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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Jan 03. 2024

졸업식 하루 전 날

어제도 역시 초과근무 상신 없는 초과근무를 하고 늦게 퇴근했다. 1월 졸업은 마지막 순간까지 숨 가쁘다. 며칠에 걸쳐서 아이들 사물함과 서랍의 짐을 비워냈다. 헌 교과서를 다 버리고 가면 좋겠는데 이고 지고 가도록 보내야 하니 마음이 좀 안 좋다. 교과서 수거 트럭이 아이들 졸업식 다음 날 온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가져가야만 했다. 


1교시에는 마저 정리를 하고 책상 위 낙서를 지우고 서랍 안과 사물함 안을 물티슈로 깨끗하게 닦았다. 내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차근차근 정리를 했다. 학급 문집을 나눠주고 12월 이야기를 붙였다. 졸업식 전에 주기 위해서 문집 편집은 11월까지만 해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 2교시와 3교시에는 졸업식 예행연습을 했다. 큰 무대 위에 올라서서 졸업장을 받아야 하니 아이들은 모두 초긴장 모드이다. 오늘 연습했어도 내일은 또 내일대로 떨릴 것이다. 4교시에는 롤링페이퍼를 썼다. 친구들에게 좋은 말만 써 주기! '넌 이것만 고치면 정말 좋을 것 같아' 같은 말은 절대 쓰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5교시에는.... 공부를 했다. 사회와 국어가 아주 애매하게 반 차시 분량씩 남아 있었다. 20분씩 사회와 국어를 공부하니 교과서도 모두 끝! 앨범과 기념품도 미리 나눠주었다.


점심을 먹고 교실에 와서 통지표를 배부했다. 이제 정말 줄 것은 거의 다 줬다. 한 번 더 청소를 하고 학급 화폐 남은 것을 정산했다. 학예발표회 때 쓴 드럼을 옮겨가려고 끙끙거리는 ㅎㅅ이를 도와주었다. 드럼을 들어주려고 하자 "이 쇼핑백을 들어주세요!"라면서 내가 받아 들자 "사실은 그게 더 무거워요. 히히."라고 웃는다. 


아이들을 보내고 교실을 비운다. 이제는 필요 없어진 진단평가지는 이름과 점수 부분을 마킹 처리해서 안 보이게 한 후 잘라내고, 자잘한 것들은 버리고 정리해서 담고, 학습준비물실로 보낼 것은 따로 바구니에 담았다. 교실을 쓸고 있는데 ㅈㅇ이 어머니가 오셨다. ㅈㅇ이가 요새 사춘기가 오면서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이 신경 쓰이는지 등교를 하지 않고 있었다. 졸업식도 올까 말까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나는 꼭 오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힘든 가운데서도 이만큼 노력해서 6년의 과정을 마쳤으니 마무리를 잘하면 좋겠다고. 남들과 다른 모습이 스트레스가 아니라 오히려 자부심을 가지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게 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자식의 아픔은 부모에게는 정말 말로 다 못하는 아픔이다. 대신 아파줄 수도 없다.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지 라는 생각이 무수히 든다. 각자가 처한 아픔을 어찌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조금 늦게 왔어도 될 도전을 ㅈㅇ이는 어린 나이에 너무 빨리 겪으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어머니가 물건을 챙겨 가신 후 나는 아이와 통화를 했다. 선생님은 네가 정말 보고 싶다고. 그래서 마지막 날이니까 얼굴을 꼭 보여 달라고, 함께 축하하자고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알겠다고 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마음이 바뀔지는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전화를 한 번이라도 하고 안 하고는 다를 테니까. 정말 진심을 다해서 이야기했다. 


어제까지 너무 바빠서 일기장에 글을 못 써주었다. 교실 정리가 조금은 끝나서 일기장에 편지를 써 주었다. 졸업식이라서 아쉽다는 이야기, 6학년이 그리울 거라는 이야기, 그리고 새해에는 이런저런 것들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 등등... 아이들의 마지막 글을 보면서 나도 마지막 편지를 써 주었다. 6학년 1년 더 다니고 싶다는 ㅈㅎ이의 일기를 보니 최고의 상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보니 또 다른 바구니 안에 아이들 작품이 숨어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계속 구석에서 숨어 있다 나오는 건지.... 비어 가는 교실을 보면서 아이들이 써 준 편지를 읽는다. 아이들은 오늘 내게 다 같이 커다란 도화지에 쓴 편지를 건네주었다.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데 ㅇㅂ이가 "선생님! 우셔야 하죠!"라고 말해서 울면서 웃어버렸다. 이제 정말로 끝이 보인다. 감사한 졸업식 하루 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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