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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May 14. 2024

작은 편지 속 커다란 마음

스승의 날 아침 풍경

"선생님 오늘 생신이세요?"

"비밀이야."


그렇게 문자를 주고받았던 작년의 한 주말이었다. 1반 교실을 지나야 우리 반을 갈 수 있다. 마침 1반 선생님이 먼저 교실로 들어가시는데 아이들이 "서프라이즈!" 하면서 "생일 축하합니다!"하고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보였다. 아, 1반 선생님도 나랑 생일이 비슷하신가 보다. 설마 우리 반도? 물론 그럴 리가 없지. 아니, 그럴 거면 왜 생일을 물어봤냔 말이다!!!!


1반 선생님은 그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저희 반은 원래 이벤트를 좋아하는 아이들이에요. 스승의 날도 그렇고 그냥 계기가 있으면 자꾸 이벤트를 하려고 하더라고요."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 그렇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날이면 모를까 같은 날인데 비교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긴 하다. 


문득 생각이 나는 것은 첫 제자들의 이벤트였다. 며칠 동안 아이들끼리 소곤소곤 뭔가를 꾸미는 것 같았는데 얼핏 '선생님 생일'이라는 단어가 들렸다. 정작 생일 당일에는 아무 일도 없어서 하다가 그냥 흐지부지 되었나 보다 하고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다음 날 출근한 나를 강당으로 데리고 간다. 문을 여니 꽃길이 펼쳐져 있고 그 길을 걸어가니 깜깜했던 강당 무대에서 아이들이 커튼 양쪽에서 튀어나오며 노래를 불렀다. 그때 받은 시집은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다. "선생님이 책 좋아하시고 시 좋아하셔서 이걸로 골랐어요." 그때 우리 반은 매주 한 편씩 시를 외우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생각해 보니 그때도 6학년 3반이었는데. 


오늘따라 차가 막혔다. 서둘러 주차를 하고 올라가려는데 ㅊㅇ이가 자꾸 옆에서 말을 건다. 차에서 짐을 빼다 말고 "ㅊㅇ아! 먼저 올라가!"라고 이야기하고 곧이어 걸음을 재촉했다. 우리 반은 계단을 돌자마자 나온다. '어휴 또 ㅅㅁ이가 우유 박스 들여놓는 것을 잊었나 보다.' 하면서 교실문을 열려고 하는데 앗, 교실이 깜깜하다. 문 앞에는 긴 장식과 풍선이 가득 붙어 있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이들이 '스승의 은혜' 노래를 열창한다. 아 살짝 감동이다. 작년 귀염둥이들도 이렇게는 잘 못하던데. 그런데 아니, 노래가 점점 이상해진다. 아이들은 열창하려고 했으나 가사가 잘 기억이 안 나는 것이다. 음도 틀리고 가사도 틀리고 박자도 틀리더니 결국 중간에 대충 자체 마무리를 해서 나오려던 눈물이 그만 쏙 들어가 버렸다. 


"선생님 안 우세요?"

"야, 눈물 나오다가 들어갔어."

"아, 우리가 노래를 잘 못 불러서 그런가 봐요."


그러더니 한가득 편지가 놓인다. 이렇게 이벤트를 해 주었으니 다 같이 맛있는 망고 젤리를 하나씩 나누어 먹었다. 그래도 공부는 해야 하니 1교시 수업을 하고 교과 시간에 조용히 아이들 편지를 읽어 보았다. 순수한 우리 반 귀염둥이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아이들이 '저 선생님 좋아해요.'라고 쓴 편지에는 대부분 자기들의 상황과 마음을 공감해 주어서 감사하고 힘이 되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하나하나 상황을 다르지만 6학년 아이들도 각자의 고민과 고뇌가 있다. 2달은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는 서서히 서로에게 녹아들어 가는 중이고 그런 마음들이 통했나 보다. 내가 어떤 해결책을 제시했다기보다는 들어주고 끄덕여 준 것이 대부분. 아이들은 그것만으로도 좋았나 보다.


어제는 졸업한 ㄱㅂ이랑 ㅇㅇ이가 교실 들려서 편지를 주고 갔다. 다시 읽어보면서 마음이 몽글몽글 따뜻해진다. 그래. 내가 감동을 받은 것은 아침부터 열심히 모여서 풍선을 불고 장식을 붙였을 아이들의 모습도 있지만 작은 편지에 담긴 아이들의 커다란 마음이었다. 

"어젯밤 늦게 유튜브 영상 찾아보면서 선생님 드리려고 열심히 꽃 만들었어요."

ㅅㅇ이가 배시시 웃으며 분홍색 종이 카네이션을 내민다. 학원에 다녀와 피곤했을 눈을 비비며 열심히 찾고 접는 ㅅㅇ이 모습이 선하게 그려져서 나도 같이 배시시 웃었다.


스승의 날을 사실 좋아하진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형식적이 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에 하필 학기 중간 5월에 있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5월의 좋은 하루. 6학년이어도 여전히 고사리 손으로 쓴 편지에 담긴 순수한 애정을 받아 더 좋은 하루로 느껴지니 '이때 있는 것도 괜찮네.' 하고 생각한다. 역시 사람의 마음은 참 주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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