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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Dec 18. 2023

12월, 어느 6학년 담임교사의 월요일

그래도 함께 뛰니 덜 외로운 것인지 그래서 더 서글픈 것인지는...

"이제 14일 남았어요." 

"네???????"

몰랐다. D데이를 옆 반 선생님이 알려주셨다. 나는 마음이 더 급해졌다. 브런치 작가 심횬 선생님의 말씀처럼, 12월 1일부터 누군가 17일을 통째로 잘라낸 것 같다. 학년을 마무리할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아이들 졸업일까지 불과 14일만 남았다니. 나는 과연 미션 완료를 할 수 있을까 싶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 말고 일이 많으세요?"라는 질문을 가끔 듣는다. 나는 6학년 담임이니 아이들이 하교하면 대체로 2시 30분. 이제부터 시작이다.


월요일은 야구하는 셋째를 학교 근처까지 태워다 주는 날이다. 차로 돌아가는 시간은 고작 10분 정도 더 걸리지만 학교에 도착하자면 아무래도 약간 늦을 수밖에 없다. 8시 35분. 급한 마음으로 서둘러 4층 교실까지 타다닥 올라간다. 아이들은 이 추운 날 히터도 안 틀어 놓았다. 에어컨은 잘만 켜면서 히터는 안 틀어도 괜찮단다. 서둘러 온도를 올리고 컴퓨터 부팅을 시작한다. 그 짧은 아침 순간 메신저에는 안 읽은 메시지들이 쌓여있다. 결석과 조퇴 등등의 사유로 미처 학급문집 파일을 내지 못한 아이들의 글을 다시 받아서 마지막 편집을 해야 한다. 오전 중에 업로드해달라고 했는데 가능할까? 일단 1교시를 시작한다.


2교시는 황금 같은 교과 시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다듬다 보니 40분이 그냥 사라졌다. 3교시는 운동장 체육이 들은 날. 아이들은 영하 10도의 날씨에 밖으로 나가잔다. 영하 9도라서 안 된다 하니 영하 7.5도라서 괜찮다고. 투표를 했는데 접전 끝에 1표 차이로 우리는 운동장으로 나갔다. 운동장 시간표가 정해져 있는터라 우리 반은 월요일만 가능하고 앞으로 월요일은 모두 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하의 날씨에 누가 운동장에서 체육을 굳이 할까 싶었다만.... 8반 선생님은 축구를 하신다고. 매우 이해가 되었다.) 4교시에 ㅈㅇ이 안색이 좋지 않다. 많이 아픈데 타이레놀을 먹고 학교에 왔단다. 보건실에 가보라는데 괜찮다던 아이는 결국 1시간 있다 보건실에 다녀왔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니 "타이레놀 먹었다고 하지 않나요?"라고 하신다. 워킹맘이시니 이해는 가지만 아이는 정말로 안색이 창백하니 아파 보였다.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는 보건 선생님의 소견을 덧붙이고 허락을 받아 조퇴를 시켰다.  6교시도 교과시간이다. 과학 시간이라 아이들을 보내고 이제 인쇄회사 홈페이지에 파일을 업로드한다. 하드커버랑 가격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아서 제작사양을 다시 변경하고 부수도 한 부 더 늘렸다. 이제 행정실로 가서 결제를 부탁드린다. 교실로 가다가 빠트린 또 다른 볼 일이 생각나 다시 행정실로 가서 문서를 받아온다.


다면평가 위원회가 2시 40분에 있다는 메신저를 본 것 같아 또다시 1층 교무실로 부리나케 내려갔는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오늘은 생활규정재개정 회의가 잡혀 있다고 한다. 교실로 다시 와서 보니 다면평가위원회는 오늘이 아니라 목요일이었다. 아 머쓱하다. 

- 이제 방학중복무계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이번 방학은 길기도 하거니와 중간중간에 출장과 연수가 잡혀 있어서 깔끔하게 끝낼 수가 없다. 방학 날짜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세면서 빼먹은 날짜는 없는지 확인한다. 

- 대강 정리를 해 놓고 모레 갈 출장을 상신하고 교학공 협의회비를 계산해서 다시 품의를 올린다. 

- 체험학습과 결석이 많은 친구가 있는데 체험학습을 며칠 더 쓸 수 있는지 문의가 왔다. 세어 봐야 하기 때문에 일단 확인해 보겠다고 답변을 드렸다. 

- 금요일 아이들과 케이크 만들기 활동을 하기로 했는데 그에 관한 문의도 두 건이나 왔다.

- 학부모님의 상담 전화도 있었다. 

- 그 사이 출판업체에서 확인하는 전화가 와서 다시 의논하고 확인해서 남긴다. 

- 꿈실 예산 정리도 내 담당이라서 일부 예산이 남은 선생님들께 안내를 가장한 독촉 메시지를 날리고 내 것도 다시 계산하여 정리한다. 

- 졸업선물로 도장을 만들어 주고 싶은데 가능할지 이리저리 견적을 내 보다가 포기했다. 슬프다. 

- 동학년 회의가 있어서 부장님 반으로 다다다 달려간다. 졸업장 케이스를 비교해 보고 선택하고 성적 처리는 어떻게 하는지, 졸업 선물은 어떻게 하는지 다시 확인한다. 

- 이야기하는 사이 4시가 되어 전체 종례 및 회의에 참석하러 후관 1층으로 또 간다. 내년도 교육과정에 대하여 마지막 점검 차 회의를 하고 의견을 수렴한다. 

- 교실로 돌아오니 4시 40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성적처리 시작이다. 


위의 이 일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6교시가 교과 시간이었기 때문에 다른 날보다 조금 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래봐야 30분이지만 너무나 소중한 것. 오늘 성적 기초 작업을 끝내지 않으면 목요일 날 종합일람표를 제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늘은 감사하게도 아무도 싸우지 않아서 중재할 문제가 없었다. 휴우.


창체활동 자료를 늘 먼저 했더니 일을 두 번해야 해서 이번에는 부장님이 보내주실 때까지 기다렸다. 전체 시간표를 수정하다 말았는데 1월 이후로 계속 시간표가 잡혀 있어 8반 선생님한테 전화해서 물어본다. 4세대로 바뀌면서 오류가 난 것 같다고. 8주가량의 시간표니까 200번가량 클릭하면서 하나하나 삭제를 해 주어야 시수를 맞출 수 있다. 올 겨울 유독 아픈 아이들이 많아서 결석과 지각, 조퇴로 가득한 12월 출결사항도 일단 입력한다. 동아리활동 누가기록이 이상하다고 7반 선생님이 알려주셨다. 수채화 동아리 부서 명이 중복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리저리 찾아보니 세부사항란에 부서명을 적지 않아도 되는데 적어두었다. 삭제하고 저장한다. 동아리 활동, 진로활동, 봉사활동, 자율활동 순으로 날짜와 내용을 입력한다. 봉사활동은 자동 계산이 안 되기 때문에 반드시 직접 확인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오류가 있어 다시 수정했다. 


나는 분명히 조금만 일하고 5시 50분에는 교실을 나서려고 했는데, 고작 출결과 시간표, 창체만 확인했을 뿐인데. 6시 40분이 넘은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교실을 나선다. 나가기 전 깜빡할 뻔했던 내일 시간표를 적어 놓는다. 잠깐 고민하다 사회 과목 대신 수학을 넣었다. 사회 자료는 내가 직접 만들고 있는데 하나를 만들 때 한 시간 이상 걸리는 피피티에 쏟을 시간은 물론이고 정신 역시 하나도 없어서 일단 미루었다. 


어두운 운동장에는 내 차만 덩그러니 남아있고 당직실을 제외한 학교 전체가 깜깜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초과근무 상신하는 건데 '왜 나는 매일 공짜로 일하는 거지.'라고 후회하면서 잘 보이지도 않는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왔다. 정문으로 향하는데 어머나. 정문이 닫혀있다. 큰일이야. 어쩌면 좋지. 우리 학교 정문으로 가는 길은 급경사 내리막 길이라서 차를 세우고 문을 열어야 하는 생각에 난감하다. 그 순간 갑자기 등장한 당직기사님이 문을 열어주셨다. 이제는 서로 얼굴도 너무 잘 아는 당직 기사님. 토요일에 나를 보고 "또 6학년 9반이야?"라고 하신...... "다음 주 토요일은 안 나올 거예요."라고 일단 호기롭게 외쳤는데 제발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집에 오니 출판업체에서 본문 확인 부탁한다는 메시지가 왔다. 컨펌이 지연되면 모든 일정이 지연되니 가능하면 빨리 해 달라고. 


오늘은 커피를 받으러 교무실에 갈 시간도 없어서 화장실도 종일 2번 겨우 갔다. 갈 시간이 없으니 물도 적게 마셨더니 참을만했다. 굳이 참았던 건 화장실 둘 중 하나는 다른 건물에 있고 하나는 8개 반을 지나가야 나오는 건물 끝에 있기 때문이다. 왔다갔다 하는 시간조차 아까운 것을 어쩌랴. 그래도 어찌어찌 하루가 잘 갔다. 내일도 부디 잘 해낼 수 있기를. 내일은 내일의 업무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하루 종일 이리저리 뛰어다니셨을 학년말을 맞이하시는 모든 선생님들, 그리고 아이들 졸업 준비에 한참 바쁘신 6학년 담임선생님들을 응원합니다. 오늘도 애쓰셨어요.



(심횬 선생님의 12월, 교사의 하루'에서 소재와 제목 일부를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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