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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May 09. 2024

정말로 신발이었다

1. 정말로 신발이었다


우리 반은 절대로 욕을 하면 안 된다. 그리고 아이들도 욕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교실로 돌아오는 계단에서 

"아 이 ㅅㅂ이!" 하는 큰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뒤를 돌아보았고 아이들도 "헉"하는 소리와 함께 빠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ㅇㅈ이가 그랬어요!" 

우리 귀여운 ㅇㅈ이는 얼굴 표정 하나도 변하면서 재치 있는 입담을 발휘해서 웃음을 가져오는 친구다. 

"선생님 정말로 신발이 떨어졌어요!!!" 

"맞아요 선생님! 진짜예요!"

ㅇㅈ이 실내화 앞쪽이 다 갈라져서 며칠 째 불안 불안하다 싶었는데 기어코 실내화가 벗겨져 버리고 만 것이다. 계단을 굴러내려 간 실내화를 찾아 다시 신는 예준이는 "아 하필 정말로 신발이 벗겨져서."라면서 귀엽게 툴툴거렸다. 

"실내화 새것으로 하나 신자." 

"네!"


2.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국어 발표 시간이었다. 내가 관심 있는 주제로 조사를 해서 자료를 만들고 하루에 서너 명씩 돌아가면서 발표를 한다. 아무리 좋은 피피티 자료의 요건을 설명해 주어도 아이들이 만드는 피피티에는 설명이 작은 글씨로 잔뜩 들어가 있고 정말 필요한 그림자료는 구색 맞추기로 들어 있다. 한두 개라도 들어 있으면 다행이다. 그래도 나름 찾아가며 만들고 연습을 한 정성이 있어서 기특하게 생각한다. 우리 반 똑순이 ㅈㅇ이가 패션의 역사라는 주제를 하면서 유명한 디자이너의 사진을 가져왔다. 


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과연 누구일까요?"라고 하는데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코코 샤넬이나 앙드레 김은 알겠는데 이 배우 뺨치게 잘 생기신 분은 정말 누구실까? 재간둥이 ㅈㅎ이가 "닥터 스트레인지!"라고 말하는 바람에 또 빵 터지고 말았다. 그래서 또 손을 내밀며 나도 한 마디 해 주었다. 

"도르마무!"


3. 제가 선생님 예쁘게 그려드릴게요!


우리 반 예쁜이 ㅁㅅ와 ㅅㅇ이는 수업이 끝난 뒤에도 집이나 학원으로 바로 가지 않고 남아서 놀다 가는 것을 좋아한다. 보통 6학년 정도 되면 쌩하고 달려가기 마련인데 올해 우리 반 아이들은 가끔은 대여섯 명까지 남아서 놀다 간다. 2학년도 3학년도 아닌데..."제발 집에 가 주렴!"하고 밀어내다시피 해야 겨우겨우 간다.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하루는 두 아이가 서로 나를 그리겠다면서 열심히 칠판에 그렸다. 

"선생님! 누가 더 잘 그린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ㅅㅇ이 그림이 조금 더 눈에 들어왔다. 예쁜 건 ㅁㅅ 그림이지만 말이다. 

"둘 다 예쁜데?"

"아잉! 하나만 골라 주세요. 저는 선생님 눈 옆에 점까지 세세하게 잘 그렸단 말이에요."

야.... 그거 점 아니야.... 기미야..... 흑흑흑


4. 전 남자 친구의 고백


"선생님! 전 남친이 우리 반에 있잖아요? 그런데 저 정말 기분이 나빠요!"

예쁜이 ㄱㄹ는 정말 미모가 우월하다. 어찌나 예쁘게 생겼는지 아이들이 농담 삼아 "너 (기획사) 명함 몇 장이나 받았어?"하고 물어볼 정도다. 그 예쁜 ㄱㄹ가 씩씩 거리며 말했다.


"왜?"

"지난번에 저한테 '나 너 좋아해'라고 고백하는 거예요."

"음...ㄱㄹ한 테 다시 반했나?"

"아니요! 만우절이었어요!"

"아하..."

"하지만 똑똑한 저는 바로 거짓말인 것을 알아채고 받아주지 않았죠. 받아줬더라면 얼마나 ㅉ팔렸겠어요! 그렇지만 기분은 정말 나빠요!"

"그러네. 진짜 나빴다. 선생님이 ㅈㅇ한 테 뭐라고 해 줄까?"

"아니, 그건 괜찮아요."



5. 쇼팽과 리스트


국어 발표 시간에 ㄱㄹ의 전 남친 ㅈㅇ는 쇼팽과 리스트라는 거창한 주제를 들고 왔다. 제목을 보는 순간 '헉'하며 아이들이 제대로 이해는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일단 어떻게 하는지 보기로 했다. 조사는 매우 잘해 왔다. 쇼팽과 리스트의 고향과 음악적 특성, 연주 기법, 곡 스타일 등등 아주 좋았다. 다만 클래식에 관심이 없는 우리 반 아이들은 '오잉'하는 표정으로 그러나 열심히 ㅈㅇ의 발표를 들었다. 그리고 발표는 끝이 났다. 

"ㅈㅇ야, 이럴 땐 쇼팽과 리스트의 대표곡 하나씩 넣어주면 더 이해하기 좋겠지!"

"아, 맞다. 지난번 거에는 넣었는데 수정하면서 빼먹었어요."

아이들에게 들려주니까 "오오 들어본 것 같아요. ㅈㅇ야 너 칠 수 있니, 선생님 쳐 주세요." 등등의 반응이 나왔다. "나는 못 친다. ㅈㅇ도 못 칠 걸." 우리 반에는 피아노가 있다. 하지만 라 캄파넬라와 마제파는 칠 수가 없지!


6. 내가 왜?

수학 시간이 끝나면 수학 익힘책과 내가 만들어 준 추가 학습지를 다 풀고 검사를 받는다. 수학 익힘책은 각자 채점을 하고 학습지는 같이 답을 맞춰보면서 채점을 한 후 이끔이가 들고 나와서 확인을 받는다. 이렇게 확인을 하는 것은 아이들이 어떤 문제를 자주 틀리는지, 어떤 문제를 어려워하는지 파악하기 쉽기 때문이다. 보통 문장제 문제 중 특히 마지막 문제를 많이 틀리기 때문에 다음 시간에 같이 한 번 풀어 본다.

자기를 나무늘보라고 표현하는 ㅇㅅ이 모둠의 책을 검사하고 있었다. 왜 틀렸는지 이유를 설명하라는 부분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가 왜 해 줘야 하지?"

"이끔아. 이렇게 쓰면 안 되겠지?"

"헉." 

이끔이도 제대로 확인을 안 하고 온 것이다.

"다시 제대로 써서 검사 받도록 하렴."

쓰는 것조차 귀찮았던 ㅇㅅ이의 의외의 어찌보면 당연한 모습을 생각하며 쿡쿡 웃었다. 참. 요새 ㅇㅅ이는 스스로 손들고 발표를 아주 잘한다. 그 이유는...아이들의 발표하라는 성화가 너무 귀찮기 때문이다!


7. ㅇㅅ아 축하해! 

(7번의 ㅇㅅ이는 6번의 ㅇㅅ이가 아니다.)

"선생님! ㅇㅅ이 여친 생겼대요!"

"오오 그래? 누구야?"

"몰라요!"

그렇게 며칠이 지나가고 잠잠해지는 것 같았는데 점심시간에 ㅇㅅ이 자리가 소란스럽다. 지나가는 다른 반 아이들마다 ㅇㅅ이 자리로 와서 한 마디씩 건네고 가고 ㅇㅅ이는 앉았다 일어났다 어쩔 줄을 몰라한다. 나와 ㅇㅅ이 자리는 저 끝에서 끝인지라 한참을 아이들을 헤집고 가야 하지만 가 봤다.

"아니이! 아이들이! 자꾸 저한테 와서 축하한다고 하고 가요."

아.....

"음. 그럼 아이들에게 가서 축하한다고 말하지 말라고 할까?"

"아니, 괜찮아요."


올라오는 길. 

"그런데 ㅇㅅ이 여친이 도대체 누구니?"

"(속삭이는 목소리로) 선생님! ㅈㅇ이에요!"

"뭐?"

"ㅈㅇ이가 지난번에 고백했대요."

"그런데 다른 반 아이들이 어떻게 알게 되었어?"

"친한 친구 몇 명한테만 이야기했는데 그게 퍼졌나 봐요."

아하. 지난번에 둘이서 김영삼 도서관에서 사회 공부 같이 했다더니, 전조였나? ㅇㅅ이와 ㅈㅇ이 일기에 모두 둘이 같이 공부한 내용이 써져 있었다. ㅇㅅ이는 ㅈㅇ이가 마치 과외선생님처럼 잘 가르쳐 줘서 시험을 잘 볼 수 있었다고 했고 ㅈㅇ이는 안 사줘도 되는데 ㅇㅅ이가 고맙다고 밥을 사 줬다고 했다나 어쨌다나.

우리 ㅈㅇ이 절대 티도 안 내더니 그래, 사랑은 쟁취하는 거지! 아직 애기애기한데 이제 핑크빛 기류가 폴폴 감도는 구나....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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