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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Apr 02. 2024

콜드에 웃고 울다

야구에는 콜드 게임이란 것이 있다. 내가 알기로는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없는 점수차가 나면 자동으로 종료가 되는 경기를 콜드 게임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냉정하다는 뜻인 콜드 cold game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는 called game이다. call은 결정, 선언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데 심판의 선언에 의해서 종료되었다는 뜻으로 종료된 게임인 called 게임이라고 하는 것이다. 영어 발음도 cold는 코울드, called는 커어드에 가깝지만 한국에서는 모두 콜드라고 하니 이렇게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은 나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런데 외국인 친구랑 이야기하면 이 콜드 게임 대신 by mercy rule이라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한 팀이 과하게 점수 차가 나서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어느 이닝 후 점수 차이가 나면 자비롭게 종료를 한다는 뜻에서 자비의 규칙이다. 


초등 야구에서도 이 자비의 규칙이 적용되는 콜드 게임이 있다. 보통 4회에 15점 차, 5회에 10차이다. 이 점수차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대로 경기는 종료된다. 지난번 아들이 정식 첫 승을 거둔 경기가 있었다. 선발 투수로 세 번을 나갔지만 아들이 속한 팀이 점수를 나중에 내는 바람에 무실점으로 선전하고도 승리 투수는 되지 못했다. 이번에는 상대팀이 1점을 내는 동안 아들팀이 무려 11점을 내면서 확실하게 승리 투수로 마감했고 경기는 콜드 게임으로 가뿐하게 끝났다. 그리고 본선에 진출했다. 


아이들은 흥분했다. 얼마만의 본선 진출인가!! 그동안 번번이 예선전에서 탈락하기 일쑤였기 때문에 가뿐하게 3승으로 진출한 것은 정말로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한 번 남은 경기에서 대패했다는 것이다. 일찍부터 차량 지원으로 경기를 보고 온 신랑의 말에 따르면 경기 내용은 그리 나쁘지 않았고 점수를 낼 찬스도 많았다고 했다. 그런데 수비 실책과 노아웃 2, 3루에서 다음 타자들이 연이어 삼진 및 아웃처리 되는 상황이 연거푸 일어나면서 경기의 흐름이 넘어갔다고 했다. 이렇게 조 3위가 되었고, 다른 조 2위 팀과의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어제도 새벽 6시 오늘도 새벽 6시.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내 마음은 조마조마했으나 수업 시간과 겹쳐 경기를 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교과 시간을 틈타서 잠깐 경기 중계 링크에 접속했을 때 정말 참혹한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1:16. 그동안 가끔 콜드로 진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까지는 아니었는데 정말로 무참하게 두들겨 맞았다. 마지막 공격을 지켜보면서 한 점이라도 내서 조금이라도 회복하기를 바랐지만 결국 득점 없이 4이닝은 종료되었다. 어제는 이겨도 오늘은 지는 것이 야구라지만 이런 패배는 조금 가슴이 많이 아프다. 


내색은 안 하려고 했지만 다소 의기소침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평소에는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어찌어찌 일이 안 되려면 결정적인 순간에 안 좋은 일들이 겹치기도 하는 것이다. 뾰로통한 마음은 애써 감추려고 혼자서 다독이면서 책을 읽었다.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된다는데..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책을 읽었다. 김혜남 작가님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실패와 실수를 하는 이들에게는 '괜찮아'라고 말을 하면서 정작 나 자신의 실수와 실패에는 관대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 어쩌면 이 뾰로통해지고 가라앉은 마음은 아들의 완벽하지 못한 투구를 나의 것으로 동일시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경기는 못 보았지만 '네가 잘했다면 콜드로 지는 일은 없었겠지.'라는 뾰족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직장 일로 경기에 따라가지 못한 것이 잘 되었다. 은연중에 풍겨 나왔을 엄마의 불편한 마음을 곁에서 마주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얼마나 잘 된 일인가. 이번 경기는 이렇게 8강에 올라가지 못한 채로 끝이 났고 다 경기 공지가 올라왔다. 대진표를 보니 상대는 다른 조 1위 팀이다. 뭐. 이렇게 인생을 배워간다. 승리와 패배를 반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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