섰다. 하나에 1500원???? 집까지 걸어오면 20분 정도 걸린다. 둘이서 어둑한 길을 열심히 걸었다. 손도 잡았다가 놓았다가. 아이와 함께 걷는 길은 말 없이 걸어도 좋았다. 집에 오니 엄마 기다린다고 안 먹었단다. (속으로 그냥 먼저 먹지 그랬니...라고 생각하고 말로 꺼내진 않았다.) 해서 열심히 한 팩 구웠건만 맛이 이상하다. 분명 유통기한 이내인데 상했나 보다. 다행히 또 한 팩 사놓은 것이 있어서 다시 구웠더니 괜찮았다.


나는 저녁 먹을 힘도 없어서 그냥 누우려다 다시 일어났다. 이렇게 집이 어질러진 상태로는 맘 편히 못 누운다. 자잘하게 어질러진 것을 줍고 청소기 돌리고 물티슈로 닦고 대강 정리를 하고 누웠다. 9시가 넘었다..... 지금 자면 안 되는데. 그냥 눈만 20분 감았다가 일어났다. 보통은 밤에 산책을 가거나 피아노 연습을 가지만 그냥 집에 있자. 자전거를 좀 타고 발레를 조금 하고 씻고 누우니까 다시 1시가 넘었다. 이게 아닌데.... 그냥 잘 것을. 토요일 아침인데 7시 넘어서 일어나야 하니 힘들다. 9시까지 훈련 가야 하는 아들을 깨우고 나도 일어났다.



아아.... 진짜 가기 싫은데.... 하며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교무실. 불을 켜고 학교를 돌아보고 정리를 한다. 조금만 덜 추우면 좋을 것 같다. 오늘은 영하 5도. 교실에 올라가 일할 거리를 잔뜩 가지고 왔는데 막상 손에 안 잡힌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밥 먹고 바로 설거지한다는데. 즉 미루지 않고 바로바로 한다는데. 나는 열심히는 하지만 준비시간이 오래 걸린다. 마음의 준비도 오래 한다. 일단 가방 정리를 했다. 필요 없는 영수증이 몇 개 나왔고 카페의 스탬프 카드도 몇 개 나왔는데 그냥 버렸다.


11월. 정리를 해야 하는 시간. 마무리할 준비를 하는 시간. 교실을 어떻게 비울지 생각한다. 그리고 그동안 진행해 왔던 프로젝트들도 어떻게 마무리할지 생각한다. 아침에 나오는 것은 싫었지만 혼자 있으니 좋았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교무실. 아마도 나는 고요한 가운데 나를 바라볼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유난히 바빴던 시간 속에서 이렇게 혼자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귀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서 올 초의 다짐이 어떻게 흘러왔는지도 조금씩 생각해 볼 준비를 한다. 실수도 많았고 실패도 많았고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과제도, 또 새롭게 부여된 과제도 많았다. 그러나 그 무게들에 압도되지 않는다. 하나씩 하나씩,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간다. 놓쳐버리고 지나가 버린 것에 미련은 두지 않되 냉철한 시선으로 살펴서 반복되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한다. 이른 아침 단잠에서 깨어나 따뜻한 이불속을 나오기는 정말 싫었지만 토요근무 신청하길 잘했다. 으으.... 이제 일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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