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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Feb 20. 2024

그냥 체험만 하러 갔을 뿐인데...

인근 B학교에서 야구부 체험반을 모집한다는 공문이었다. 보통 이런 공문은 학교 사정에 따라 학부모들에게 공유가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분명히 그전에도 있었을 텐데 내가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교사들에게만 공개가 되었던 것이다. 차근차근 읽어보았다. 모집 대상은 2~5학년. 매주 토요일마다 2시간씩 5주간 체험반을 '무료'로 진행할 수 있다. 거리는 걸어가도 될 만큼 가까운 학교였고 차로는 10분 내외라 부담이 없었다.


사실 그 학교에 가 본 적이 있었다. 6년 전 병설유치원과 공립어린이집을 찾아서 몇 군데 원서를 넣으러 가면서 도로 상황과 차량 사용이 얼마나 용이한지를 보았다. B학교는 예전에 내가 졸업한 W학교 인근에 있는 학교였는데 골목이 좁았던 기억이 있었다. 병설유치원에 원서를 넣으러 가면서 나는 바로 포기했다. 골목이 좁고 시장길을 지나야 해서 바쁜 아침,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차를 돌리다가 자칫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겠다 싶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 학교에 야구부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아이는 바로 "당연하죠!"라고 대답했고 나는 감독님께 문자로 신청을 했다. 아랫집 친구에게도 같이 하자고 했는데 선착순 마감이 차서 안 된다고 하셨다고 아쉬워했다. (알고 보니 그냥 데려갔어도 괜찮았는데 나도 감독님도 당시에는 그냥 곧이곧대로 생각하셨다.) 그렇게 아이는 들뜬 마음으로 갔고 나는 책을 한 권 가져갔다.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었다. 가끔씩 아이가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 공을 던지는 것, 공을 받는 모습 등을 보았지만 90퍼센트의 시간은 책을 읽었다.


그런데 어머니 한 분이 내 옆에 앉으시는 것이다. 그냥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책에 빠져 있는 나에게 그 어머니는 자기소개를 하시면서 어느 학교에서 왔고 아이는 누구이고 몇 학년인지 등등을 물어보셨다. 알고 보니 아들이 6학년인 Y는 우리 아들이 지금 다니는 G 초등학교에서 전학을 왔고 바로 옆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있었다. 너무 반가워하시는 그 어머니가 나는 당시에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나중에는 이해가 되었다.) 야구부에 대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시면서 우리 아들이 다른 아이들 중에서도 눈에 띈다고 하시길래 이 또한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말씀이겠거니 하고 넘겼다. 물론 조금 나은 것 같긴 했지만 다 고만고만한 아이들 중 누가 얼마나 잘하겠나 싶었다.


5번 중 4번은 내가 고 한 번은 신랑이 갔다. Y 어머니는 아이들 명단에 감독님이 잘하는 아이 이름 옆에 별표를 쳐 두셨는데 세 명이고 우리 아들 이름 옆에 별표가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냥 설명을 듣고 흘려버렸는데 마지막이 다가오자 아이가 아쉬워하는 것이 보였고 나도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야구부 '무료' 체험이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하지만 야구부를 하려면 그 학교로 전학을 가야 한다는 것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리 집에서 가까워도 아이를 매번 데려다주고 데려 오는 일 또한 쉽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래서 Y 어머니께는 이대로 체험이 끝나는 것은 아쉽지만 전학 부분이 걸려서 쉽게 결정하지 못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집으로 오는 길, 감독님께 전화가 왔다. 전학이 고민된다고 하셨는데 괜찮다면 한 주에 두어 번, 야구부 형들과 진짜로 야구부 수업을 듣는 체험반을 해 보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나는 물었다. 정말로 우리 아이가 괜찮은가 하고 말이다. 감독님은 잘한다고 하셨는데 긴가민가 솔직히 정말 그런가 하고 확신은 가지 않았다. 집에 와서 신랑이랑 이야기를 했고, 아이랑도 상의를 했다. 주 2회라면 현재 다니는 학원 스케줄에 큰 지장은 없을 것 같았다. (당시 아이는 날마다 가는 피아노와 주 1회 첼로, 미술과 눈높이 국어, 영어, 방과후축구를 하고 있었다.)


오후에 야구부 훈련을 가기 위해서는 내가 외출을 해야 했다. 1시간 외출을 달고 나와 아이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는 연습을 했다. 빠르게 집으로 와서 아이와 함께 버스를 타고 내려서 같이 걸어가며 길을 익혔다. 올 때는 퇴근 후 데리러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가끔 같이 집까지 통으로 걸어오기도 했다. 그렇게 몇 번을 한 후 아이가 앞장서고 나는 뒤에서 따라갔다. 버스 벨을 누르는 것도 내려서 골목길을 이리저리 가 보는 것도 다 아이가 먼저 가도록 했더니 3주 차에는 내가 더 이상 따라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일주일에 두 번씩, 셋째는 혼자서 야구부 훈련을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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