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는 아들이었다.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큰 아이가 딸일 때, 시아버님은 둘째는 아들 낳으면 된다고 하셨고, 둘째도 딸이자 셋째는 아들 낳으면 된다고 하셨고, 셋째가 아들이자 이제 그만 낳으라고 하셨다. 이 모든 과정이 나는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어찌 되었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사실이었다. 셋째는 아들이지만 제일 예뻤고 제일 영특했다. 위의 두 누나들과 놀이도 대화도 같이 하는 수준이 되어서 셋이서 잘 놀아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가끔은 누나들을 뛰어넘을 정도의 총명함을 보여 주었다. 운동도 잘해서 하는 운동마다 두각을 드러냈고 착하고 잘 생겼다. (네... 엄친아 같은 아들이 저도 하나 있습니다....) 이런 셋째에게 주변 사람들은 각각 거는 기대가 다 있었다. 그리고 나는 넷째를 임신했고 또 아들을 낳았다.
넷째는 위의 세 아이들과 모든 면에서 달랐다. 그냥 보통 남자아이 같았다. 말도 느리고 사회성도 좀 부족해 보이고 자기중심적이고 그냥 다 달랐다. 똑똑한 형이랑 더 대비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누나들은 어릴 때는 귀여워하던 막내 동생을 좀 성가셔 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잘 놀아주던 형은 야구를 시작하면서 집에 늦게 오고 자기 일이 바빠지면서 동생과 사이가 조금씩 벌어졌다. 막내는 외로웠다. 엄마가 놀아주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었서 혼자서 도미노나 카프라, 온갖 블록으로 정교한 진을 만들어 놓고 혼자서 전쟁놀이를 많이 했다.
이런 막내에게 나는 열심히 책을 읽어 주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어 가는데 도통 한글 문자 인지가 되지 않는 것이다. 둘째도 비슷하게 씨름을 한 경험이 있어서 나는 그다지 걱정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학교에 가면 다 되게 되어 있고, 거기에 나라가 책임지고 한글을 가르쳐 주겠다던 약속이 포스터에 공식적으로 인쇄되어 학교와 주민센터 곳곳에 붙어 있었다. 자기 이름만 가르쳐서 보냈어도 괜찮았다던 선배 선생님들의 말도 한몫 거든 것도 사실이다. 책을 항상 들여다보니 괜찮겠지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림을 열심히 본 것 같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막둥이가 입학한 학교는 이 동네에서 그래도 학구열이 높기로 유명한 곳이었고 거의 모든 아이들은 선행을 어느 정도 해 오는 아이들이었다. 이 가운데 혼자서 한글이 되지 않아 막둥이는 동동 떠 다녔다. 나라고 7살 시절에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둘째와 함께 효과를 보았던 기적의 한글 학습도 막둥이에게는 효과가 없었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라는 말을 일 년 내내 실감했다.
그래서 이제 학교에 들어갔으니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성과는 딱히 보이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원래는 기본으로 설치하도록 되어 있는 한글 익히는 수업을 별도로 운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과밀학급이라 공간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는데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도 공간은 없지만 급식실 한편에 자리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변명처럼 보였다. 정말 죄송하지만 담임 선생님께 한 번 더 문의드렸다. 나는 정말 교무실에 문의하고 싶었다. "학교에 공간이 없어서 못한다고 하시던데 정말일까요?"라고 말이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만약 나라면 좋든 싫든 간에 내가 모르는 일로 교무실에서 전화를 받기 싫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방과 후에 따로 데리고 가르칠 예정이라고 하셨다. 우리 막둥이 일로 나는 진상 학부모가 되었다고 여겨졌다. 원래는 학교에서 별도로 교사를 채용해서 가르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문의를 했을 뿐이다. 그런데 결과는 담임 선생님에게 짐을 하나 넘겨버린 것이 되어 버렸다. 공교육 교사인 나는 공교육에 의지하고 싶었으나 가끔은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모 러닝 센터에 일주일에 세 번씩 보내면서 한글을 막둥이 머릿속에 쑤셔 넣었다. 한 학기가 지나자 겨우겨우 한글의 기본은 익힌 것처럼 보였으나 여전히 아이는 부진아처럼 보였다. 경계성 지능일까 의심이 들었다. 검사를 의뢰하고 검사를 받고 결과를 받기까지는 모두 4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검사를 의뢰할 때보다 검사를 받을 때 좀 나아졌고 검사 결과를 받을 때는 훨씬 좋아졌다. 상담 선생님은 막내가 조심스럽고 꼼꼼한 성격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시간이 걸린다고. 공간 감각 능력은 매우 우수하고 언어 능력은 좀 더 도와줄 필요가 있다고 하셨다.
나는 엄마표 영어로 유명한 블로거였지만 막둥이에게는 영어를 가르치지 않기로 했다. 한글이 급한 아이에게 영어를 들이미는 일은 할 수 없었다. 이 아이가 2년 가까이한 것은 오로지 한글과 독서뿐이었다. 주 3회 하던 한글은 이제 주 2회에 독서 수업 1회로, 그리고 나중에는 한글 1회, 독서 1회로 바뀌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학교 시험 형 국어 시험은 50점 대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또 기가 막혔다. 그렇다고 학습지 스쿨 국어를 또 시키고 싶진 않았다. 아이와 문제집을 한 번 같이 풀어보았다. 잘 이해는 하는데 문제 유형에 익숙하지 않아서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하나하나 다 짚어 주고 도와주어야 하는구나.
그렇게 막둥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나는 학습지 영어를 시켰다.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면서 스트레스를 서로 주고받고 싶지 않았다. 영어 선생님도 전화를 하셔서 주 2회로 늘려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러시라고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아이는 파닉스의 음가는 익힌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영어가 늘진 않는 것 같았다. 외국인과 대화는 되지만 읽고 쓰는 것이 안 되는 것이다. 한글을 익히는데도 1년 가까이 걸렸으니 나는 영어 역시 그러리가 생각했다. 둘째도 알파벳과 영어 단어를 익히는데 정말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것도 글 한 편이 따로 나온다.) 이제 엄마표 영어는 포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막둥이가 엄마랑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슬슬 산적한 엄마표 영어 교재들을 모두 정리하려던 참이었다. 브릭스리딩 30이면 될까 싶었는데 아이는 제대로 읽지 못했다.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조용히 더 하향조정했을 뿐이다. JFR 책들과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마지막으로 하나 가지고 있던 워크북을 꺼냈다. 큰 아이가 유치원 때 공부했던 책이다. 이것도 버려야지 싶었는데 딱 하나 남은 이 교재가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그렇게 하루에 한 권, 사이트 워드를 익히고 다른 어휘들의 소리를 익힌다. f 발음과 th발음, r 발음을 잘 못했다. 가르쳐 주었다. 윗니를 아랫입술 위에 올리고 부드럽게 소리 내는 연습을 했다. 아이는 내 입모양을 뚫어져라 보면서 연습을 했다. 이제 football player를 football flayer로 할 때도 있지만 가르쳐 준 소리와 입술모양을 기를 써서 기억하고 열심히 소리 내어 읽는다. 잠시 멈칫거릴 때 알려주려고 하면 "엄마 말하지 마요!"라고 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낸다.
초등학교 4학년을 앞둔 초3의 겨울방학에 임해서야 기본 사이트 워드와 발음을 제대로 하고 있다니 어찌 보면 기가 찰 노릇이지만 나는 그저 감사하다. 아이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또다시 이 참에 엄마표 영어 프로젝트를 다른 분들과 다시 진행해 볼까? 하는 마음도 슬며시 올라왔지만 그냥 밀어 넣었다. 나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보여주기식 글을 쓰다가 서로 또 지칠까 싶었다. 2주 정도 진행했는데 아직까지는 잘 따라오고 있어서 서로 좋은 상태이다. 절대 무리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했다. 가늘고 길게 가는 것이 최고라는 신념으로.
오늘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막둥이가 친 피아노 영상을 보내주셨다. 솔직히 말하면 미안하지만... 내가 1학년 때 친 것보다 못 친다. 그런데도 나는 감격스러웠다. 잘 친다고 진심에서 우러나는 칭찬을 해 주었다. 이 느릿느릿 가는 아이가 저 정도로 피아노를 치는데 꼭 3년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나는 이제 안다. 눈으로 악보를 보고 두뇌로 정보를 보내어 다시 열 손가락을 움직이고 소리를 들으며 확인하는 과정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야 하는지를. 그래서 그냥 감사하기로 했다. 나의 속도에 맞추려는 마음은 진즉에 버렸다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쑥불쑥 솟아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천천히 가도 되는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감사하고 긴 시간 동안 그래도 어떻게든 학교에 적응하려고 노력한 아이가 기특하고 이 아이를 데리고 수업을 진행해 주신 담임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린다. 가끔씩 우리 집 막둥이 같이 손 많이 가는 아이가 내 교실에 있다면 하는 상상을 해 보면 음...... 아무튼 그렇다. 옷도 입으면 하나만 며칠씩 입으려고 하고 뭔가를 해야 하는데 자꾸 잊어버려서 몇 번씩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한다. 눈치가 없기도 하고 부산하기도 하다. 그런 아이가 사회에 적응하려고 기를 쓰는 모습을 보고 있다. 이만큼 자라나느라 참 고생 많았다. 막둥아.
영어로 느린 아이를 늦게 피는 꽃이란 뜻으로 late bloomer라고 한다. 꽃이 안 피면 어떠리. 그냥 천천히 가주기만 해도 고맙다. 그걸로 충분하다. 무엇을 하든 욕심이 많은 내가 아이들 일에는 욕심을 많이많이 내려 놓는 법을 배우며 산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