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 도착하니 어디서 라피도 열차 표를 끊어야 하나 싶다. 일반 열차가 아니라서 두리번거리니 화살표가 보인다. 제일 빠른 것을 달라고 하니 4시 출발이다. 4분 후 출발이다. 다시 후다닥 개찰구로 달려가 종종걸음으로 내려갔다. 열차에 타서 가쁜 숨을 고르며 자리에 앉자마자 출발하기 시작한다.
이제 탑승정보도 확인해야 한다. 온라인 체크인을 하려면 좌석지정료를 별도로 내야 한다길래 일단 배 째라는 심정으로 버텼다. 그래도 한 번 더 탑승정보를 확인하는데 뭔가 눈에 띄었다. 음? 저가항공인 피치항공은 기내반입되는 캐리어 무게가 7kg 이하만 가능하고 그 이상의 무게는 수하물로 부쳐야 한다고 한다. (몰랐다.) 그런데 수하물 수속비가 무려 3만 원이 넘는다. 이러면 기껏 한 면세점 쇼핑의 의미가 없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호텔에서 재어 보았을 때 10kg 정도라 괜찮겠지 싶었다. 미리 접수하면 2만 원 대에도 가능하지만 이미 접수 시간은 지났다. 현장 접수만 가능하다.
어떻게든 짐 무게를 줄여보려고 이때부터 별별 노력을 다 했다. 우선 옷을 세 벌을 껴 입고 공항에 도착해서 치마를 바지 위에 입어 보겠어! (라고 생각했다....) 잠바 주머니 안에 무게가 나갈 법한 것들을 넣어 보고 가방 안에 쓰레기와 자질구레한 것들을 다 비우려고 한 곳에 모아 두었다. 이 정도가 내 최선인 것 같다 정도가 되었을 때 캐리어를 들어보았다. 딱 들어봐도 8kg은 되지만 7kg까지는 안 된다. 거기에 원래 반입되는 가방이 2개 이내이고 합쳐서이니 별도의 가죽가방을 재어 보자 하면 답이 없다. 나는 왜 책을 세 권이나 들고 왔던 것일까. 도서관 책만 아니면 그냥 버리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껴입은 옷들을 조용히 다시 벗어서 캐리어에 넣고 버리려던 것들도 다시 가방에 넣었다. 내 옆으로는 아무도 없고 좌석 등받이가 머리 위로 올라올 만큼 높아서 이 난리를 칠 수 있었다. 마음을 비우고 다시 캐리어를 잠그고 나니 내릴 때가 되었다. 40분간 무슨 쇼를 한 것이란 말인가... 나는 가방에 넣은 것도 별로 없다. 나트 2벌과 스웨이드 부츠 하나, 스커트 한 개에 화장품 파우치와 책 3권이 다였다. 캐리어 무게만 3kg이 넘지 않았을까 싶다. 억울한 마음에 다음에 피치항공을 탈 때는 캐리어가 아닌 그냥 비닐지퍼가 달린 천가방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가죽 가방도 노노.
지하철은 1 터미널까지만 운행하기 때문에 전용버스를 타고 2 터미널로 가야 한다. 미친 듯이 뛰어서 가니 줄이 길다. 무조건 뒤로 가라고 한다. 다음 비행기 탑승객들이 줄을 서 있는데 급해도 안 된다고 한다. 체크인도 키오스크 기계로 해야 하는데 이러다 정말 비행기 놓치게 생겼다. 앞 줄에 계신 분들께 부탁했다. "Excuse me. Would you do me a favor? This is my flight. And the check-in time is over soon. Can I do check-in first please?" (죄송합니다. 부탁 좀 드리려고 하는데요. 이게 제 비행기인데 체크인이 금방 끝나요. 제가 먼저 해도 괜찮으실까요?) 동남아인으로 보이는 그분은 시간과 내 다급한 표정을 보더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빠르게 체크인을 3분 남겨두고 마무리할 수 있었다. 예약 번호를 미리 카톡에 담아 두길 너무 잘했다. 하아.... 정말 인생에서 가장 긴급한 순간 중 하나였다. 공항에 도착하고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어도 체크인이 안 되어 있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자 이제 수하물을 체크하러 가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저울에 올리자 역시 안 된다고 한다. 카드로 3만 얼마를 결제하고 그냥 가뿐하게 보내고 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퍼펙트 휩도 살 것을.... 기내 반입이 안 될까 싶어서 안 산 것이 후회되었다.
정작 체크인을 하고 나니 아니나 다를까. 비행기는 계속 딜레이가 되었다. 기다리는 순간 말차 아이스크림이 나를 유혹했으나 마지막 순간까지 과하게 먹은 탓인지 아니면 미친 듯이 달리고 초긴장을 한 탓인지 식욕이 딱히 생기지는 않았다. 대신 커피를 한 잔 마셨는데, 생각보다 진하고 맛있었다. (공항커피 강추입니다.) 이제는 칼피스를 살 수 있다. 셋째는 칼피스를 좋아해서 혼자 맛있다고 잘 마신다. 아들을 위해서 하나, 나를 위해서 녹차를 하나 샀다. 기내에서는 물도 사 먹어야 하니까 뜨거운 음료만 아니면 그냥 사서 들어가도 괜찮다.
지난번 인천공항에서도 그랬는데 미리 줄을 서서 기다리시는 분들은 결국 포기하고 바닥에 주저앉기 시작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탑승이 시작되었다. 시작된 줄 알았다. 들어가 보니 이렇게 공장처럼 생긴 탑승로를 한참 걸어가야 한다. 거기서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 무작정 서 있기 싫어서 기다렸던 것인데 두 번 기다릴 줄이야. 문이 열리고 나서도 비행기로 바로 이어지지 않고 밖으로 나와 계단을 타고 올라간다. 내가 탈 비행기는 다른 피치항공 비행기보다 더 작고 귀여웠다.
옆 비행기를 보면 창문이 한 줄 더 있는 것이 확 눈에 들어온다. 와이파이가 된다고 해서 기대를 했지만 이 와이파이는 피치항공 전용 와이파이라 기내에서 물품 구입 및 몇 개의 일본 영상만 시청이 가능했다. 기내에서 아주 가볍게 탑승하시는 분들을 보고 구질하게도 '내 짐 좀 부탁드렸으면 기내반입 되었을까....'이라는 마음이 잠깐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좀 민망하다. 나는 얼굴이 두꺼운가 봐....
인천공항으로 가는 대교가 보이고 나서도 한참을 운행했다. 이렇게 사흘 간의 여정이 끝나는구나. 아쉽다. 그리고 아이들을 볼 생각 하니 좋다. 잠깐 정리를 하고 있으니 금방 내릴 때가 되었다. 입국 수속은 금방이고 가방도 금방 나왔다.
유심칩을 갈아 끼워야 하는데 핀이 없었다. 도대체 어디에 놓은 것인지 호텔에서도 가방을 털고 비행기에서도 파우치를 한 번 더 확인했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집까지 꼼짝없이 연락도 못하고 가야겠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핀이 있는 장소가 생각이 났다. 핸드폰 케이스 안이다. 작은 것이라 잃어버릴까 넣어놓았었다. '바보!'를 외치며 유심칩을 갈아 끼웠다. 갑자기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오늘 하루 나 자신에게 바보를 몇 번을 외쳤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엄마 집에 간다고 톡을 보내고 이제는 직통열차가 아닌 일반열차에 올라탔다. (사실 직통열차 티켓을 끊었는데 어디서 타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서 끊어놓은 할인권은 내버려 두고 그냥 빨리 오는 일반열차를 탔다.) 시간은 20분 정도 더 걸렸지만 가격은 반값이었다. 사흘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집에 와서 짐을 풀었다. 아이들은 환호했고 곤약젤리 4 봉지는 만 하루 만에 사라졌으며 킷캣과 마시멜로우는 하루를 더 갔지만 주말을 넘기지 못했다. 다음에 곤약젤리는 열 봉지 사야겠다. 며칠 뒤에, 옆반 선생님이 일본 가시려고 비행기를 기다리신다는 말씀에 "저 곤약젤리 두 봉지만...."이라고 쓰고 싶은 것을 꾹 눌러 참았다. 이 무슨 민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