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울 Feb 19. 2024

아침에 일어나니 초2 아들이 집에 없었다

주말 아침 7시. 모두가 늦잠을 여유롭게 자는 한가한 아침. 문득 허전한 느낌에 남자아이들 방을 보니 문이 열려 있고 셋째가 없다. 얘가 도대체 어디 간 것일까 걱정을 하는데 현관문이 들리며 셋째가 들어왔다.

"어디 갔다 왔어?"

"산을 세 바퀴 돌고 왔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뒤로 둘레길이 잘 되어 있고 작은 산들이 있어서 산책코스로 좋지만 그래도 힘과 노력이 소요되는 나름의 '등산'이다. 나도 여기에 갈 때는 마음을 좀 먹어야 올라간다. 일단 가면 좋지만 진입로까지가 경사진 언덕길이고 거기서도 생짜로 올라가야 하니 잘 안 가게 되는 것이다. 그 뒤로도 셋째는 가끔씩 아침에 산을 몇 바퀴씩 돌고 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운동장을 뛰고 오거나 혼자서 뒷산을 오르락내리락했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아이가 혼자 나가 이렇게 운동을 하고 오던 때는 코로나가 시작되고 모두가 집에 있어야만 했던 때였다. 축구를 하며 뛰어놀던 아이는 답답했던 것이다. 서울시 대회 참가를 끝으로 한참 축구에 열을 올리던 아이는 더 이상 축구를 하기 어렵게 되었다. 다른 학원들도 수업을 수시로 중단했다. 피아노, 미술 모두 오늘은 등원이 어렵다는 문자를 받았고 나는 이 참에 많은 학원들을 정리했다. 사실 어쩌면 좋았던지도 몰랐다. 학원비의 부담에서 조금 가벼워진 느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가 정말로 축구를 선수가 될 만큼 좋아한다는 확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야구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집에서 싸구려 글러브와 공을 가지고 혼자서 캐치볼을 하면서 노는 날이 많아졌다. 집 근처에 어린이 야구장이 있는지 알아보았는데 없었다. 최소한 차를 타고 20분 이상 나가야 했고 차량지원도 없었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야구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퇴근하고 너를 데리고 멀리 사당까지 갈 수도 없거든." 


만약 아이가 한 둘이었다면, 그리고 최소한 축구클럽처럼 집 근처였다면, 하다 못해 차량 운행이라도 되었다면 주 1회 정도 취미처럼 보냈을 수도 있겠지만, 축구를 배우는 것보다 (내게) 더 난이도가 높은 것을 선 듯 지원해 주기는 어려웠다. 아이는 이해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얼굴에서 간절함을 볼 수 있었다. 혼자서 운동마당에 나가서 공을 던지고 받는 모습을 수시로 봤고, "야구 배우고 싶다."라는 말을 간간히 했다. 


아무리 사정이 어렵다고 해도 자녀가 바라는 것을 부모 입장에서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마음에서 지워버리지도 못한다. 나는 야구를 배우고 싶다는 아이의 말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 학교 방과후프로그램에는 티볼부가 있어서 아쉬운 대로 티볼이라도 시켜보고 싶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티볼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인지 기준 인원수 미달로 번번이 폐강이 되었다. 그렇게 세 번 정도 지원했고 이번엔 제발 10명이 넘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매번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는 아이를 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는 다시 축구를 시작했다. 다만 예전처럼 전문적인 선수반이 아닌 그냥 방과후학교로 하고 싶다고 했다. 이사를 오면서 바뀐 환경 탓인지 아이는 다소 낯을 가리는 성격이 되어 있었다. 선수반에 있던 친구들이 많이 바뀌었는데 그중에 마음이 맞지 않는 친구들이 있었는지 더 이상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또 다른 곳은 코치님이 바뀌었다. 그냥 재미있게 하는 축구는 좋아하지만 전문적인 선수로서의 길은 아니라는 것이 보였기 때문에 방과후학교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겨졌다. 정말 좋아하면 친구든 코치님이든 상관없이 그냥 했을 테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봄날, 나는 정말 우연히 공문을 하나 보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5살 되던 해, 어느 날 갑자기 축구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