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의 마지막 하루

by 여울

빗속에서 산책한 것이 조금 힘들었는지 눈을 뜨자 10시가 훨씬 넘어 11시가 되어 있었다. 부랴부랴 남은 짐을 싸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레이트 체크 아웃은 1시까지 가능한데 2200엔을 내야 한다고 한다. 지금 나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덕분에 어제 잔뜩 산 편의점 디저트들은 결국 로비에서 먹어야 했다. 딸기빵은 맛있었고 특히 좋았던 것은 사과요구르트였다. 보통 사과요구르트는 잘 만들지 않는데 아삭하면서 적당히 단 정도가 좋았다. 크레이프 롤은 눌렸는지 약간 아쉬운 느낌이었고, 이렇게 먹고 나니 도저히 푸딩을 먹을 수가 없었다. 먹고 싶을 때는 먹을 것이 없더니 많이 있을 때는 시간이 없다. 결국 크림롤은 못 먹었잖아!!!! 내가 정말 다음엔 1번으로 먹고 말 테다. (크림 마니아임.)


호텔에는 이렇게 체크아웃을 한 손님들을 위해서 따로 캐리어를 보관하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제부터 오후에 다시 난카이선을 탈 때까지 조금 가볍게 다닐 수 있겠다. 정리하고 나니 12시가 넘었다. 점심을 먹기엔 배도 애매하고 시간도 애매하게 되어 버렸다. 비행기가 6시 15분이라서 정말 애매하다.



밖으로 나오는 날이 참 좋았다. 어제 이랬으면 다니기 한결 수월했을 텐데, 여행 중에는 비가 나를 피해 다니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캐나다에서 차고 넘치게 배웠다. 다니기는 좋았으나 비가 내린 탓인지 날은 한결 쌀쌀했다. 집어넣었던 목도리를 다시 꺼내서 둘렀다.



골목길에서 오른쪽으로 꺾기만 하면 바로 도톤보리가 나온다. 천천히 걸어가다가 다이무라에 들렸다. 포켓몬을 좋아하는 셋째를 위해서 여기서 뭔가 사갈 생각이었다. 엑스포 공원에도 포켓몬 센터가 있다고 하던데 거기까지 가기에는 빠듯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으면 아쿠아리움을 노려볼 만도 했지만 11시가 넘어서 일어났으니 마지막 남은 미련까지 모두 버려야 했다.



여기에도 사람이 진짜 많았는데 한국 사람이 진짜 많았다. 중간에 롤렉스 매장과 셀린느 매장은 아예 입장 대기를 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 누가 친구 따라갔다가 셀린느 매장에서 가장 크게 지르고 왔다는데 그냥 구경하면 모를까 입장 대기까지 하면서 보고 싶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이 귀여운 가족들이 마음에 들었고, 포켓몬 컵라면은 한국에서도 구할 수 있으니까 패스한다. 아이들 핸드폰에 붙이라고 스티커를 하나씩 사 주고. 막둥이를 위해서는 나노블록을 하나 샀다. 넷째는 그냥 칼피스랑 어제 뽑은 인형을 하나 주기로 했다.



"차라라라라랑!" 스파이더맨 복장을 하고 길거리 공연을 하던 분은 누군가 동전 바구니를 발로 차자 황급히 내려와서 동전을 모아 담으셨다. 사람들 모두 다 같이 동전을 담아드렸다. 그냥 있어도 다들 담아주었을 것 같은데 동전 하나라도 소중한 법.



오는 길에 눈에 뜨인 예쁜 니트를 하나 사고 싶어서 살짝 만져보고는 그냥 왔다. 이번 겨울 나는 내 옷을 사지 않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진짜 만져만 보고 왔다. 생각해 보니 이번 여행에서 나를 위해 산 기념품은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 여행 자체가 나를 위한 선물이니까 어떤 물질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검색을 해 보면 오사카 초밥집이 몇 군데 나오는데 길을 가다가 마주친 다이신수산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실패한 것은 계란초밥과 킹크랩군함이었다. 지금까지 제일 맛있는 계란초밥은 우리 동네에 있는 고우마구로 계란초밥이다. 게를 너무 좋아하는데 비싸서 잘 먹지 못해서 킹크랩군함으로라도 먹어보고 싶었는데 별로였다. 물기가 너무 많고 차가워서 굳이 이 가격에 먹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어든 접시마다 실패해서 슬퍼하면서 연어와 고등어, 참치를 시도했다. 많이 못 먹기 때문에 여기서 실패하면 정말 너무 슬프다.



그리고 고등어는 괜찮았으며 참치는 정말로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입에서 그냥 살살 녹아 내려서 후회스러웠다. 다른 것 먹지 말고 그냥 바로 참치를 먹을 것을. 참치회 조각이 한국보다 두툼하고 컸으며 가격은 착했고 맛은 좋았다.



다 먹고 나오면서 보니 가게 앞에서 이렇게 도시락처럼 포장해서 팔고 있었다. 이 고운 빛깔의 참치초밥 도시락이 1666엔이라니. 다른 것 필요 없이 그냥 이 도시락 하나였으면 최고로 만족한 식사였을텐데 몰랐다..... 다음에 오면 이 도시락 사서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게를 떠났다.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 더 살까 말까 매우 망설였는데 도저히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 눈을 질끈 감고 떠났다.



그리고 또 지나가다가 말차 아이스크림을 발견하고 사 먹었다. 어제보다 더 진하고 진해서 맛있었다. 말차 아이스크림에 빠져서 올 줄이야... 누구신지 추천해 주신 블로거님께 정말 무한 감사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베그릴비프 꼬치를 먹었다. 몇 군데 지나가다가 그래 마지막이야! 하는 생각에 하나 먹었는데... 와우.... 정말 아까 그 참치에 못지않게 살살살 녹아내리는데.... 배만 안 부르면 하나 더 먹고 싶을 정도였다. 오사카에 가시는 분들. 이 길거리 고베그릴비프는 정말 강력추천드려요.... 안 드시면 후회하세요....



이렇게 쓰고 나니 나는 오사카에 먹으러 간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살짝 든다. 아쿠아리움은 사흘 내내 벼르기만 하다가 가질 못했고 쇼핑을 딱히 한 것도 아니다. 평소에 많이 먹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든 먹으려고 기를 쓰고 먹은 일기만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저 말차 아이스크림과 고베그릴비프는 정말 너무 맛있어서 글자 그대로 입에서 녹아버렸다.


이 소고기 꼬치에 정신을 못 차리고 감동하고 있다가 시계를 보니. 뭔가 이상하다. 난 분명히 4시 10분까지는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는데 왜 시간이 3시 40분인 것일까. 3시에는 지하철 역에 있어야 하는 게 정상인데. 싸아한 소름이 등을 타고 내려간다. 이때부터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택시를 검색해 보니 22만 원이 든다고 나온다. 이건 아니다. 무조건 난카이선을 타야 한다. 지도를 보면서 질주하기 시작했다. 난 공항에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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