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되던 해, 어느 날 갑자기 축구를
그리고 선수를...
둘째를 낳고 친정이 가까운 안양으로 이사를 갔다. 육아휴직을 했고 한동안 여기서 살면 편리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내가 살던 동네는 안양에서도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골짜기 같은 동네였고 이 동네에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이 작은 구립어린이집에서 나와 아이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동네가 작았기에 한 집 건너면 다 아는 사이였고 사실 그래서 말도 많고 탈도 있었지만 그 부분은 다른 이야기이고 대체로는 사이가 좋았다. 유독 다자녀가 많았는데 그래도 보통은 세 명이지 나처럼 네 명을 키우는 집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친구 어머니들 중에는 이미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선배 어머니들도 꽤 많았다.
어느 날 큰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는 언니 한 분이 제안을 하셨다. "우리 어린이집 축구팀을 하나 하면 어떨까?"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 축구를??? 하는 의문을 가진 우리들에게 언니는 조목조목 이야기를 했다. 축구를 하면 아이들이 뛰어다니니 건강해지고, 다 같이 하는 단체 경기라서 협동심도 키워지고, 지금은 여자 남자 가리지 않고 체력이 비슷하니 함께 어우러지기에도 너무 좋다는 것이다. 자기가 큰 아이를 시켜봤는데 너무 좋았다면서 단체로 하기 때문에 한 달에 드는 비용은 많지 않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 아이는 갑자기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운동이라고는 물론 해 본 적도 없고 이 아이가 잘 뛸 수 있는지 자체가 의문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잘하는 것이다. 셋째는 시작하자마자 고만고만한 아이들 사이에서 그렇게 축구 에이스가 되었다. 가을날 운동장에서 자그마한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번갈아 가면서 작은 간식을 준비해서 응원을 가면서 가족 단위로 더 친해져서 끈끈한 것도 좋았다.
하지만 다음 해 복직을 결정하면서 나는 이사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조금만 더 컸어도 안양 그 동네에서 등하원 도우미 이모님을 구해서 살고 싶었지만 아침에 4살 6살 8살 10살 네 명의 아이의 등교와 등원을 부탁하기엔 마땅한 분이 없었다. 친정어머니는 그즈음 화성으로 이사를 가셨고 할머니를 모시느라 바쁘셨다. 거기에 둘째가 1학년 입학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이사를 결정했다. 서울로 이사를 오니 모든 것이 낯설었다. 원래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지진 않았지만 아이들은 정다운 곳에서 떨어져 나와 적응하느라 몸살을 앓았다. 나 역시 친하던 아이들 친구 어머니들과 떨어져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그 가운데 역시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아이들 학원이었다. 주지과목 사교육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고 예체능 위주로 알아보았다. 정보가 없다 보니 시행착오가 좀 있었다. 2학기가 되어서야 윤곽이 대강 정해졌다.
셋째는 축구를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FC서울 축구팀이 있었다. 차량 운행이 되고 집에서 가기에도 가까웠다. 주 1회 정도로 하면 가격도 부담이 없었다. 다만 주중에는 시간이 맞지 않아 토요반에 내가 데려가고 데려오는 것으로 했다. 그렇게 축구를 시작하고 나서 감독님께 연락이 왔다. 아이가 너무 잘하니 선수반을 시키면 좋겠다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우리는 당황스러웠다. 일단 그 정도로 잘하는 지도 의문이었고 횟수를 늘리는 것은 비용의 증가라 고민도 되었다. 그렇게 동갑내기 아이들로 선수반이 만들어졌고 다음 해 7살 아이들은 구대회 1등을 차지해서 서울시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8살에도 역시 구대회 1등으로 또 서울시 대회에 출전했다. 1학년이 되자 반에서 남자아이들 엄마들끼리 축구팀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다.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결국 다른 축구 클럽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주 3회 축구를 하는데 여기서도 셋째에게 선수반을 하면 좋겠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이미 다른 클럽 선수반을 뛰고 있어서 죄송하는 말씀을 드렸다. 축구대회에 나가면 서로 선후배 사이라는 다른 클럽의 두 코치님이 우리 셋째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시기도 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연습량은 많아졌고 훈련의 강도는 높아지고 그와 함께 들려오는 이야기도 많아졌다. 셋째 친구 엄마의 큰 아이들은 이미 전문 훈련을 받고 있다고 했다. 날마다 클럽에 가서 연습을 하고 있고 전학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주말이면 멀리 성남까지 유명 프로선수가 하는 클럽에 가서 고가의 레슨을 받고 있다고도 했다. 아침에 두 시간씩 스스로 연습을 하고 하교 후에는 클럽에서 밤늦게까지 연습을 하는 그야말로 축구인생이었다. 나보다 2살 어린 그 엄마는 운동은 다 결국 돈이라고 했다. 얼마나 좋은 레슨을 받게 하느냐가 아이의 축구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돈도 없고 능력도 없고 시간도 없는 나는 그 말에 더욱 고민이 되었다.
정말로 아이가 선수반을 하면서는 따라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주말이면 이 구장 저 구장으로 데리고 가야 했고 거기서 2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했다. 그나마 차량지원이 될 때는 좋았지만 주말 아침과 오후 훈련과 경기 일정에 맞추어 나머지 세 아이들을 데려가기도 안 데려가기도 참 어려웠다. 자잘하게 축구화부터 시작해서 각종 유니폼 비용, 팀 간식 비용 같은 것도 은근이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저렴하게 해 준다는 레슨비도 다자녀 엄마에게는 부담이었다. 그렇다고 잘하고 있고 축구를 재미있어하는 아이에게 그만두라고 적당히 하라고 할 수도 없는 부분이었다. 얘는 정말 축구 선수가 될 것인가?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