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울 Jan 04. 2024

졸업식 날, 아이들이 준 선물

"선생님! 내일 몇 시에 오세요?"

"글세... 8시 40분 정도?"


원래는 조금 더 일찍 출근하지만 내일은 졸업식 날. 아이들은 원칙상 9시 50분까지 등교하게 되어 있어서 나도 조금은 여유롭게 와도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똑같은 질문을 3명째 하는 것을 보니 감이 온다. 요 녀석들. 너네 뭔가 하려고 하는구나? 




시간은 석 달 전으로 거슬러 간다. "선생님 오늘 생일이세요?" ㅅㅇ의 톡이 날아왔다. "글세?"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 생일은 일요일이었다.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우연히도 1반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가시는 것을 보았다. 깜깜한 교실 문을 열고 1반 선생님이 들어가시는 순간 "와아~~~~~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하는 1반 아이들의 함성과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한 층 더 올라가서 나오는 우리 반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내가 뭘 기대했니. ㅋㅋㅋㅋ' 우리 반은 이런 깜짝 이벤트를 참 못한다. 


스승의 날 아침에도 다른 반은 모두 풍선도 달아놓고 칠판에도 잔뜩 뭔가를 써 놓았는데 우리 반만 깨끗했다. 나중에사 자기들끼리 "야, 어떻게 해!" "우리 반만 아무것도 안 했어."라고 속삭이며 당황해하는 모습에 나는 혼자 속으로 쿡쿡 웃었다. 




이제 최소한 마지막 날이라도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알겠는데 이벤트를 안 해 본 우리반답게 너무 티가 난다. "야. 선생님 너무 빨리 오시는데? (20분으로 들었단다.)" "그럼 그냥 하지 말까?" "아니야. 그래도 해야지." 소곤거리는 소리 다 들린다. 속아주고 싶은데 자신이 없다. 아침에 우리 학년 단톡방이 띠롱띠롱 울린다. "8시인데 벌써 온 아이들이 있어요." 8반 선생님이시다. 교실문을 열려고 하니 건드리지도 않은 문의 자물쇠가 달랑달랑 움직이고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온풍기의 따듯한 바람이 밀려온다. 아아..... 이쯤 되면 속아주기 힘든데, 어쩌지? 문을 열고 들어서니까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쪼그리고 앉아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일어나면서 꽃다발을 들고 다가온다. 


비록 아이들이 바라던 것처럼 깜짝 놀라지는 않았지만 까르르 웃는 그 웃음에 나도 같이 아하하 웃었다. 마지막 날이니까 선생님한테 선물 줘도 된다면서 꽃다발을 두 개나 가져왔다. 선생님 오시는 줄 알고 망보느라 힘들었고 쪼그리고 앉아 있느라 힘들었다면서 조잘조잘 이야기를 풀어낸다. 졸업식은 10시 반이라 아직 2시간이나 남아서 한참 있어야 할 것 같았는데,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ㅈㅇ이가 와서 너무 좋았다. 24명이 꽉 차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전학을 간 ㅇㅅ 생각이 나서 마음이 좀 아팠다. 


200명이 넘는 아이들이 하나하나 나와서 졸업장을 받고 축사를 듣고 졸업 축하 영상과 한 해 살이 영상을 보는 순서들을 지나니 졸업식이 끝이 났다. 사실 난 교실로 이동해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지만 우리 학교는 강당에서 헤어지는 것으로 끝난다. 교실로 가는 문은 아예 차단한다. 그러니 강당에서 보는 것이 공식적으로는 마지막이다. 일 년간 여러 일로 학부모님들을 자주 뵈었는데, 우리는 울면서 헤어졌다. 좋은 일, 궂은일들로 부모님들의 얼굴을 뵐 일이 두루두루 많았다. 아이들은 각각의 성장통을 겪는 중이었고 각각의 사연들은 가벼운 것이 없었다. 웃으면서 보내주려고 했는데 자꾸 눈물이 나와서 결국 마지막 사진은 눈물이 가득한 모습이 되어 버렸다. 어머니들도 우시고 나도 울고 아이들도 울고... 정말 여러 가지 고비가 있었지만 잘 헤치고 왔다. 초등학교 마지막 시절인 6학년이 제일 재미있었다는 아이들이 흘리듯 지나가며 하는 말이 고마웠다. 


6학년 선생님들과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서 마지막 알림장을 썼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아이들이 제게 준 힘으로 또 새로운 한 해를 잘 보내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착한 마음으로 내면이 단단하게 성장할 것을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이, 함께 굽이굽이 돌아가며 쌓아 올린 정이, 항상 들려오던 웃음소리가, 그리고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편하게 웃을 수 있는 그 기댐이 주는 힘이 내게는 가장 큰 선물이었다. 아이들과 나는 일년간 서로서로를 닮아갔다. 정말로, 우리의 마지막이 아름답게 잘 마무리되어 감사하고 좋았던, 그런 하루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졸업식 하루 전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