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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May 03. 2024

저희 반 아이들이요? 그럴 리가요???

"선생니이임~~~ 그리웠어요!"

"보고 싶었어요!"


아침에 얼굴을 보자마자 몇몇 아이들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조근조근 어제 있었던 굵직한 일들을 이야기한다. "ㅈㅅ이가요, 앞에 나와서 문제를 푸는데 자리 수가 틀렸다고 강사 선생님이 말씀하시니까 마카펜을 던졌어요!"부터 "조금 떠들긴 했지만 평소보다 조용했던 것 같기도 하고 음.... 아닌가??" "떠드는 아이들 적었다가 지웠는데 아이들이 ㅊㅇ이한테만 뭐라고 해서 ㅊㅇ이 울었어요." "선생님 오늘 마니또 선물 안 가져왔어요." "선생님 제 마니또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


한바탕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어제도 막둥이네 학교 운동회를 보면서도 마음은 교실에 와 있었다. 심지어 점심시간에 잠깐이라도 교실에 와서 아이들 잘 있나 보고 가야 하나 고민했을 정도였다. 우리 반 아이들은 사랑스럽고 귀여운데 정말 순수하기 그지없어서 그 수다가 한 번 열리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그럼에도 또 집중신호를 보내면 착착 바로 호응을 해 주니 나도 가끔 헷갈린다. 우리 반은 말을 잘 듣는 반인가 아닌가. 나는 괜찮지만 이 아이들을 나 없이 맡겨 놓자니 마음이 죄송하고 불안 불안한 이 기분을 가지고 어제 하루를 보냈다.


오늘은 짝도 바꿔야 하고 마니또도 맞춰봐야 하고 어린이날 기념 과자파티도 있으니 아이들 마음이 붕붕 떠 있다. 짝을 바꾸고 모둠 이름을 정한 다음 소개를 하는데 또 빵빵 터졌다. 이번에는 여자 아이들로만 구성된 모둠이 하나 있었다. 절대 안 그럴 것 같은 아이들이 모둠 이름을 '공주들'이라고 정하더니 손을 앞으로 주욱 내밀면서 "안녕하세요! 저희는. 공주들!입니다!. 왼쪽부터 큐티, 프리티, 무슨 티 무슨 티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으아아..... 나 이런 거에 내성이 없단 말이다. 반 아이들도 단체로 쓰러졌다. "얘들아. 선생님 갑자기 춥다." 하면서 카디건을 껴입으니 또 까르르 웃는다. "저희 모둠은 'ㅇㅅ아 발표해!' 모둠입니다. ㅇㅅ이가 하도 발표를 안 하니까 ㅇㅅ이면 발표를 하면 됩니다." "ㅇㅅ아 그래서 발표 이번엔 많이 할 거야?" "아니요." 너무 당당한 ㅇㅅ이 목소리에 우리는 모두들 또 빵 터지고 말았다. "저희 모둠은 '불쌍한 ㅈㅇ이와 아이들' 모둠입니다." "ㅈㅇ이가 아이돌이라고?" 또 여기서 까르르. "아니이 아이들이라고. ㅈㅇ이만 남자고 다 여자 아이들이잖아." "흑흑흑 나 불쌍해."라고 ㅈㅇ이가 우는 시늉을 하지만 사실은 아주 만족스러워 보였다. "저희 모둠은 범죄도시입니다." "아 미안하지만 긍정적인 이름으로 바꿔서 다시 만들어 주세요." 그렇게 범죄도시 모둠은 수박박수 모둠이 되었고 마지막은 잔망루피 모둠인데 잔혹루피 그림을 그려와서 아이들은 또 신나게 웃었다. 시작부터 짝이 마음에 안 든다고 암울한 기운을 뿜어내는 한 모둠은 블랙홀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또 의외로 아주 잘하고 있다.

아침부터 신나게 웃었으니 차분하게 남은 하루를 지내..... 는 일은 없다. 신나게 그림을 그리고 신나게 악기를 연주하고 나니 벌써 점심시간이 되었다. 급식으로는 스파게티와 마늘빵, 구슬 아이스크림까지 나와서 더 방방 떴다. 하늘까지 기분이 치솟은 아이들을 데리고 급식실에서 나와 거북이가 있는 인공연못을 향해 걷다가 교감 선생님을 만났다.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가려는데 다가오시더니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말을 건네신다. "어제 강사 선생님이 이 반 아주 훌륭하다고 칭찬을 하고 가시더라고요." "네? 저희 반이요? 그럴 리가요?" 아이들을 휙 둘러보니까 아이들이 아우성이다. "맞아요 선생님! 저희 잘했어요!" "아주 잘하더라고 몇 번을 이야기하고 가셨어요." 교감선생님도 기분 좋으신 얼굴로 가셨다. "이상하다. 정말로 잘했다고?" "네! 저희 점심시간에 세줄 쓰기하고 1인 1 역하고 이런 거 다 하니까 아주 잘한다고, 선생님 훌륭하시다고 하셨어요." "아. 그러니까 내가 훌륭하다고?" "네!" 하하하하.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다.


아이들은 아마 적당히 수다스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늘 하는 것처럼 열심히 발표를 했을 것이다. 발표 횟수는 모둠점수와 직결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학급 임원 아이들이 세줄 쓰기 검사를 했을 테니 열심히 짧은 글짓기를 해서 검사를 받았을 것이고, 남은 시간에는 1인 1역을 또 각자 알아서 잘하고 검사하는 친구들은 열심히 챙겼겠지. 점심시간에 해야 하는 일들의 루틴이 확립이 되어 있으니 그냥 늘 하던 것들을 알아서 착착착했을 것이고, 그 모습을 아마 예쁘게 봐주신 것 같다. 그래. 우리 반 아이들이다. 그럴 리 있는. 조금은 시끌벅적하고 어쩌면 좀 더 많이 수다스러워도 까르르 웃으면서도 할 일들은 또 성실하게 하는.


다음에 만약 또 이렇게 다른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정말로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


우리는 한바탕 거북이와 금붕어를 보고 다시 교실로 들어와 또 할 일들을 열심히 했다.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하고 검사를 하고 이제 마지막 한 시간 재미있게 보낼 준비를 마쳤다. 마니또를 확인하고 어린이날 노래도 한 번 아주 기운차게 부르고 (정말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면 2학년 같다... 어찌나 우렁찬지...) 준비한 선물을 꺼냈다. "자아! 마지막 어린이날 선물로 꾸러미에 특별히 쿠폰도 넣었어요!" "와아~!" 특별히 두 장씩 인심 팍팍 썼다. 일기 면제에 급식 먼저 먹기, 점심 놀이, 학급화폐교환권 등등. 아주 신나는 마음으로  하나씩 작은 꾸러미를 골라간다. 이렇게까지 하고 나니 정작 과자 먹을 시간은 15분도 남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행복했다. 잘 먹고 잘 치우고 잘 갔다. 물론 몇 명은 남아서 3시 넘게까지 교실에서 놀다 가는데 쫑알쫑알 이야기도 많아서 아직도 머리가 조금 울리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렇게 5월의 첫 주 금요일이 간다. 좋은 어린이날 연휴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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